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를 순리로 돌려보내는 연습
생각이 변한다고 해서 감정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고, 제자리를 찾아 흘러가야만 사라집니다. 그래서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수행이 됩니다.
생각을 바꾸기로 결심해도
감정은 그보다 훨씬 더디게 움직인다.
“이제 피해의식을 내려놓자” 다짐했지만,
막상 피해를 봤다고 느끼는 순간
분노와 억울함이 먼저 치밀어 올랐다.
그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나는 여전히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나의 행동과 잘못’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일화가 그 계기였다.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떠든 것은 명백히 나의 잘못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했다면,
반장이 내 이름을 칠판에 썼다고 해서
그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와 장난을 치다 떠들었던 건 나였다.
그런데 선생님이 나만 지적했을 때,
나는 억울함과 화로 폭발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가 한 말은 맞았다.
내가 조금 더 시끄러웠던 것이다.
이처럼 나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순간,
분노나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놀랍게도 힘을 잃는다.
누군가 나를 지적하거나
‘왜 나한테만 그러지?’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사실만 바라보지 말고
나의 행동을 먼저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첫 걸음이다.
물론 살다 보면,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피해를 보는 일도 있다.
그럴 땐 분노의 감정이 더욱 강하게 올라온다.
하지만 우리는 심판자나 집행자가 될 수 없다.
오직 자연만이 그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감정을 억누를 필요는 없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그릇에 담겨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릇의 한계를 넘으면 터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믿으려 한다.
지금의 손해가 훗날, 아니면 후세대에
반드시 득으로 돌아온다고.
그 믿음이 내 감정을 다스리는 힘이 된다.
감정의 다스림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이 흘러가면,그 자리에는 평온이 남는다.
내가 지금 다스린 감정은 다음 세대의 평온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사실을 믿으며, 오늘도 나의 마음을 단련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