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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Oct 25. 2022

[여행] 프라하 성에서 와인 한 잔 어때요?

체코 프라하를 처음 여행했을 때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동화같이 아름다운 풍경도, 블타바 강 위에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성도 아니라, 바로 이름 모를 식당에 들어가 마셨던 한 모금의 맥주였다. 어떻게 맥주가 이렇게 맛있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을 마시듯 맥주를 꿀꺽 마셨던 기억이 난다. 흑맥주로 알려진 코젤 다크, 필스너 우르겔 모두 프라하가 주 생산지이다. 프라하에 살고 있는 지금도 맥주는 너무나 맛있지만 사실 체코는 와인도 맛있다. 특히 가을에만 마실 수 있는 특이한 와인이 있다! 모두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다. 


체코의 와인 생산지, 모라비아


Czech Republic and its territory, Czech Genealogy for Beginners


체코의 영토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큰 구역부터 순서대로 보헤미아, 모라비아, 실레지아인데, 체코의 와인은 주로 모라비아 지역에서 양조된다. 보헤미아 지역에서 양조되는 와인은 체코에서 생산되는 전체 와인 양의 5~10%에 그치며 나머지 90%가량을 모라비아에서 생산한다. 체코의 와인이라고 하면 곧 모라비아 와인이라 할 수 있겠다. 레드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기후는 여름이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춥지 않은 지중해 성 기후이지만 화이트 와인용 청포도는 비교적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며 재배 환경에 따라 신맛이 적절히 배합된다.(서울 와인스쿨 참조) 모라비아는 서늘하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청포도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그 덕에 모라비아 와인은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으로 더 유명하다. 대부분의 청포도가 자라는 포도 농장은 그 규모 역시 큰 편이다. 44,000 에이커. 1 에이커가 약 1,200평이니 대략 5천만 평의 땅에서 청포도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 알려진 프랑스 알사스 지방의 포도농장이 39,000 에이커인 것을 고려하면 모라비아의 규모를 무시할 수 없다.


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와인, 부르착


모라비아 지방에서 재배된 포도는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으로 나뉘어 양조된다. 이 과정에서 완전히 숙성되기 전 단계의 '어린 와인'이 Burčák(이하 부르착)이다. 이 기간을 계절로 따지면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인데 이때 체코를 방문하면 거리의 가판대에서 부르착을 맛볼 수 있다. 부르착은 일반 와인과 비교하면 꽤 달고 발효주 특유의 시고 텁텁한 맛이 난다. 막걸리의 민족인 우리에게 부르착은 낯설지 않다. 마치 막걸리의 포도주 버전이라고 할까. (참고로 체코에서 막걸리를 쌀 와인이라고 부른다.)

가판대에서 부르착을 파는 모습

부르착이 나오는 기간은 프라하에서 와인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기도 하다. 프라하에 곳곳에 있는 소규모의 포도밭 근처에서 와인 축제가 열린다. 그중 가장 상징적인 축제는 아마 프라하 성에서 열리는 축제이지 않을까. 프라하 성은 대성당과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해 작은 규모의 포도 농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포도 농장에서 매해 가을이면 와인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9월 24일에 열렸는데 정확한 날짜는 매해 상이하다. 9월에 프라하 성을 비롯한 프라하 곳곳의 포도 농장에서 와인 축제가 열리니 프라하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프라하 성 와인 축제


보헤미아 지역의 가장 오래된 포도밭이 프라하 성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체코의 첫 성군이었던 바츨라프가 10C경 미사용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심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참고로 체코는 원래부터 천주교를 믿는 국가가 아니었으나 바츨라프의 아버지인 보르지보이가 체코 땅에 천주교를 포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0년부터 이어져온 깊은 역사를 간직한 이 포도밭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와인잔이 부딪히는 파티가 열린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는 장면이다. 


올해 15번째로 열린 프라하 성 와인 축제에는 50여 가지가 넘는 체코의 와인과 부르착 그리고 음악이 준비되었다. 250KC, 한화로 12,500원 정도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축제에 참여할 수 있지만 와인을 시음하거나 준비된 음식을 먹고 싶다면 토큰도 구매해야 한다. 당시 방문했을 때는 10개짜리의 토큰을 250KC에 판매하고 있었다. 한 토큰 당 25KC(1,250원)인 셈인데 이것으로 와인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고주망태가 되기 딱 좋은 조건이다.


토큰과 화이트 부르착, 레드 부르착
포도밭에 열린 레드 와인용 포도


시음회 현장.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프라하 성은 무엇보다도 풍경이 아름답다. 성에 오르면 시내가 모두 내려다 보인다. 주홍빛 지붕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고 트램이 지나며 그 가운데를 블타바 강이 가로지르는 풍경을 보고 있자면 몇 번이고 프라하 성을 올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은 까를교 건너편의 말라스트라나 구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보호를 목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는 성의 특징 때문이기도 한데 높이를 권력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권력이 곧 보호받을 권리를 누린다는 것과도 같을 테니 양쪽 모두를 근거로 삼아도 무방하겠다. 성에 올라 왜 이곳에 성이 지어졌을지 옛날을 상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관점 포인트이다.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과 와인

다음에 프라하에 방문한다면 성에서 와인 한 잔 마셔 보시기를. 다행히 프라하 성의 포도밭은 와인 축제 기간을 제외하고도 방문할 수 있으며 와인과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추신: 담 씨 빌레 비노! 체코어로 "화이트 와인 주세요"라는 뜻이다. 모라비아의 화이트 와인을 드셔 보시기를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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