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그럴까? 한 이야기 또 해야 하는 걸까?
회사 인트라넷에 들어가 보니 후배가 작성한 연차 사용 신청 두 건이 올라왔다.
하나는 보고를 받은 거고, 다른 하나는 보고가 안된 거다.
하나는 승인하고 보고 받지 않은 것은 승인하지 말까.
그렇게 고민하다 연차 신청 두 건 모두 승인했다.
필드 기자로 일할 때 연차 사용을 신청하면 '왜?'라는 선배의 질문이 그렇게 싫었다.
왜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도 싫었고, 내가 법적으로 보장받은 것을 왜 설명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신청하기 전에 미리 이야기는 했다.
선배가 됐을 때 후배들의 연차 사용 건에 대해서는 '알았다'고만 이야기한다.
'왜?'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다만, 조직에서 급한 일이 있는 일정이라면 그 이야기를 하고 일정을 바꿔달라고 하긴 할 거다.
이런 경우는 아직 없었다.
휴가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개인의 권한이다.
난 이것을 보장해 주는 게 선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없다.
그런데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휴가 사용 건을 올려놓으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리 보고를 한다고 해서 '왜?' 혹은 '안돼'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텐데, 지금까지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 후배는 그 보고 과정을 빼먹을까.
아니 왜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뭔가를 신청하면 선배는 무조건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그런 이면에는 '내 권한 내가 쓴다는 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기저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까먹은 건가.
이런저런 잡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어보지 그랬어', 혹은 '이야기해야지'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런데 한 두 번 이야기한 게 아닌데, 사안 사안마다 이런 이야기를 또 해야 하는 게 맞는지라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밀려온다.
'후배 때는 나도 그랬나?'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다.
그래서 구차하고, 귀찮고, 짜증 나서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인 버튼을 눌렀다.
'업의 본질에 집중하고 나머지에 너무 고민하지 말라'라는 따스한 조언대로 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만다.
그렇게 보고되지 않은 휴가 신청서에 승인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그 후배는 '왜?'라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