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by 두루주

사람이 일조량에 얼마나 영향을 많이 받는 동물인지는 체코에서 겨울을 나면 알 수 있다. 오늘의 일출 시간 오전 7시 43분, 일몰 시간 오후 4시 1분. 12월의 초입에 진입한 요즘은 해가 네 시에 진다. 정확히 삼주 뒤 동지가 다가와 해가 더욱 짧아지기 시작하면 해는 무려 세 시 반에 진다. 하늘 뒤로 뉘엿뉘엿 사라지는 석양의 빛을 남기고서, 질듯 말 듯 미련 많은 연인처럼 천천히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눈 깜짝할 새 하늘에 검은 이불이 깔리듯 어둠이 시작된다. 이제 오후 네 시가 되었지만 체감 상 몸은 밤 아홉 시인 듯하다. 아직도 빛이 반짝이며 새어 나오는 모니터 앞에 앉아 일을 해야 하는 날에는 쏟아져 나오는 졸음을 참는다. 책상 서랍에서 부랴 부랴 비타민 D를 꺼내 입 안에 털어 넣는다. 햇빛이 부족해 생기는 온갖 증상, 우울감을 동반한 피로와 의욕 저하를 어떻게든 현대 의학으로 밀어 보려 한다. 겨울에는 서랍에 비타민 D를 포함한 비타민 C, 더불어 E, A, 칼슘, 마그네슘이 포함된 종합 비타민과 한 입에 쏙 넣어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이 가득하다. 체코살이 6년 만에 터득한 겨울 나는 법이다.


처음 체코에 왔을 때, 그러니까 6년 전 이맘 때는 세 시부터 지기 시작하는 해를 보며 멀쩡한 시계를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봤다. 아무래도 시계가 고장이 난 것 같다며,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시계를 또 한 번 쳐다봤다. 세 시 반이 되어 해가 자취를 감추고 짙은 먹색의 하늘이 되자 곧 집에 가서 잠을 자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숲 속 동물들이 땅 속이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 긴 잠을 자고 봄에 나오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잠 말고는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긴 겨울의 시작이었다. 첫 해 겨울에는 아랑곳 않고 낮에 하던 모든 것들을 밤에도 하려 애썼다. 퇴근 후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어둑해진 거리를 걸었다. 술집에서 동료들과 거품이 가득 쌓인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길어진 밤에 조용히 혼자 책을 읽는 재미도 천천히 들였다. 그렇게 한참을, 충분한 하루라고 생각할 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시계는 이제 막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또 뭘 하면 좋을까… 시간이 무거웠다.


한국에서 나는 올빼미 중에 올빼미로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밤의 초입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기본 투잡, 쓰리잡을 뛰고 있던 터라 평균 퇴근 시간이 늦기도 했다. 집에 도착해 피곤한 몸을 뉘어 잠을 자도 모자란 판에 20대 초반의 팔팔한 정신은 지칠 줄 모르고 밤거리를 쏘다녔다. 밤 열 시에 과외를 마치고 친구를 만나 새벽 한 시까지 술을 마시는 밤도 많았다. 서울의 밤은 빨주노초파남보 모든 빛깔의 네온사인으로 번쩍였고 그 시절의 나는 불나방처럼 날았다. 노래방은 물론이고 24시 편의점, 새벽까지 배달하는 식당들, 아침에서야 문을 닫는 호프집들은 올빼미들의 주된 서식지가 되기 안성맞춤이었다. 즐거운 밤을 보내는 방법이야 이 거리에서라면 무궁무진했다.


그에 비하면 프라하의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러니까… 여기에 사람이 살기는 하는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거리에서 사라졌다. 그 기점은 밤 9시였다. 올빼미의 기준에서는 한참 활동이 시작될 무렵이지만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가로등만이 텅 빈 거리를 비췄다. 식당은 물론 대형마트와 동네 작은 슈퍼들까지 모두 9시가 되면, 심지어 8시부터 문을 닫기 시작했다.


“여기는 8시부터 마트가 문을 닫네? 너무 일찍 닫는 거 아니야?”


볼멘소리로 동료들에게 말했을 때, 반대로 “밤에도 문을 연다고?” 하곤 역으로 질문을 받았다. 체코 사람들에게는 밤에 문을 연 가게는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 듯했다. 가게가 늦은 시간까지 영업 중이라면 누군가 아직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야간에 장을 보거나 술을 마시는 소비자의 옵션을 줄이는 대신 근로자에게 저녁을 보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심지어 자영업을 해서 자신의 사업장을 가지고 가게를 운영하는 식당 사장이나 슈퍼 주인들도 야간 장사보다 스스로의 저녁을 더 소중히 챙겼다. 어차피 9시 이후로 모두가 집에 들어가 버려 거리에는 낙엽만 뒹굴기 때문에 야간은 공치는 장사이기도 했다. 몇몇 베트남 이민자가 운영하는 구멍가게만이 드문 드문 거리를 밝혔다. 그나마 여름에는 해가 밤 10시에 져서 거리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일찍 문을 닫는 식당과 마트에서 나와 공원에서 밤새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도 왕왕 보였다. 하지만 겨울에는 동네 어디에도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면 한적한 거리를 떠나 유유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내게 주어진 저녁 시간 중 삼분의 일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데 썼다. 도무지… 도무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오후 5시에 퇴근하고 6시쯤 저녁을 먹으면 그 이후에는 시간이 정말이지 남아돌았다. 홀홀단신으로 타지에 왔기에 부양할 가족도, 만날 친구도 없었다. 철저히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처음으로 프라하의 겨울을 나며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유튜브를 켜서 아무 영상이나 보는 데 1시간을 쓰고, 요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또 1시간을 쓰고, 그러다 넷플릭스를 켜서 뭘 볼 지 고민하는 데 1시간을 썼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해 버리는 스스로를 한심해하면서도 다음 날이면 똑같은 패턴으로 시간을 날렸다. 그 무렵 글을 쓰기 시작했다(한 달 정도 화면 속에 갇혀 멍한 저녁을 보내던 어느 날,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결심이 섰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며 사색에 잠기다 보면 돌연… 이래서 유럽에 철학자가 많구나… 하곤 이마를 쳤다. 아침에 눈을 떠서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며, 아, 삶은 무엇인가, 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고 세 시 반에 지는 해를 보며 아, 삶은 무엇인가, 허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탄식과 허무 속에서 여러 철학자들이 나왔을 것이라 이해하며 겨울을 났다.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제법 이 겨울을 나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길어진 밤을 단숨에 짧게 만들어 주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뜨거운 와인을 마시고 따뜻한 스웨터를 한 벌 샀다. 내키면 뜨개질도 했다. 한 달 동안 목도리를 뜨고 남은 겨울에 그 목도리를 하고 다니면 기분이 좋아졌다. 찻집에 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걸쭉한 코코아를 호호 불어 먹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우울하다면 약국으로 달려갔다. 약국에는 나처럼 비타민의 힘으로 겨울을 나려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 듯했다. 비타민 전용 선반의 가장 마지막 칸, 사람들의 손에 닿기 좋은 자리에 놓인 비타민 D는 늘 한 두 갑 정도를 남기고 모두 팔려 텅 비어 있었다. 11월 초가 되자 약국의 비타민은 금방 동이 났다.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서머타임이 끝나기 때문이다. 서머타임이 끝나면 여름 동안 1시간 앞당긴 시계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그 결과 일출과 일몰 시간이 하루 만에 한 시간 빨라졌다. 다섯 시 반에 지던 해는 네 시 반에 사라졌다.


스러져가는 해의 귀퉁이를 쳐다보며 비타민 D를 입 안에 털어 넣을 때는 늘 책상에 놓인 달력을 봤다. 크리스마스가 간절히 기다려졌다. 해가 가장 짧을 때, 어둠이 가장 빨리 찾아올 때, 동지를 며칠 지난 시점에 축하하는 이 나라의 가장 큰 명절, 크리스마스. 겨울을 미워할 수 없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된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오고 있었다.


2025년 12월 5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