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아이, 사랑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by 유화진

나는 첫째였지만, 남동생보다 늘 체구가 작아서 오히려 동생이 입던 옷이나 신발을 신어야 했다. 아니면 동네 언니들이 신던 신발. 새 신발을 살 수 없어서 마음에 드는 신발은 발에 꽉 껴서 불편한데도 오래오래 신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지금 무지 외반증이 있나 싶기도 하다.


지금 드는 의문은 왜 엄마에게 나는 동생보다 못한 모지리였나?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는 동생보다 말을 잘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멍청한 줄 알았다고...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내가 다녔을 초등학교 시절에는 1학년에 수학, 과학, 언어에 대한 시험을 봐서 이 아이가 얼마나 똑똑한지에 대한 시험이었는데, 나는 동생보다 전 영역에서 높은 점수였다.


그래도 엄마의 생각은 바꿀 수가 없었다. 말이 느려서 나는 멍청한 아이였고, 행동도 느려서 답답한 아이였다. 학교에서는 사고 치지 않고 선생님이 답답해하지 않을까?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정말.


초등학교 때 엄마가 숙제를 봐준 적도, 가방을 챙겨준 적도 없었다. 혼자 알아서 늘 챙기고 숙제도 알아서 했다. 그래도 나는 멍청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 노릇을 잘 못하고 바깥에서 늘 맴돌던 아빠에 대한 화를 나에게 쏟았던 거 같다. 분풀이 대상. 제일 약한 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엄마가 허리가 아플 때도 나는 혼자 외할머니께 맡겨졌다. 어릴 때지만 뭔가 촉이라는 게 있지 않나. 아빠가 그냥 나를 두고 가버릴 거라는 촉. 졸음과 싸우다 너무 졸려 아빠한테


"나 두고 혼자 가지 마"

"알았어"


대답을 듣고 나서야 잠을 청했는데, 눈을 뜨고 나니 덩그러니 혼자였다.


그때 대청마루 앞에 보이는 먼산을 보며 "엄마~ 엄마~" 끊임없이 외치며 울었다. 너무 어릴 때라, 그렇게 내가 크게 소리를 내서 부르면 엄마든, 아빠든 나를 데리러 올 줄 알았다.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때의 감정은 절망이었다. 그렇게 2-3일 울고 외할머니를 따라다녔던 거 같다.


근데 오히려 내 어린 시절 기억 중 그 이후 기억은 따뜻함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가 물을 따뜻하게 데워서 목욕해 주신 기억, 달걀 프라이를 잘 먹어서 늘 달걀 프라이를 해주셨던 기억, 잘 때는 토닥여주시면서 잠잤던 기억. 왜 내 따뜻한 기억 중에는 엄마와의 기억은 없는 걸까? 왜 슬프고 힘든 기억밖에 없을까? 이럴 수도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지금, 내 가슴에 난 커다란 구멍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이렇게 구멍 난 가슴을 가진 내가 온전히 아이를 사랑하면서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고 막막하다. 받은 사랑이 적어도 큰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내 아이에게는 마음 가득 사랑을 채워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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