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을 보니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 있었다.
벌써 올해만 2번째였다.
“음식 해서 보내지 마세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
출산하고 남편도 직장에 10시간씩 일할 때라
거의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던 때가 있었다.
모든 엄마들이 그러려나...
그때 당시 나는 온몸에 진물과 상처로 범벅이었다...
그렇게 아파도 힘들어도 그때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미 아이는 5이 되었고, 절연한지는 1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제와 갑자기 음식을 만들어서 보내기 시작하셨다.
나는 그 음식이
온전히 나에게 미안함보다
본인의 죄책감을 덜어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음식들도 동생이 좋아하는 국과 반찬이였다.
온전히 나를 위한 음식이 아님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말했다.
필요 없다고. 이제 와서, 필요 없다고.
정말 필요 없었다.
나는 이제 한시간 반 동안 국하나 반찬 하나 만들지 않는다.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났다.
“오해하지 마라.”
“너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 힘들게 살아왔다. ”
“네가 잘못을 했으면 바로 고쳐 잡아야 한다.”
보내신 문자 속에서
폭력과 폭언을 정당화했다.
자식이면 막대해도 된다는 마인드.
하지만. 그게 아들한테는 적용되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려서 누워도 바닥에 닿은 부분들이 아프고,
앉아 있으면 몸을 가눌 힘이 없어서
아프다고 말해도
“네몸 아픈 게 뭐가 중요하냐”는 말씀하셨다.
" 몸이 아프더라도 시댁은 가야지!!"
몸이든 마음이든,
내 아픔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본인이 나로 인해 욕먹는 게 싫으셨을 뿐이었다.
진짜로 황당스러운건,
책장이 새로 와서 엄마의 피부가 가렵기 시작했다.
그 방에서 못 자겠다고. 엄마는 바로 친구네로 향하셨다.
새로 도배 후 뒤통수가 진물로 져서 배게를 배고 눕는게 어려울 때,
" 너는 월래 아프잖아." 라고 말하셨던 분이.
본인 몸 가렵고 힘든건 못 잠겠다고 뛰쳐나가셨다.
인생은 혼자라더니. 지독하고 지독하게 외로웠고 힘들었다.
엄마는 그놈의 ‘도리’를 말했다.
“자식으로서의 도리.”
그 말은 언제나
내 몸과 마음 위에 덮이는 이불 같았다.
따뜻해서가 아니라
숨이 막혀서 무서운 이불.
그런데 그 도리가 나한테만 적용됐다.
동생이 나에게 하대하거나 막대 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였고,
내가 아파서 시댁을 못 가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거였다.
엄마는 나에게 길게 답장을 보냈다.
“내가 때린 건 잘못했다. 하지만 네가 화나게 했다. ”
“가난했고 힘들었고.”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네 행동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
사과처럼 보이지만
결국 중심은 또 엄마였다.
그리고 그동안
"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
" 네 사주가 나를 태워 죽이는 사주다."
"네가 나를 빨아먹으려고 한다."
수없이 이야기했으면서
이제 와서 사랑한다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엄마의 고생.
엄마의 마음.
엄마의 결론.
그리고 엄마의 말들 속에서
‘이해해야 하는 사람’이 돼야 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에너지가 더 이상 없다.
그동안 많은 모진 행동과 말들을
이해하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무슨 의미로 그 음식들을 만들어왔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날, 내 배에 칼을 들이대며
더 이상의 공격을 막으려던 그날
칼로 찔러서 죽어보라고 말했던 그날,
나는 엄마의 딸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