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루Lee Dec 08. 2023

요천의 닭날개 조림

애호박도 있다우

한 번씩 그럴 때가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이 빡~! 떠올라 떠나지 않고 몇 날을 쫓아다니는 그런 날. 당장 취할 수 없어서 대체식으로 때워보지만 처음 떠올랐던 그 음식이 더 간절해지기만 하는 그런 날. 요 며칠 닭날개 조림이 그랬다. 갑자기 떠올라 떠나질 않고 맴돈다. 나는 닭날개 조림이 먹고 싶다. 평소 닭다리 선호파지만, 요 며칠은 닭날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닭날개 튀김이야 어느 치킨집이라도 있는 메뉴니 손쉽게 구하겠지만, 아니다 그게 아니다. 나는 닭날개 간장조림이 먹고 싶다. 갑자기 어디서 뭣 때문에 떠오른 닭날개 간장조림인지 알지도 못하겠지만, 갑자기 떠오른 닭날개 조림이 아른댄다. 상사병이라도 걸린 듯 자꾸 아른댄다. 풋풋했던 그 시절 한눈에 반한 그의 미소가 자꾸자꾸 떠올라 설레다 못해  시름시름 앓던 그때처럼 자꾸자꾸 생각이 난다. 짭조름하게 조려 나온 구릿빛의 반들반들한 닭날개가. 닭날개를 사러 가야 한다. 닭날개.


운동하러 나간 김에 사 오려했더니 닭날개만 모아 파는 게 없다. 평소 같으면 그냥 보이는 대로 조림용 토막닭을 사 와 찜닭이라도 해먹었겠지만, 이번엔 아니다. 꼭 닭날개가 먹고 싶다. 납짝한 닭날개들이 짭조름하게 조려져 짭짤한 빛깔을 뽐내며 알싸한 마늘향이 한번 휘감고 달콤한 뒷맛을 풍기며 맛깔스러운 윤기를 뿜어내어 반짝이는 닭날개조림이 먹고 싶다. 한 번의 퇴짜 이후 우연히 지나는 길에 보이는 트레이더스에 들렸다. 닭날개 사려고. 어제의 실패가 떠올라 대형마트에 가기로 결심이 선다. 없다. 닭가슴살만 모아놓은 것도 있고, 닭다리만 모아놓은 것도 있는데, 왜! 닭날개는 없는가! 벌써 두 번째 퇴짜다. 닭날개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이었나.  코스트코에는 파는 게 확실한데, 닭날개사자고 거길 가자니... 그건 좀 아닌 듯하다. 거긴 가면 닭날개만 사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벌써 트레이더스에서도 한아름 사 왔다기에 코스트코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지나친 소비는 더욱더 추운 겨울을 보내게 한다.

망설이다 또 하루가 지났다. 닭날개에 대한 이 마음이 사그라들지가 않는다. 닭날개가 없어 대신 사온 삼겹살에도 손이 가질 않는다.  적당한 탄력감으로 쫄깃한 닭날개, 느끼한 기름이 질질 흐르지도 않고 퍽퍽하지도 않은 닭날개. 쏙쏙 날개뼈를 발골해 내며 먹는 재미가 쏠쏠한 닭날개.


이마트! 이마트에 가보자. 닭날개를 만났다. 그것도 무려 20% 세일 딱지가 붙은 닭날개!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간에 팔리지 않으면 곤란한가 보다. 세일한 덕분에 닭날개 2팩을 기분 좋게 사서 돌아왔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 40여분 만에 휘리릭 만들고 작은아이 데리러 나갔다 와야 한다.


우선 스텐프라이팬을 꺼내 예열을 한다.

예열을 하는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애호박을 씻는다. 도마를 찾아 꺼내고 감자필러도 찾아둔다.

예열이 되었다. 기름을 두른다. 좀 넉넉하게 둘러도 된다. 닭날개 두팩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올려놓으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급하다. 아붓는다. 프라이팬 자리가 좀 모자라지만 괜찮다. 2층으로 쌓아 올려도 상관없다.  어차피 뚜껑도 닫을 거고 양념 부어 뒤적뒤적 섞어도 줄 것이기에 괜찮다.

 닭날개가 익을 약간의 시간 동안 애호박을 필러로 벗겨내듯 손질한다. 나는 밥대신 애호박을 면처럼 익혀 먹을 생각이다. 나름 다이어트 중이니까. 내 몫의 닭날개를 온전히 사수하려면 아이들은 밥을 줘야 한다. 쌀 씻고 밥도 하려니 바쁘다 바빠.

닭날개가 노릇해졌는지 확인하고 소금을 쌀짝 려준다. 간장으로만 양념을 하면 너무 까맣게 됨으로 보기가 싫다.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맞춰주자. 닭날개를 뒤집어 준다.  2층에 올라간 닭날개가 신경 쓰이지만 적당히 위아래 위치도 바꿔주고 창조적으로 자리를 짜내본다. 뒤집은 면이 익는 동안 양념을 준비한다. 간장과 물을 적당히 섞는다. 색이 좀 진해 보이니까 먹다 남은 백화수복도 좀 넣어준다. 잡내를 잡아줄 것이다. 한번 찍어먹어 보고 윽~~ 짜! 소리가 안 나오면 통과. 뚜껑을 열어 닭날개의 상태를 확인한다. 잘 익어가고 있는 눈치다.

설탕을 좀 뿌린다. 설탕은 양념에 넣어도 되지만 오늘은 설탕을 직접 뿌리고 싶으니 하고픈 대로 뿌려댄다. 설탕을 뿌리고 닭날개를 휘저어준 뒤 양념을 부어 넣고 고루 뒤적이며 섞어준다. 뒤적여가며 조려주면 완성이다. 살짝 양념이 졸아들었다 싶을 때 빻아둔 마늘을 투하하자. 마늘 향이 살아야 음식맛도 산다. 너무 일찍 넣어주면 텁텁해질 수도 있으니 마늘을 넣는 타이밍도 잘 잡아야 한다. 잊지 말고 뒤적여준다. 시간이 촉박하다. 닭조림이 완성된 후 닭날개를 덜어내고 그 프라이팬에다 애호박을 볶을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없다. 내가 나간 후에도 전기랜지 위에 올라가 있어야만 닭날개가 다 익을 것 같다. 닭날개를 한쪽으로 몰아놓고 얇게 저며둔 애호박을 내려놓는다. 양념이 묻게 뒤적여 준 뒤 뚜껑을 덮어준다. 전기랜지에 중불로 4분 타이머예약을 걸어두고 작은아이 데리러 쌩하니 나간다. 전기랜지엔 잔열이 있으므로 다녀오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역시 나는 요천!


7시가 넘은 시간 배고프다며 성화를 부리는 아이들을 온몸으로 막아가며 사진을 찍어댄다. 급하게 후추도 갈갈갈 뿌려 넣고 페페론치노도 빠른 손으로 뿌셔 올린다.  사진은 이만하면 건져낸 것 같다. 사진 건으니 귤도 더 듬뿍 올리고 사과도 산처럼 쌓아서 올린다. 잘못 먹으면 엄청 매운 페페론치노는 아이들이 손 못 대게 내 앞으로 옮겨놓는다. 자 시식 시작~! 음~ 맛있다. 느끼하지 않으면서도 쫄깃한 닭날개~ 은은한 단맛의 짭쫄한 양념. 설탕, 소금, 간장, 물, 마늘 만으로 그 촉박한 시간에 이 맛을 구현해 내다니 난 정말 요천이다.


허허 그런데 좀 덜 익었다. 너무 급하게 만들어서 그런가 보다. 사진 잘 찍어서 건졌으니 다시 프라이팬으로 보내 더 익혀먹으면 될 일이다. 내 아무리 출중한 실력을 가진 요리천재 요천이지만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너무 맛있게 잘 먹어서 또 생각이 난다. 밥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최고다. 오늘 저녁으로 도전들 해보시라 닭날개간장조림.


  

 















작가의 이전글 요천의 김밥 만들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