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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 망상가 Jul 17. 2016

2탄_LG아트센터, 샤롯데시어터
<스위니 토드>

Sweeney Todd 2007 & 2016

관람 일시

2007년 9월 30일 (일) 오후 6시 30분
관람 장소

LG아트센터
관람 좌석 

2층 R석
Cast
스위니 토드 – 류정한 / 러빗 부인 – 박해미 / 안소니 – 임태경 / 조안나 – 유에시더 / 토비아스 – 홍광호 / 터핀 판사 – 김봉환 / 비들 경사 – 박완 / 피렐리 – 정현철 / 거지 여자 – 임문희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전설 스티븐 손드하임 (Stephen Sondheim)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 (Sweeney Todd)’

스티븐 손드하임 (Stephen Sondheim)
미국 뮤지컬 역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작사,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는 인물

작사와 작곡을 본인이 직접 담당해 음악과 가사가 완벽에 가깝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과 능동적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유려한 음악, 그리고 아무리 심각한 내용이라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점들이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그의 작품이 가진 이러한 독특함은 무려 7개의 토니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위대함을 인정받았다. 브로드웨이의 신인 작곡가들이 원하는 최고의 찬사가 다름 아닌 ‘포스트-손드하임’ (Post-Sondheim)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드하임’은 여전히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요 작품]
West Side Story (1957)
Gypsy (1959)
A Funny Thing Happened on the Way to the Forum (1962)
Anyone Can Whistle (1964)
Company (1970)
Follies (1971)
A Little Night Music (1973)
Pacific Overtures (1976)
Sweeney Todd (1979)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1984)
Into the Woods (1987)
Assassins (1990)

[수상내역]
1971 토니상 Company 악보&가사
1972 토니상 Follies 악보
1973 토니상 A Little Night Music 악보
1979 토니상 Sweeney Todd
1979 그래미상 Sweeney Todd
1985 퓰리처상
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1988 토니상 Into the Woods 악보
1990 아카데미 Dick Tracy 악보
1993 케네디센터 명예상
Lifetime Achievement
1994 토니상 Passion 악보

스티븐 손드하임 그의 작품 세계는 막연한 동경이었던 뮤지컬에 대해 조금 더 세부적으로, 아니 조금 더 전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해의 폭 또한 넓혀주는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스위니 토드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작품임과 동시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상영 예정이었기에 그만의 작품 세계를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다시없는 기회이자 더 없는 행복이었다.

이 작품은 당시 영국 런던에서 전설이 된 소설 작품을 연극화한 것이 원작이며 그 당시 산업혁명의 이면의 모습을 담은 상황 설정으로 인해 여러 버전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뮤지컬 배우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토드 역의 류정한과 러빗 부인 역의 박해미의 캐스팅이 마음에 들어 일정을 잡게 된 나로서 그들의 연기는 극 흐름의 집중도를 가중시키고 토드의 잔인한 복수가 파렴치한 인간이 벌이는 가장 추악한 형태의 복수가 아니라 한 번쯤 마음에 다 품고 있을 복수심이 단지 표출된 형태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박해미의 연기력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처음으로 박해미의 연기를 본 나로서 감기가 들어서인지 가끔 코가 막힌 가운데 대사가 씹히거나 음이 떨어지는 등의 기술적인 면에는 상당한 실망감이 나타났지만 그 나름대로의 러빗 부인에 대한 연기 소화력은 가히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LG아트센터 마지막 공연에 이어 다음 일정이 바로 이어진 점 때문에 기획사와 공연사가 많은 비판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것 또한 지대한 관심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니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어떻게 따질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그냥 넘기도록 하겠다.

그도 평범한 한 남자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부족할 것 없는 나름대로의 행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변신이 더욱더 마음 아프고 결국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까지 초래될 수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극한에까지 이르게 되는 현실을 보면서 무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평범한 이발사였던 벤자민 바커는 권력자의 한 형태로 등장하는 터핀 판사로 인해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아내를 잃게 되고 그의 계략으로 나라 밖으로 쫓겨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세월이 흘러 난파된 배에서 안소니가 토드를 구하게 되면서 극의 빠른 전개가 시작되게 된다. 평범한 이발사였던 벤자민 바커는 다시 돌아오면서 예전 그의 모습은 하나도 남김없이 마음속에 버려둔 채 복수만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러빗 부인을 알게 된 벤자민 바커는 그녀와의 핏빛 동맹을 통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인육 파이로 만들고 자신의 딸 또한 성적 노리개로 농락하는 터핀 판사를 결국 피로 심판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극의 끝자락 걷잡을 수 없는 반전으로 거리의 거지로 떠돌아다니는 여자가 자신의 아름다운 부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토드는 결국 그녀도 죄의식 없이 피로 심판하기에 이른다. 이면에는 러빗 부인의 몹쓸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도 인지하지 못한 채 복수만을 위해 달려오던 토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벤자민 바커의 머릿속에는 온통 터핀 판사에 대한 복수심 말고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자신의 달콤하고도 평범했던 행복을 앗아간 그를 어떻게 복수할지를 고민하는 벤자민 바커에게 토드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준 러빗 부인은 그에게 아내에 대한 진실을 숨긴 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그를 이용하기에 이른다.

결국엔 그녀도 처참히 살해되지만 이제 더 이상 토드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이발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은 암울한 런던 생활 속에서 가진 것 없고 잃을 것 없는 하찮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토드를 의심하는 눈초리 하나 없었으며 누구 하나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하염없이 보잘것없는 약자의 입장이었으면서도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과 입장이 다르지 않은 그들을 살해하면서 아무런 느낌도 가지지 못한 채 최악의 상황을 향해 앞만 보고 전진했을 뿐이다.


러빗 부인의 가게 2층에서는 한 명씩 사람을 죽이고 아래층에서는 뼈와 살을 발라 인육 파이를 만들어 대단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기에 이른다.

누구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 적이 있는가? 정말 죽여야겠다고 다짐해 본 적 있는가? 그를 죽이겠다고 시도해 본 적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아니 간혹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앞에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쉽게 아니 어렵더라도, 대답이 간단하진 않더라도 그렇다고 대답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에 대해 행동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아니 좀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될, 얼마든지 생각할 수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될 인간이기를 포기한 선택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선택을 토드는 했다. 그를 몹쓸 인간으로 아니 인간 이하의 파렴치한으로 몰기 이전에 그가 지속적이고도 양심의 가책 없이 하나씩 사람들을 죽일 때 조차도 관객의 눈에서는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암묵적인 동조와 함께 대리 만족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을 심판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신에 불과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합법화되어 있었던 사형 제도가 다시금 문제시되고 있는 요즘 인간의 오만과 파렴치를 인간이 판단하고 처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를 떠나서 그럴 수밖에 없는 그에 대한 마음이 극을 관람하는 내내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요즘 오고 가는 차 속에서 <로렌 슬레이터> 작가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작품과 유사한 내용이 있어서 발췌해볼까 한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토드의 살인 장면에서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 하나 소리 내어 살인에 대한 부정적인 내면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터핀 판사가 벤자민 바커의 부인을 농락하고 있는 그 시점에도 누구 하나 발 벗고 나서 그 몰상식하고 처절한 상황을 막으려 하지 않으며 지켜볼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터핀 판사가 벤자민 바커의 딸 조차 양녀로 삼았지만 집에 가둬 놓거나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상황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그 상황에 대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이 점이 밑에 소개되는 내용들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부분에 대해 집단의 사회적 압력과 군중 속의 방관자 효과를 입증한 달리와 라타네의 연기 실험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아래 내용이 이 책의 발췌 부분이다.

1964년 뉴욕에서 희한한 범죄가 발생하여 존 달리와 밥 라타네라는 두 명의 젊은 심리학자들이 증인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해 나섰다. 살인 사건은 새벽 3시 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일어났다. 세 차례 걸쳐 연속적으로 벌어진 이 사건은 도움을 청하는 비명에 중간중간 끊겼다. 집 안 전등을 켜고 구경을 한 사람들은 이 사건을 목격하고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한 여성이 칼에 찔리고 쓰러지는 것을 창가에서 구경만 한 사람들은 모두 38명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집단 크기와 너무나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발견한 달리와 라타네는 자신들이 ‘책임감 분산’이라고 이름 붙인 현상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적어진다는 것이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책임감이 공평하게 나누어지기 때문이었다. 책임감 분산이 사회적 예절과 결합하게 되면 그것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생사가 걸린 상황도 무시하게 된다. 가해자는 단 한 명뿐인데 대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뿐만 아니라 비상사태가 실제 상황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살인을 목격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던 심리적 이유가 사회적 체면과 방관적 자아, 다수의 무시에 의한 암묵적인 동조 때문이었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결과인가. 복잡한 두뇌와 이성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교육되어지지 않은 사회적 신호로 인하여 실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다수의 인간은 사회에 적응해 가며 자신감을 잃어가고 점차 무관심에 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자신감이란 것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상반된다. 매너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정보다 강하고, 두려움보다 원초적이다.

위의 내용처럼 인간은 암묵적인 동조를 통해 자신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토드는 그리고 그의 아내는,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터핀 판사에게 노리개가 된 토드의 딸 조안나는 몹쓸 상황의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다음으로 초반에 손드하임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로 거론되었던 음악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스위니 토드에 있어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 2층에서 지속적이고도 평범함 속에 이루어지는 살인은 그의 유려한 음악 속에서 이루어진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에 관객이 살인에 대해 조금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작품에 빠져들어 자신이 마치 제2의 토드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매개체 역할을 음악이 손색없이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 또한 평범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일상 중에 하나로 가볍게 처리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무겁고 어둡고 컴컴한 작품의 세계를 조금 더 쉽고 가깝게 접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반전에 한 없이 가슴 아파했지만 정작 이유 없이 죽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어떤 상황이 옳은 것이었는지 어떤 상황이 그른 것이었는지에 대한 판단도 흐려지면서 내가 과연 토드였다면 러빗 부인 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수 없이 되뇌어봤지만 명확한 결론은 어느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내가 토드 혹은 러빗 부인과 동일시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통쾌해하거나 혹은 가슴 아파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나 또한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다는 점과 더불어 마지막 순간엔 나도 암묵적으로 동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만을 깨달은 채 무거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왔다.

조니 뎁의 영화가 상영하게 되면 영화에서는 그 장면 장면들이 어떻게 비칠지 다시 한번 지켜볼 노릇이다. 가사집과 CD를 챙겨서 다시 한 번 읽고 들으면서 그날의 감정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람 일시

2016년 7월 10일 (일) 오후 2시
관람 장소

샤롯데씨어터
관람 좌석

1층 VIP석
Cast
스위니 토드 – 조승우 / 러빗 부인 – 전미도 / 안소니 – 윤소호 / 조안나 – 이지혜 / 토비아스 – 김성철 / 터핀 판사 – 서영주 / 비들 경사 – 서승원 / 피렐리 – 조성지 / 거지 여자 – 최은실


뭔가 2007년도 버전에 비해 음향이나 조명은 더 화려해진 것 같긴 하나 무대 연출이 단조롭고 앙상블 혹은 주연들끼리 함께 노래하는 장면들이 많아 대사 전달력이 떨어지고 2막에 급하게 결론을 내려고 한 것 때문에 1막과 2막 사이에 개연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조승우의 연기력 하나는 끝내준다는!
그만의 벤자민 바커의 탄생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박혜미의 러빗 부인은 끼 부리는 것들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반면 전미도의 러빗 부인은 적당히 극의 몰입도를 돕는 조미료 역할을 잘 한 것 같다!
또한 전미도의 경우 무엇보다 조승우와 상대역으로 연기했던 경험이 많아서인지 둘의 조합은 그저 믿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

또 다른 벤자민 바커 양준모의 연기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과거의 류정한과 현재의 조승우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음 글쎄... 좀 미지수이지 않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그도 초연 당시 스위니 토드 역할을 했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몰입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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