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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Oct 31. 2024

안녕, 하세요?

*<당연해진 말들>은 프라하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겪은 일들을 글로 담은 시리즈입니다. 이 글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말들을 생소한 눈으로 보는 학생들을 통해서, 한국어가 가진 특별한 점, 신기한 단어와 재미있는 표현들을 함께 공부한 자료이며, 말과 언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붙은 에세이입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how are you?'는 어떻게 말해요?"


이 질문을 받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표현 그대로의 'how are you?'를 놓고 보면 '잘 지내요?'인 것도 같고 인사로서의 'how are you?'를 생각하면 우리말의 '안녕하세요?'가 그 쓰임에 맞으며 대화를 시작하며 서로에게 말문을 틀 때 사용하는 'how are you?'는 '밥 먹었어요?' 혹은 '잘 잤어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정리하여 대답을 해주려면 적어도 한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특히 학생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대목에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국 사람들이 대체 왜 밥을 먹었냐고, 왜 잘 잤냐고 물어보냐는 것이다.


한 번은 학생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학생에게는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한국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들은 한국과 체코의 시차 때문에 연락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지 못하고 늘 늦게 답장을 한다. 주로 한국 친구가 하루를 시작하며 답을 하는 편인데, 그때마다 한국 친구는 학생에게 잘 잤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학생은 정말 궁금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학생의 의아한 얼굴을 보며 나도 덩달아 의문이 생겼다. 언제부터, 왜 우리는 이렇게 말을 했을까.


그 출처를 알기 위해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게 이 말을 가르쳐준 사람은 엄마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명절에 할머니 댁에서 자고 오는 날이 되면, 엄마는 나에게 일어나서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말하도록 가르쳤다. 모르는 어른을 만나거나 먼 친척을 뵈면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 엄마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게 왜 그 말을 가르쳤냐고 물으니 엄마가 어릴 적에도 어른들이 그 말을 가르쳐서 배웠다고 했다. 엄마는 할아버지 댁에서 유년을 보냈는데, 1960년대, 그러니까 엄마가  어린이였을 시절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할아버지께 '안녕히 주무셨냐'라고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한창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할아버지를 마주치면 그때는 '식사를 하셨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근데 왜 하필 그게 잘 주무셨냐, 식사를 하셨냐였을까?


이런 질문을 하자, 엄마는 당연하단 듯이 이렇게 답했다. "그때는 잘 못 자고 잘 못 먹었으니까."


요즘 '먹방'과 같은 콘텐츠를 찍고 '차박'이나 '캠핑'같은 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엄마의 유년 시절이었던 1960년대와 엄마에게 이 말을 가르치신 할아버지가 청년이었을 1930년대부터의 자료가 나왔다. 


1960년대의 한국은 한국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안 되었던 때였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엔군과 중화인민공화국, 소비에트 연방이 모두 관여한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이 휴전 협정을 맺으며 잠시 일단락된 이후 한반도 내의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학교나 병원, 공장, 도로와 같은 모든 사회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으며 한반도 전체 인구의 20%는 기아 위기에 놓였고 국민총생산이 14% 감소하였다.


사진으로 보는 그때의 풍경은 더욱 암담했다. 

국사편찬위 제공, 1950년 10월 28일, 다시 일하는 수선공
국사편찬위 제공, 1950년 11월 8일, 폐허가 된 원산

폐허 속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구두 수선공의 모습과 폭격으로 다 허물어져버린 건물 더미 사이에서 물건을 찾는 남자의 모습은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도, 몸을 뉘어 잘 수도 없어 보였다. 전쟁 직후 기근에 시달렸던 상황을 고려하면 하루 밤 사이에 못 먹어서 생과 사를 달리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물며 엄마의 할아버지가 청년이었을 시절은 일제강점기를 겪어내야 했으니 상황은 더욱 열악했을 것이다. 이런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은 그래서 안위를 물을 수밖에 없었을 테다. 잘 잤냐고, 밥은 먹었냐고. 그러니 밥을 먹었냐고 묻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인사말이었지 모른다.


상상력에 기대어 1960년대로 돌아가 할아버지께 문안 인사를 올리던 엄마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그때의 그 말은 너무나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잘 주무셨는지, 진지는 드셨는지, 그래서 하루하루가 안녕하신지를 물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자 우리의 인사말이 그저 기본적인 생존을 묻는 것이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왔다. 그날로부터 다행히 시간은 흐르고 상황이 좋아져서 우리는 더 이상 먹을 것과 잘 곳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의 삶이 '안녕'한 지에 대해 묻는 마음은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이어져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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