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목이 마를까
2025년, 마흔이 되면서 내 삶에서 불필요했던 인간관계들이 폭넓게 정리됐다.
처음에는 홀가분했다. 나를 힘들게 하던 것들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의지를 불태웠다. 새로운 지식을 채워 넣고 싶어서 6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4~5시간씩 강의를 듣기도 했다.
나는 늘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던 사람들의 지금이었다. 그들과 나는 이제 다른 위치에 있었다. 나는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계속 비교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교의 끝에서 늘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못나도, 그렇게 못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초라한 내 모습만 또렷하게 보였다.
직장도 예전 같지 않았다.
통장도 넉넉하지 못했다.
내가 계속 달려온 시간이, 딱 지금의 월급 크기처럼 느껴졌다. 출산 후 복직했을 때만 해도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경력을 계속 유지해야 해’라는 마음으로 일했다. 그런데 어느새 2년이 지나고 나니 그 마음은 흐려졌다. 예전만큼 잘되지 않는 직장을 보며 화가 났다. 늘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는데, 더 이상 출근이 즐겁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다.”
직장 동료가 물었다.
“왜 누군가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의 내가 너무 초라해서, 사는 게 재미없다고.
차마 그렇게는 말하지 못했다.
20대의 나는 달랐다.
퇴근 후에도 1~2시간씩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가 책을 조금 읽거나 쉬다가 다시 출근하는 생활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퇴근 후 운동을 가는 것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왜 달라졌을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인데, 왜 지금은 하기도 싫어진 걸까.
출산 후 다른 여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다시 초라해진다.
뭔가 바쁘게,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방법이 잘못된 건지, 방향이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도 아니고, 애초에 내 깜냥이 그 정도였던 걸까.
마흔이 되어서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여기까지인지, 나는 여기까지밖에 안 되는 사람인지 자꾸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며, 그렇게 살아도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 나는 도대체 무엇에 이렇게 목이 마른 걸까.
지금의 나는 내 목마름을 해소할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삶의 추진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다시 혼자 에너지를 만들어 출동해야 하는데, 그럴 기운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내가 세워둔 계획들을 밀고 나갈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게 너무 한심하고 바보같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내가 그려놓은 미래의 흐름대로 조금씩 흘러간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나는, 내가 세웠던 계획들 쪽으로 조금씩이라도 가고 있는 걸까.
사람들은 가장 힘든 시기를 잘 보내야 더 단단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까.
전에는 방향이 보였다.
하지만 출발은 비슷했는데 지금은 너무 멀리 가버린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가고자 했던 방향마저 의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까.
나이를 더 많이 드신 분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계실까.
살면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뭔가가 될 것만 같은 꿈을 품고 살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에 오는 무기력함이 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걸까.
오늘 우연히 매드클라운의 ‘죽지마’라는 노래를 들었다.
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한 시간만 더 살아보자.
건조기만 돌려도 한 시간 금방 가.
건조기에서 갓 나온 빨래 냄새를,
그거 맡으면서 힘내자.”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빨래 냄새를 맡으며 힘내자니.
너무 사소하고 평범해서 오히려 진심처럼 들렸다.
그래서 문득 내가 느끼는 이 무기력함이 조금 미안해졌다.
어쩌면 삶은 거창한 이유로만 버텨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대단한 목표나 눈부신 성취가 아니어도,
건조기에서 갓 나온 빨래 냄새 같은 것 하나로도
조금 더 살아낼 수 있는 날이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나는 길을 잃은 것 같지만,
정말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목이 마르다는 건,
아직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