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 고수가 되고 싶다

기억의 조각보 만들기

by 이두루미

난 손재주가 없다. 손으로 하는 일 중에서도 바느질을 가장 못한다. 고등학교 1학년 기술·가정 시간에 수행평가로 ‘나만의 마스크 만들기’를 했었다. 매시간 수업을 집중해서 들었고, 유튜브에서 ‘왕초보 바느질’ 같은 제목의 영상도 많이 찾아봤다. 그걸로도 모자라 재빠르게 마스크를 완성하고 쉬고 있던 친구에게 1대 1 과외까지 받았는데도 내 솜씨는 구제불능이었다.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박음질이 엉성한, 한쪽 고리가 없는 마스크를 제출했더니 선생님께서는 참 열심히 하던데 안타깝다며 최하점을 주셨다. 내신 등급 하나하나에 목매던 당시의 나로서는 정말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자투리 천들을 한데 모으면 탄생하는, 소박하고도 화려한 조각보를 좋아한다. 근사한 조각보를 완성하려면 먼저 사용할 천들을 잘 골라야 한다. 재료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이음새다. 그렇다, 바느질을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내 손으로는 평생 제대로 된 조각보를 못 만들지 싶다.


종종 기억을 이어 붙여 조각보를 만드는 상상을 한다. 모든 경험과 감정을 안고 살 수는 없기에 우리는 그중 일부를 선택한다. 여기서도 당연히 이음새에 신경을 써야 한다. 삶의 조각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생각의 바느질. 이것도 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작년 이맘때. 중간고사를 하루 앞두고 시험 범위를 절반도 못 따라갔던 날. 두려움과 막막함에 숨통이 마구 조이는 기분이었다. 밤을 꼴딱 새우고 충동적으로 휴학계를 내버렸다. 명백한 회피였다. 그 대가로 학교에 등록금 3분의 1을 떼였다. ‘내가 방금 뭘 하고 온 거지?’ 집에 돌아와서 한참을 울었다. 바늘을 든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새 천 조각이 생겼으니까! 형편없는 실력으로 박음질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반에서 겉도는 애들의 모습을 몰래 찍어 조롱하던 무리의 만행을 모르는 체했다. 내가 나서서 말리거나 교무실에 찌르면 괜히 입시에 방해가 될까 봐. 어차피 그 친구들은 자신들이 찍힌 것도 모를 테니까 상관없다고 합리화했다. 초등학생 시절. 내 눈에만 보이는 듯한 작은 부조리들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게 적극적인 항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오면 또 도망쳐버릴 게 뻔하다. 터뜨려야 했을 때 억지로 외면한 분노가 내 안에서 곯게 둘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몇 번이고 그랬거든. 봐, 너 이번에도 도망쳤잖아? 이 조각보의 이름은 ‘겁쟁이’로 정했다.


휴학계를 내고 나서 한동안 엉성한 솜씨로 ‘겁쟁이’를 비롯한 흉한 조각보 몇 개에 천을 거듭 덧붙였다. 어쩌다 늦잠을 잔 날은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멍청이’였고 동아리 공연 무대에서 박자를 거하게 밀린 날은 ‘음악을 야매로 배운 민폐 부원’이었다. 하루아침에 휴학생이 되었으니 당연히 별 계획이 없었다. 내 앞에 놓인 5개월의 공백이 두려웠다. 뭘 해봐야 가장 후회가 덜할지 고민하다가, 나의 숙원 사업이었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당시 자취 생활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식습관이 망가진 바람에 몸이 많이 불어 있었기에.


매일 7시에 일어나서 헬스장에 나가고, 영양소가 골고루 갖춰진 세끼를 직접 차려 먹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늦게 일어나서 정오를 넘어 헬스장에 도착할 때도, 밥을 차리기 귀찮아서 음식을 배달시킬 때도 있었다. 운동을 쉬엄쉬엄 했는데 살이 쭉쭉 빠지던 기간도,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퉁퉁 붓는 날들도 있었다. 연말에는 계단에서 굴러 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운동을 두 달 가까이 쉬어야 했다. 정말이지 하나도 순조로운 게 없었다.


웃기게도 실패와 실수의 경험들이 나를 구원했다. 초반에는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쉬었을 때 ‘역시 의지박약이야. 아마 얼마 못 가서 다이어트가 망할 거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휴학계를 내러 간 날을 떠올리면 나쁜 생각의 바느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날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지만, 사소한 실패도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나는 작은 실패가 꼭 큰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한 끼쯤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운동을 한 번 쉰다고 해서 공든 탑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발목을 다쳤을 때도 잠시 우울하고 말았다. 운동을 두 달 쉰다고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가진 않을 테니까. 오히려 개강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니 근육이 더 잘 붙고 체지방은 무서운 속도로 빠졌다.


어쩌면 휴학을 비롯한 과거의 선택들이 그 자체로 나를 겁쟁이로, 실패자로 만드는 건 아니지 않을까? 못난 천 조각들을 이어 붙이니까 못난 조각보가 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 바느질이었던 게 아닐까. 다 관점의 차이였던 것이다. 그저 실패라 생각했던 ‘휴학’이라는 조각에다 운동과 식단을 어찌어찌 잘 꿰매어 보니 ‘다이어트 성공’이 나왔다. 생각을 해보면 어릴 적의 후회 가득한 경험은 내 목표의 기반이 되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조리를 찾아내 시정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이들에 맞서 싸우는 21세기형 의적이 되고 싶어서 현재의 전공을 선택했었다. 내가 그랬었지, 참.


실은 아직도 종종 내가 겁쟁이 같다. 가끔은 내 손이 나도 모르게 이상한 조각들을 집어 어딘가에 마구잡이로 꿰매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삶의 조각들이 절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한때는 멋진 천을 손에 가득 넣고 싶었는데. 이제 나는 바느질 고수가 되고 싶다.





* 25-2 '심화글쓰기' 과목의 자기소개 과제로 제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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