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들은 몸에 남는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기억을 순서대로 적다 보면,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어떤 기억은 내 감정 속에서 더 부풀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흐려질 수 있어도, 상처는 몸 어딘가에 남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왜 여자는 여자를 미워할까.
남자도 남자를 그렇게 미워할까.
왜 부모라고 해서 모두 같은 부모는 아닐까.
신은 왜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두었을까.
신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라고는 하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모르는 신의 언어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 읽지 못한 문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번 생긴 물음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보려고 했다.
사랑해보려고도 했다.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런데 용서를 하려고 할수록, 이상하게도 또 다른 용서할 일이 생겼다.
하나를 겨우 넘기면 또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자꾸 묻게 된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너 같은 게 무슨 실장이야. 어디 남의 사업 망치려고 해. 그만둬.”
내가 어느 회사의 장이 되었을 때, 엄마가 내게 한 말이다.
“아기가 엄마 뜯어먹는 거야.”
내가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할 때,
엄마는 내 아이와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동생은 모유수유를 거부했지만, 나는 엄마 젖을 먹고 자랐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 젖을 먹던 시간 동안, 엄마는 나를 자신을 뜯어먹는 존재로 여겼던 걸까.
나는 처음 아이가 내 젖을 물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내 몸이 다른 한 존재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
낯설고도 따뜻한,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함.
엄마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이 분명히 있었다.
이 작고 어린 존재가 나 없이는 삶을 이어갈 수 없겠구나.
내가 정말 잘 지켜줘야겠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엄마는 달랐던 것 같다.
출산 후 나는 전신 소양증을 앓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잠을 못 자니 입맛도 사라졌다.
몸은 점점 약해지고, 마음도 같이 무너졌다.
힘들다고 몇 번이나 엄마에게 전화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네 몸은 네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주지 않아.”
아이가 여덟 달쯤 되었을 무렵, 엄마와 1년 정도 함께 살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넌 나를 빨아먹으러 왔어.”
나는 그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청소를 해주기는 했지만, 육아를 도와주거나 음식을 챙겨주지는 않았다.
주말이면 친구 집에 간다며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그때의 나는 출산 후 여덟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온몸에 소양증이 남아 있었다.
몸을 회복해보겠다고 15분쯤 달리고 나면, 그 뒤로 2주를 끙끙 앓아야 할 만큼 체력이 바닥이었다.
남편은 집 밖에 있는 시간이 긴 직업이었고,
나는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엄마와 같이 살면 적어도 밥은 제때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건 내가 너무 크게 기대한 것이었다.
요리를 잘하지 못했던 나는 찌개 하나를 끓이는 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계란말이 하나를 만드는 데도 40분씩 걸렸다.
그렇게 겨우 내 아이에게 먹일 것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엄마와 같이 산다고 하면,
당연히 엄마가 밥을 해주고 아이도 좀 봐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나는 자동처럼 말했다.
“저희 엄마는 그런 엄마 아니에요.”
그랬다면, 엄마와 함께 살던 시절에 내 몸은 조금 더 빨리 회복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엄마 옆에서 또 한 번 작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는 원래 그렇게 아프고.”
아픈 나를 보며 엄마가 한 말이다.
어떤 말은 지나간 뒤에도 지나가지 않는다.
어떤 말은 들은 순간보다 한참 뒤에 더 깊게 박힌다.
그때는 버티느라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보니 비로소 알게 되는 말들이 있다.
아, 저 말은 나를 전혀 돌보지 않는 사람의 말이었구나.
아, 저 말은 위로가 아니라 상처였구나.
나는 오랫동안 엄마를 이해해보려고 했다.
그 사람도 힘들었을 거라고,
그 사람도 사랑받지 못해 그런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그러니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용서는 이상했다.
한 번 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용서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장면이 떠올랐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용서할 것이 자꾸만 늘어났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한 번의 큰 상처 때문만이 아니었다.
작고 날카로운 말들이 오래, 자주, 반복해서 나를 스쳐갔기 때문이다.
나는 매번 조금씩 베였고, 그 상처들은 아물지 못한 채 겹겹이 남았다.
그날,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계속 상처와 용서의 굴레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정 속에서 더 부풀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흐려질 수 있어도, 상처는 몸 어딘가에 남는다.
어떤 기억은 내 감정 속에서 더 부풀어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흐려질 수 있어도, 상처는 몸 어딘가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