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역사참배움① 왜 ‘식민지역사박물관’인가-시민 성금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이라니]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 민족문제연구소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만들고자 한 역사박물관의 이름이 ‘식민지역사박물관’이네요~왜 ‘식민지역사박물관’이라 했을까요?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자료실장이 한겨레 강성만 기자와 마주이야기 기사중) 박물관 이름에 ‘식민지’를 넣은 것도 하나의 도전이었단다.
http://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58966.html#cb
“식민지 대신 일제강점기나 일제침탈사라고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식민지란 말은 그 시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죠. (박물관은) 왜 식민지 시대를 고민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민족문제연구소 자료실장’이 위처럼 말한 것을 두고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 글을 소개하자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이전오님은 “민족의 아픔을 침략 원흉 일본에 맞춘 '식민지'란 이름이 도전적이라면 '일본만세박물관"이라 하면 더 도전적이겠군요. 모든 자기 땅의 이름은 그 땅에 사는 백성의 아픔을 건드리는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되죠. 박물관의 이름이 제나라 백성의 아픔을 건드리는 명사로 구성된 것은 이미 이름의 범죄가 아닐까요?” 하고 되묻고 있다.
이어서 “어찌 식민지란 이름 자체를 구상할 수 있었을까? 그 의식수준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 이름은 도전이 아니라 겨레정서를 조롱하는 표현적 범죄입니다.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돈을 내놓을 수 없다는 일본인들의 요구가 은밀하게 있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죠. 정말 한국인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이름입니다”라고 하였다.
박진아리수님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식민지시대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자료실장님이시네요.
어떤 도전이길래....”란 반응을 보였다.
김준태님도 “저런 취지라면 전시회나 하면 될 것이지 지속적인 박물관을 만들 필요 있나?”고 반문하였다.
김석휴님은 “언론에도 손을 써 보세요. (기자들은) 견고할 거 같으면서 의외로 특종에 대한 갈망도 있습니다. 데스크에서 통제하더라도 민문연의 박물관 (기사를) 쓴 기자가 바로 돌아 설 수도 있읍니다. 젊은 기자들의 돌출성입니다”라 하여 ‘기자’와 마주할 것을 제안하였다.
김진표님은 “격하게 공감합니다.'식민지박물관', '위안부' 라는 용어를 대한강토 한복판에서 버젓이 쓰게 만드는 것이 과거 제국주의 영광을 되새김질하는 가해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도전~'이겠네요^^”라 하였다.
이처럼 ‘식민지박물관’은 '식민사관 주입'의 터전으로 걸맞은 이름이다. 그동안 ‘식민사관’은 대학 강단을 차지하고 초중고를 거쳐 대학 교양 교육에 이르기까지 ‘시험’으로 우리들의 머리를 채웠다.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올바른 대안이 되기를 포기한 채 그 건물 안에 들어앉았다는 것이다. 썩은 생각으로 '자료 원본'을 강조한 그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흔히 역사는 현실을 비추어주는 거울로서 모순된 오늘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준다고도 한다. 하지만 역사가 '거울'에 그쳐선 곤란할 것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처럼 거울에 비친 '나'와 '우리'가 없는 '거울'이어선 더욱 곤란하다. 대안은 다른 길이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바른 길을 찾아 나아갈 때 역사는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에게 대안이 되는 것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이라니? 잘못 붙여진 이름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식민사관’에 젖은 '강단사학'의 파수병인가? 시민의 성금을 모아 ‘식민지역사’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나’와 ‘우리’가 없는 ‘거울’ 노릇에 그쳤다는 생각이 든다.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 ‘빛찾음(광복)’을 위해 수난과 굴욕의 겨레삶 속에서도 꿋꿋이 나라와 겨레를 사랑한 애국선열들의 피와 땀이 깃들어 있기에. 일본제국주의자들과 항쟁을 벌인 분들의 희생과 노고에 담긴 뜻을 새겨야 하니까. 올바른 겨레 삶의 본보기들로서 나라를 되찾고자 숱한 굴종과 수난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켜 온 뜻을 살릴 수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