듯사람(AI)의 종? 뜻사람배움임자!

가짜 '수능'이 아닌 뜻배움을 누린다

듯사람(AI)의 종일까? 뜻사람으로 배움임자(주인)일까?


정답을 맞히는 게임은 끝났다

“선생님도 학원 다녀야 해요?”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 앞에 교실의 공기가 무거워집니다. 사교육 현황을 알리는 수많은 통계보다 이 한마디가 더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사실을 외우고, 남들보다 빨리 정답을 맞히는 게임에서 우리는 '듯사람'(AI,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습니다. 1970년대 은행 취업을 위해 주산과 타자가 필수였던 시대가 끝났듯, 오늘 아이들에게 문제풀이 기술만 가르치는 일은 계산기가 있는데 여전히 주산을 붙들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 아픈 사실은 아이들이 배움을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점수의 종이 되어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종사슬은 어느새 '듯사람(AI)의 종살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기계가 내놓은 답을 정답이라 믿으며 따르는 삶, 그것이 우리가 마주한 미래의 민낯일지 모릅니다.

왜 '수학 교육'이라 부르는가

우리는 대안으로 '원리 중심의 수학'을 말합니다. 공식을 외우는 대신 "왜 1+1은 2인가?"를 탐구하고 토론하자고 말이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묻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수학 교육'이라 부를까요? '교육'이나 '학습'이라는 말에는 늘 정답을 가진 관리자가 숨어있습니다. 이제는 '수학 교육'이 아니라 '셈갈(수학) 배움'이어야 합니다. 공식을 외워 맞히는 길이 아니라, 원리를 캐고 따지고 나누며 스스로 세우는 길. 그것이 제가 말하는 '참배움'의 시작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듯사람을 잘 쓰는 ‘요령’이 아니라, 듯사람과 더불어 배움을 누리는 ‘삶’입니다.

뜻사람배움임자: 뜻을 묻고, 나누고, 해내다

듯사람과 더불어 배우는 시대의 문해력은 더 이상 '읽기 능력'에 머물지 않습니다. 뜻사람배움임자는 정답을 외우지 않습니다. 설계를 합니다. 기준을 세우고, 과정과 결과를 살피며, 더 나은 길을 고릅니다. 스스로 뜻을 묻고, 서로 뜻을 나누고 따지며, 함께 뜻을 해내는 힘(능력)을 지니니 '뜻사람배움임자'입니다.

뜻물음(스스로 물음):"왜 우리는 1+1은 2인가로 셈하나?"라고 근원을 묻는 것.

뜻나눔(서로 나눔):서로의 생각을 세워 말하고, 다른 의견을 꺾지 않고 살피는 것.

뜻해냄(함께 해냄):배운 원리로 삶의 작은 문제를 바꾸는 실천을 하는 것.

이 얼개가 학교의 숨을 바꾸면, 학생은 '문제풀이 노동자'가 아니라 듯사람(AI)에게 일을 시키고 결과를 검증하는 지휘자로 자라납니다.

배움이 삶에서 꽃피게

배움이 시험지에만 머물면 아이는 언젠가 삶을 잃어버립니다. 반대로 배움이 삶에서 꽃피면, 아이는 점수를 넘어 사람으로 바로 섭니다. 듯사람을 올바르게 통제하고 명령을 내리려면 역사, 철학 등 사람다움의 바탕배움(인문학)에 터잡아 뜻물음힘을 지닌 뜻사람배움임자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듯사람(AI)이 낸 답을 그대로 따르지 않겠다. 나는 내 삶의 기준글을 세우고, 이웃과 뜻을 나누며, 함께 뜻해냄으로 살맛 나는 길을 만들겠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배움의 자리입니다. 듯사람의 종살이를 끝내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 교실에서, 집안 마루에서, 한 번이라도 아이들이 "왜?"를 끝까지 붙들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순간—그 찰나로부터 나라의 배움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수능을 믿는 마음을 거두고, '배움'을 믿고 뜻배움을 누릴 때입니다.


(덧)

〇 우리는 AI의 노예로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어

https://www.youtube.com/shorts/yQaCU5rRm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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