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자 어두운 현관 입구에 떨어진 보리의 오리 장난감. 보리가 그것을 요란하게 물어서 더는 소리가 나지 않는, 지영은 오리를 신발장위에 올려두었다. 보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지영은 챙겨주고 남은 몇 가지 장난감을 종이가방에 담으며 ㅎ펫렌털의 황실장의 번호를 눌렀다. 보리가 있을 땐 언제든 황실장과 금방 통화가 됐는데, 지나간 고객이라 관심을 끊은 것인지 번호를 삭제했는지 연결음만 길어질 뿐이었다. 지영은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알게 된 것 같았다. 삶에 빛과 같은 관계가 비단 사람과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한 건 아니었다고. 보리가 시우를 돌보고, 자신의 품을 내어주었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나는 가끔 어떤 아이를 떠올린다. 그 아이의 얼굴은 언제나 또렷하지 않다. 하지만 손의 온기는 기억난다. 작고 따뜻한 손. 그 손이 내 손가락을 잡고 골목을 따라 걸어가던 감각. 시우는 내게 ' 보리야 사랑해,라는 말을 종종 구슬처럼 맑은 눈망울로 고백했다. 그때마다 시우발의 반뼘도 안 되는 작고 하찮은 것을 시우에게 슬쩍 밀어주었다. 시우가 웃는다. 아이의 숨소리. 아이의 체온. 아이 손에서 나는 연필 냄새. 그리고 그 목소리.
“보리야!”
그 아이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치 농구공을 던지듯 가방을 던져 포물선을 그리며 소파에 떨어트린다. 뒤이어 벗은 양말들이 하늘에서 하나 둘 떨어진다. 그리곤 내게 달려왔다. 나는 잽싸게 양말 한 짝을 입으로 낚아채고는 바닥을 뒹구는다. 가장 좋아했던 양말 냄새. 양말에선 각각 다양한 냄새가 났다. 지영의 양말과 시우의 양말도 다 달랐다. 시우의 양말에서 그리운 냄새가 섞여있었다. 한동안 그 냄새를 찾아 숨을 내쉬고 들이쉬기를 반복했다. 이상하리만치 개들의 기억은 사람들처럼 오래 남질 않는다. 하지만 어떤 감정은 몸에 남는다.
혁.
혁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일이 끝나면 이미 해는 져 있었고 솜뭉치처럼 무거워진 몸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면 혁은 잠들어 있는 날이 많았다. 가끔 잠든 아이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사랑해라는 말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 곁에 자주 맴돌았다. 그 기억을 더듬고 싶어졌다. 시우의 숨결에서 혁을 생각했다.
숙제를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가만히 옆에 있었다. 그 아이가 웃으면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지키지 못했던 무언가를.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지켜 주고 싶은 것처럼.
지금 나는 두 노인과 살고있다. 매일 아침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산책을 한다. 여자노인은 허리가 아프다며 자주 낑낑거리며 신음을 할 때는 간혹 내가 오줌을 싸고 싶을 때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결국 남자노인과 자주 나가는데 산책로를 걷다 개들이 남긴 냄새를 찾아 나도 시원하게 오줌을 눈다. 그러다 어느 학교 앞을 지날 때 핸드폰을 보며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까르르 웃는 사내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아간다.
시우인가?
자꾸만 그 녀석이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