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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Mar 08. 2023

골이 띵한 얼음 커피 주세요.

*<당연해진 말들>은 프라하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겪은 일들을 글로 담은 시리즈입니다. 이 글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말들을 생소한 눈으로 보는 학생들을 통해서, 한국어가 가진 특별한 점, 신기한 단어와 재미있는 표현들을 함께 공부한 자료이며, 말과 언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붙은 에세이입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종종 민망할 때가 있다. 이게 뭐예요? 컴퓨터(Computer) 요. 이게 뭐예요? 소파(Sofa) 요. 이게 뭐예요? 바나나(Banana) 요. 이게 뭐예요? 펜(Pen)이에요. 이게 뭐예요?... 이내 멋쩍어진다. 내가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지 영어 수업을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큼 한국어 내 외래어 사용은 꽤 많은 편이다. 외래어는 *외국으로부터 들어와 한국어에 동화되어 한국어처럼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제 막 한글을 익힌 학생들에게 외래어는 새로운 단어를 외우지 않고 소리에 맞는 한글만 연습할 수 있어 반가울지 모르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쭉 사용한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손님같이 느껴진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9234)

문제는 '버스', '커피'처럼 한국어로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경우가 아닌 한국어로 대체할 수 있는 말이 있는 경우에도 단어나 외국어가 갖는 이미지 때문에 외국어가 사용된다는 것에 있다. 그럴 때 발견하는 외국어는 정말이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반응이 나온다. 더군다나 한국어 수업 중에 발견하는 외국어 남용 사례는 이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몇몇의 외국어 사용은 실제 단어의 뜻에 알맞게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 다녀왔던 학생들은 한국의 외국어 사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예로 가게 및 프랜차이즈 이름들을 언급했다. 한 학생은 '맘스터치'를 보고 엄마가 만진다는 표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어에는 '손맛'이라는 표현이 있어, 음식을 만들 때 솜씨가 뛰어나고 맛이 좋다는 뜻으로 쓰인다. 영어로는 Mom's taste로 바꿔볼 수 있겠으나 이를 Mom's touch로 표현하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말 그대로 엄마의 손길이 되는데 음식에 대한 솜씨보다는 엄마가 쓰다듬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엄마가 쓰다듬는 치킨...? 


다른 학생은 카페 '투썸플레이스'를 보고 성인용품점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투썸플레이스의 정식 상호명은 'A TWOSOME PLACE'로 A(한 명) TWO(두 명) 혹은 SOME(여러 명) 이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PLACE(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영어에서 이 TWOSOME은 셋이서 성관계를 맺는다는 뜻의 쓰리썸을 연상케 하며 셋이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할 만큼, 정신이 나갈 정도로 좋은 잠자리를 뜻한다. 이런 연유로 학생은 한국 방문 당시 거리마다 있는 투썸플레이스를 보며 어떤 곳이길래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것일까 궁금했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투 썸 플레이스 https://namu.wiki/w/%ED%88%AC%EC%8D%B8%ED%94%8C%EB%A0%88%EC%9D%B4%EC%8A%A4)


한국어에 널려 있는 외국어 사용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이해를 흐린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카페이다. 원두와 커피가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이제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자연스러워진 이상 한국어로 된 메뉴가 있으면 좋으련만... 메뉴판 속 커피 이름들은 낯선 외국어로 채워지고 있다. 심지어 몇몇 카페는 표기마저 영어로 되어 있어 영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문마저 어렵다. 서울의 한 카페는 M.S.G.R이라고 적힌 음료를 판다. 이것이 뭐냐고 직원에게 묻자 미숫가루였다는 이야기의 신문 기사도 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아파트 이름은 외국어와 한국어의 짬뽕이 되어 외계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예컨대 화성우방아이유쉘메가시티2단지, 영종하늘도시유승한내들스카이스테이 그 밖에 평택고덕국제신도시고덕파라곤2차 같은 이름들이 있다. 읽기만 해도 숨이 찬다. 아파트 이름이 길어진 이유는 아파트가 브랜드화되었기 때문이다. 있어 보이는 이름과 상표들이 붙은 아파트의 경우 집값이 더 오르고 상품가치가 생긴다. 가령 아파트 브랜드명과 건설사명이 함께 붙어 하나의 이름이 되고, 그 아파트의 특별한 점(근처에 공원이 있으면 파크, 학교가 있으면 에듀, 숲이 있으면 포레)을 영어식으로 덧붙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소지에는 끝도 없이 긴 아파트 이름이 오르게 된다.


니미시벌 아파트인 줄 알았던 호반리젠시빌, 불지옥으로 잘못 읽힌 푸르지오... 다 누구를 위한 이름이더냐. 이런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글에 웃기도 잠시 슬퍼지는 것은 어쩐지 언어의 주인 자리를 슬금슬금 빼앗기고 있는 듯해서 그런지 모른다. 외국어가 갖는 좋은 이미지와 어감 때문에 많은 말들이 외국어로 대체될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한국어의 방석을 빼앗는 중인지 모른다. 더불어 나라를 빼앗겼던 서러움을 안고 한국을 지켜낸 세대들을 함께 그림자 안으로 몰아넣는지도. 그런지도 모른다. 


한국 내 만연한 외국어의 사용은 세대 간의 정보 격차를 비롯한 한국어의 위상 및 가치 절하, 한국 내 외국인들의 오해와 같은 문제들이 뒤따른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면서도 사회적인 약속을 요구한다. 내가 좋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골이 띵한 얼음 커피라고 부르며 주문할 수는 없는 것. 그렇기에 언어에 대한 사용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으로서도 오늘 우리가 뱉은 말들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주시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뱉은 말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나. 어떤 세상을 만드나. 그 시선은 소외되는 이들이 없게 넓어야 할 것이며 곳곳에 미쳐야 할 것이다.  오늘도 학생들과 한국어 수업을 했다. 먼 땅 체코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열심인 학생들의 정수리를 보면 마음속 작은 불씨가 켜진다. 우리말을 이렇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여기에 있구나. 이 말을 더 잘 사용해야겠다.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하는 것일까. 그런 물음들이 또 하루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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