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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희 Dusky Jan 07. 2021

여행의 시작은  티켓을 예매하는 순간부터

여행 못지않게 즐거운 여행 준비

2018년 2월


그래서 나는 <집시 재즈 기타리스트 'Denis Chang'의 일본 도쿄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도쿄로 가는 비행기 티켓 예매를 감행했다. 사실 당장은 도쿄로 가는 것 외에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무모하게 떠나는 여행만큼이나 여행 준비도 무모한 편이었는데 여행하면서 숙소의 위치 때문에 동선이 제한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가끔은 당일 숙소를 정해놓지 않고 움직이기도 하는 나는 이번 도쿄 여행 역시 처음 머물 숙소만 며칠 예약해두고는 그냥 정말 계획 없이 말 그대로 발길 닫는 대로 움직여 보기로 마음먹었다.


거기에 덤으로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음악 여행'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서 나는 없는 살림에 카메라도 12개월 할부로 용감하게 구입했다. 예전에 한 친한 사진작가 형이


"아이폰 할부로 사나, 카메라 할부로 사나 그게 그거다."


라고 했던 말이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Panasonic 사의 미러리스 카메라 GX85라는 모델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요긴하게 잘 사용하고 있는 좋은 카메라이다. 최근인 2020년 11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풀프레임 카메라인 Sony의 A7C를 (이번에도 12개월 할부) 구입했고 그전까지 나의 모든 사진과 영상들은 대부분 이 GX85로 촬영된 것이다.

필자의 GX85. 출시된 지 꽤 오래됐는데도 사진과 영상 촬영에 좋은 성능을 보여준다.


원래 여행을 가기 전 미리미리 짐을 싸 두는 성실한 성격이 전혀 아닌 나는 그래도 최소한 잊어먹고 가는 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져가야 할 물건들을 생각날 때마다 이렇게 노트에 아무렇게나 타이핑해 놓고 나중에 짐을 꾸리면서 하나하나 체크하곤 한다. 거의 여행 가는 날이 되어서야 헐레벌떡 짐을 싸는 게으른 성격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두지 않으면 높은 확률로 필요한 물건을 빼먹고 출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냥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을 만큼의 간단한 여행 용품을 반 정도 채워둔 배낭을 항상 준비해두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 여행을 다녀온 뒤 당장 필요한 것만 배낭에서 꺼내고 나머진 귀찮으니까 그대로 두는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제주도 여행이나 짧은 기간의 일본 여행은 전날, 심지어 출발 몇 시간 전에 여행을 결정하고 티켓을 예매한 적도 많다. 그럴 때면 반쯤 채워둔 배낭에 그냥 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대충 욱여넣고는 출발해버리는 것이다. 뭐 이삼일 짧은 여행에서야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즐기면 될 일이니까 말이다.

2018년 2월 도쿄 여행을 위한 노트 일부.

다년간 많은 여행을 다니면서 이제는 고착화된 여행 물품도 많지만 이래 봬도 엉성해 보이는 내가 여행 물품을 정하는 대에는 나름 나의 여행 스타일을 기준으로 꽤 엄격한 기준이 있다. 조금이라도 불필요해지면 여행 간에는 그냥 짐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특히 자전거 여행을 꿈꾸고 있는 요즘에는 짐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자전거에 부담을 주고, 속도도 느려지기 때문에 점점 더 짐의 무게를 줄이려고 계획하고 있다.




나는 '여행의 시작은 티켓을 예매하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티켓을 예매하고 나면 웬만하면 취소하는 일이 잘 없기도 하거니와 출발 전까지 정말 하루하루 여행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티켓을 예매하고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다음 여행을 떠올리고, 또 생각하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단순히 집에서 출발하여 공항을 거쳐, 비행기를 타고 원하는 나라에 도착하고 나서야 시작되는 것일 테지만 나에게 여행이란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떠올리는 순간부터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그 두근거리는 모든 순간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한 번의 여행을 시작하고, 또 끝마치는 과정에서 내가 겪게 될 수많은 경험과 느낌, 그리고 어쩌면 얻게 될 깨달음까지.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 모두를 나는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해서 티켓을 예매하고 다음, 그리고 또 다음 여행을 계획하며 꾸준히 여행을 계속하는 한은 나는 평생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여행을 하며 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행복한 기분인 채로 말이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봐도 고국에 돌아가는 순간부터 앞으로가 막막해질지도 모르는 이 무모한 여행을 나는 정해진 숙소도 없이 배낭 하나, 카메라 하나 들고 용감하게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가볍고 즐거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히 여행을 떠나는 누군가의 마음보다 좋은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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