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닮고 싶지 않은 삶의 모습이 있었다.
나는 정말 그런 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가 닮고 싶지 않았던 모습과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늘 자기보다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 곁에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애써 부러워하지 않으려 했고, 그러면서도 그 세계에 속하고 싶어 했다. 마치 자신은 원래 그 정도 삶을 살아야 할 사람인데, 운이 좋지 않아서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 사람처럼 보였다.
여기서 그녀는, 나를 낳아준 사람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일이 스스로를 얼마나 갉아먹는지 잘 몰랐다.
어쩌면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바른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비위를 맞췄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다정했고, 필요한 만큼 유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그들에 대한 험담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이 늘 혼란스러웠다.
좋다는 걸까.
싫다는 걸까.
부러워하면서도 깎아내리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미워하는 그 이중적인 마음을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했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 사람들 중 한 명은 일정한 돈을 줄 테니 청소를 도와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몸을 바쳐 일했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며칠씩 앓아누웠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왜 그 일을 놓지 못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말했다.
자기가 일을 깔끔하게 하니까 좋아하는 거라고.
그러면서도 또 말했다.
자신을 부려먹는 거라고.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자랐다.
좋아한다는 말과 이용당한다는 말이 한 사람 안에 동시에 들어 있는 것이 이상했다.
왜 저렇게까지 괜찮은 척하며 살아갈까.
왜 어떤 관계는 위로이면서 동시에 모욕이 될까.
왜 그녀는 자꾸 자신을 다치게 하는 쪽으로 걸어 들어갈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그런 사람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 변화는 말로는 오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고 나서야 가능했다.
그들의 자녀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했을 때,
우리 쪽은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아갈 때,
그들 쪽은 여전히 자식 문제로 속을 끓이고 있을 때,
그제야 그녀는 더는 그들의 고민 상담사가 되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더는 비위를 맞추는 말과 행동으로 자신을 지탱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 것 같았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던 사람이, 상황이 달라지자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지금의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건 그녀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내 모습에서 자꾸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다른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있다.
그녀는 그 비교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내게 쏟아냈고, 나는 그 감정을 내 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는 점.
하지만 방향만 다를 뿐, 비교가 사람을 좀먹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나는 그게 두렵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이 불안정한 감정이 내 딸에게도 새어나가고 있지는 않을까.
말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아이는 어른의 표정과 한숨과 침묵을 생각보다 정확하게 배운다.
각자의 삶은 원래 다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자꾸 비교를 하며 스스로를 괴롭힐까.
왜 되지도 않는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가려 하며 지칠까.
사실 그들이 정말 지금의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내가, 누군가의 눈에는 더 부러운 삶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비교를 하며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가는 걸까.
편안한 삶, 평온한 삶이 나에게는 너무 낯설어서일까.
늘 긴장하고, 늘 부족함을 느끼고, 늘 바깥을 더 의식하는 방식이 너무 오래 익숙해져서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 아닌가.
편안하게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계속 이렇게 괴로워해야만 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을 받고,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는 걸까.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익숙해진 방식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까.
나는 이제야, 나도 모르게 해오던 비교를 멈추기로 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 자꾸 돌아갈 것이다.
무심코 남의 삶을 들여다보고, 무심코 내 삶을 평가하고, 무심코 스스로를 깎아내릴 것이다.
그래도 멈추기로 했다.
이 비교가 결국 나를 갉아먹고,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부정적인 결로 스며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이런 불안정한 감정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끊기로 했다.
끊임없이 나를 비교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던 SNS부터 끊기로 했다.
자꾸 바깥을 보는 대신, 지금 내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삶을 바라보기로 했다.
타인의 삶에 집중하는 대신 나의 삶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을까.
내가 놓치고 있던 소소한 기쁨들.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는데, 남의 삶을 보느라 미처 알아보지 못한 행복들.
평온해서 지나쳐버렸던 순간들.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의 삶을 흉내 내며 나를 증명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
적어도 내 아이 앞에서 흔들림을 대물림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닮고 싶지 않았던 삶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프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렸다는 건, 어쩌면 거기서 멈출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비교로 나를 키우는 대신,
평온으로 나를 길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