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안아주는 어른이 되어간다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는 순간, 기억은 아주 빠르게 과거로 나를 데려간다. 그러면 엄마가 내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마치 복사해 붙여 넣기라도 하듯, 나도 아이에게 그대로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나 자신에게 분노한다.
겉으로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지만, 사실 그 분노는 아이를 향한 것이 아니다. 나를 향한 분노다.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면 늘 후회가 남는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런데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왜 이런 충동이 올라오는지, 왜 이성적으로는 알겠는데도 마음은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지. 그럴 때면 내가 마치 악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또 막막해진다. 어떻게 해야 이런 충동이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사는 말한다. 엄마와 풀리지 않은 불편한 이야기들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어서 그렇다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견디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충동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한다.
절대로 아이에게 쏟아내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참고 삼키려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억누를수록 어떤 날은 그 감정이 미사일처럼 뚫고 올라온다. 그리고 겨우 눌러질 때조차 내 안에는 또 다른 감정이 생긴다. 바로 억울함이다.
왜 나는 이렇게 힘든데,
왜 나는 받지 못한 것을 해내야 하는데,
왜 나에게는 누구도 이렇게 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이해하고 기다려야 하는가.
물론 안다.
그 억울함이 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고, 내가 감당해야 할 오래된 슬픔의 원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억울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마 그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아직도 내 안에서 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뭐가 불편하니?”
“왜 그러니?”
“엄마가 네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게.”
아이가 짜증을 낸다고 함께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행동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기다림과 너그러움.
내가 원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 아이에게 그것을 건네려 할 때마다 어렵다.
받아본 적 없는 것을 건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이 든다.
아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 시절의 내가 되어버리고, 그러면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천천히 글을 쓰다 보니 알겠다.
내가 아이에게 내는 화 속에는, 사실 오래전 울지 못했던 내 울음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마주하지 못했던 감정을 이렇게 문장으로 붙잡고 나니 눈물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아이에게, 오래전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00아, 울어도 돼.
00아, 울어도 돼.
그때 많이 힘들었지?
그때 많이 서글펐지?
그때 많이 무서웠지?
내가 알아.
내가 너를 알아.
내가 안아줄게.
내가 네 곁에서 너와 함께할게.
우리 서로 위로해주면서 함께 살아가 보자.
누군가에게서 끝내 이런 헤아림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적어도 나는, 나에게 내가 원하는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