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가득 차고 넘친 '원망'

나를 낳아준 사람에게...

by 유화진

기억이 나는 유아시절부터 출산 후 성인이 되서까지, 나의 부모는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차디찬 계단에 앉아서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잠들 때가 일쑤였다. 나는 늘 유치원 후 혼자였고, 동생은 엄마와 함께 다녔다. 동생은 늘 엄마의 자랑이었다. 반면 엄마에게 나는 본인을 힘드게 하는 시어머니를 닮은 쇠심줄 같은 고집을 가진 년이었다.


분명히 엄마와 동생과 함께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면 덩그러니 나만 남아 있었다. 그때 내 나이 고작 5-6살 때이다. 빈 집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고, 그렇게 일어난 날은 버림을 받은 기분에 슬펐다. 어떤 날은 동생이랑 함께 일어난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동생이 있어 위안이 됐다. 하지만 그런 날보다는 혼자 일어나는 일들이 더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엄마는 나를 보며 너를 키울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천기저귀 떼다가 다 손빨래하고 삶느라 죽는 줄 알았다다고.... 그때 당시의 육아 환경을 모두 알 수 없지만, 아이가 부모의 사랑보다 천기저귀가 더 중요했을까?


"당신들의 사랑 따위는 상관없고 잘 빨고 잘 삶아진 천기저귀를 사용해 주세요~!"


이렇게 표현할 아기가 있을까?

이런 기억 때문에 엄마가 된 나는, 출산 후 더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해줬다. 나와 같이 마음의 구멍이 생기질 않길 바라며...


나의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면서 사주를 맹신했다. 그래서 여자이면서 호랑이띠에, 호랑이가 활동하는 시간인 밤에 태어난 나를 싫어했다. 사주를 볼 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 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드세다~ 드세다~ 어차피 이 아이를 부모를 모실 애가 아니에요."


부모에게 도움이 안 될 아이, 사주로 봐서는 태생부터 그른 아이였다. 그 사람들은 내가 어리다고 기억을 못 할 거라, 그 뜻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걸 찰떡같이 믿은 내 모친도... 나는 그때부터 원망이 하나씩 하나씩 마음에 쌓였던 거 같다.


사주를 보는 사람들은 동생을 보고서는 이 애가 부모를 나중에 모실 거라고 했다. 지금 현재는? 정답은 아니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아주 드센 년이었지만, 요새는 여자들이 사회에 진출이 있는 요즘엔 일복이 많은 사주라고 긍정적으로 풀이가 된다. 이런 사주풀이의 변화되는 것도 생각해 보면 너무 우습고 슬프다. 아무것도 모른 아이였을 때, 긍정적으로 사주 풀이를 주변에서 해줬다면, 나의 모친이 나를 대하는 것이 좀 달라졌을까? 나는 100%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귀가 얇은 분이라....


청소년기에 학원 선생님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 모두 나를 딸 삼고 싶다고 해주셨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정말 매일 딸 삼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를 해주셔서 하루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그때부터 나를 대하는 행동과 말투가 달라졌다.


그리고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오시는 손님마다 나를 보고 "예쁘다"라고 하셨다. 그때마다 "뭐가 이뻐요~ 내가 더 이뻐요."라고 대답하셨는데. 한 번은 손님이 이 정도면 이쁘지 뭘 그렇게 이야기하냐고 우스며 면박을 주시고, 사진 속에 나를 보고도 예쁘다고 말씀해 주신 분들이 많이 있으신 후


"사람들이 너 이쁘다고 하더라?"


하고 놀랐다는 말을 하셨다. 그때 말이 정말 이상했다. 아무리 못생겨도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쁘다던데... 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나에게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어른들이 예쁘다고 말씀하시는 게 외모가 아니라 행동이나 말씨일 수도 있는데... 왜 그걸 다 부정하고 본인이 더 이쁘다고 하는 걸까? 어미가 맞나? 그 뒤로 내가 가게에 가도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나를 위해서 도와주는 말들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내 어린 시절이 좀 더 늦게 슬픔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래도 나의 어미가 그대로라 나는 슬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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