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줌을 켜고 수업에 들어가자 화면 너머 학생이 등장하며 묻는다. 2년 전부터 나와 함께 한국어를 공부해 온 이바의 얼굴이 심각하다. 이바는 K-pop에 관심이 많고 세븐틴 노래를 들으며 체코에 있는 한국 자동차 회사에서 회계 업무를 본다. 이바가 한국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어학원에 수업을 문의한 것이 만남의 시작이 되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 초반에는 문장과 문장 사이 영어와 체코어를 섞어 가며 더듬어가듯 대화를 했는데 2년 사이 이바의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어서 우리는 제법 영어와 체코어의 도움 없이 한국어로 60분을 꽉 채워 말을 한다. 오늘 수업은 영어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화면 속 이바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이바 씨, 뉴스 봤어요?"
"네, 봤어요. 미쳤어요!"
이바가 좋아하는 말은 '미쳤다'이다. 한국 회사에서 근무하여 잦은 야근을 경험하고나서부터 회사가 미쳤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바가 미쳤다는 말을 할 때마다 속으로 피식 피식 웃는다. 그의 체코어 억양 때문에 '쳤'이 더 강하게 발음되어 속이 통쾌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내 반응에 이바의 얼굴 또한 걱정스럽게 변했다. 이바는 알고 싶어 했다. 2024년 12월 3일에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뉴스에 나오는 말들은 무엇을 뜻하는지. 내가 사는 이곳 체코에도 계엄령 선포에 대한 기사가 다뤄졌다. 하지만 체코 역사에서는 계엄령이 한 번도 선포된 적이 없어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듯 했다. 오늘 수업은 역사 수업이 될 것 같다며 파워포인트를 켜서 앞장에 오늘 배울 단어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계엄령
-국회
-국회의원
...
오늘 수업 시간에서 배울 단어 중, 첫 단어는 계엄령이다.
계엄령
계엄령이 뭐냐면요. 만약에 나라에 전쟁이 발생해요. 아니면 전쟁처럼 아주 위험한 상황이에요. 그럴 때 나라가 너무 복잡하니까 군대의 힘을 빌려서 복잡해지지 않도록 정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emergency button(비상 버튼) 같은 거예요. 그런데 한국은 전쟁도 안 났고 복잡한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대통령이 마음대로 한 거예요.
말을 뱉고 나니 대통령이 마음대로 나라를 뒤집어놓은 것이 실감이 나 머리가 뜨끈해졌다. 이바는 전쟁도 나지 않았는데 이 법을 발동시킨 한국의 대통령이 아직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것은 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뉴스에서도 계엄령 선포 이유에 대해서 공식적인 의견을 내놓기를 꺼려 하는 것 같았다. 가장 유력한 것은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국회를 두고 국정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는 것, 야당을 종북세력이라고 믿었다는 것, 혹은 이 모든 것은 핑계이고 내 뜻 대로 안 되니 마음 내키는대로 하려 했다는 것. 불행 중 다행히 계엄은 2시간 만에 국회에서 해제시켰지만. 체코를 비롯한 외신에서는 갑작스러운 계엄령보다도 빠른 계엄령 해제에 대해서도 놀라운 심경을 담아 이를 보도했다.
"그런데 어떻게 끝났어요? 사진도 봤어요. 벽에 이렇게 (담을 넘는 시늉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가야 했어요?"
박지원 의원이 담벼락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는 사진이 유행하는 밈처럼 돌고 있었다. 의원들이 담을 넘어가서 겨우 투표를 했다는 이야기는 영웅담처럼 들리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이기도 했다.
국회
국회는 나라에서 법을 만들고 돈을 관리하고 규칙을 만드는 곳이에요.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모여 투표를 하면 계엄령을 끝낼 수 있어요. 그곳에 국회의원이 모여서 투표를 해요. 그런데 계엄령 이후에 의회 앞으로 경찰하고 군인이 가서 사람들이 못 들어가게 막았어요. 그래서 국회의원이 벽을 이렇게 넘어서 갔어요.
천천히 내 말을 따라오던 이바의 표정이 잠깐 구겨졌다. 투표를 해야 계엄령을 해제시킬 수 있는데 투표를 하는 공간에 들어가지 못 하도록 막았다는 것은 그 의도가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상력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든다. 12월 3일 밤에 국회 앞으로 달려간 이들도 이런 상상을 하며 부디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정말 미쳤어요!"
이바가 외마디 말을 뱉고 다음 단어를 기다렸다. 나는 파워포인트에서 커서를 옮겨 국회의원 쪽으로 가져갔다.
국회의원
국회의원은 사람들이 직접 투표로 뽑은 정치인이에요.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따로 있어요. 모두 직접 뽑아요. 국회의원은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돼요. 국회의원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투표해요. 그런데...
아직 쓰지 않은 단어가 생각나서, 오늘 배울 단어들 밑에 "탄핵"이라고 적는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 탄핵 투표를 할 때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나갔어요. 그래서 탄핵을 하지 못했어요.
탄핵
탄핵은 잘못을 하고 법을 어긴 대통령한테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거예요. 탄핵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투표를 하고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돼요. 이후에 가장 최고 법원에서 다시 투표를 해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파워포인트 화면에서 잠시 나와 유튜브 영상을 봤다. 영상 속 카메라는 국회를 비추고 있었다. 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갑자기 국회를 빠져나가는 화면이 잠시 있고 곧 이어 남아있는 의원들이 일어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탄핵 투표를 앞두고 국회에서 일어난 장면이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필두로 국민의힘 의원의 이름을 호명하면 국회에 남은 민주당 의원이 이에 따라 이름을 외쳤다. 그렇게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이 영상을 보며 내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국회의원은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돼요. 국회의원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투표해요.' 이날 탄핵이 가결되기를 바라며 국회 앞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우리가 보던 영상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거리에 서있는 사람들을 함께 비추기 시작했는데 마치 이 모두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듯 했다. 간절한 눈으로 앞에 놓인 거대한 스크린 속 국회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 저거 뭐예요?"
영상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바 눈에 형형색색의 빛들이 비춰졌다. 영상 속 집회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봉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우주의 떠 있는 별처럼, 오로라들 속 알록달록한 행성들처럼 저멀리에서도 가지각색의 응원봉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콘서트 장에서 좋아하는 가수들을 응원하는 도구가 시위할 때 사용되는 것이 이바 눈에는 신기하게 보인 듯 했다. 나는 2016년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 촛불 집회 사진을 보여주며 이때의 촛불들이 이렇게 응원봉으로 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로는 박근혜 퇴진 운동 당시 김진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이야기를 해서 응원봉을 들고 나오는 문화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적은 단어는 계엄령으로 시작해 응원봉까지 이어져왔다. 절대 서로 양립할 수 없을 듯한 두 개의 단어, 계엄령과 응원봉을 사이에 두고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국회, 국회의원, 투표하다, 나라, 재판, 탄핵, 시위...그리고 그 끝에 응원봉이 있다는 것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 날 우리가 배운 단어는 어디로 가는가. 파워포인트를 닫으며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단어들을 떠올리며 수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