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구로, 구로로 가는 급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 왕복 3시간 넘는 거리로 출퇴근을 한지도 10년이 넘었다. 어디 회사뿐이겠는가, 학창시절부터 치면 거의 반평생을 지하철 1호선의 힘을 빌려 살아온 내게 지옥철은 그저 일상이다. 거기에 노후된 열차의 고장, 지하철 노조의 파업 등 특수한 이벤트도 이따금씩 경험하다 보니 어지간한 인구 밀집 현상은 시시한 것이다.
비단 나뿐만은 아니다. 내가 봐온 1호선 승객들은 대체로 ‘고인물’이요, ‘보살’이다. 어지간히 붐비는 상황에서도 무심에 가까운 침착을 유지하고, 누군가에게 밀리거나 밟혀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한다. 일일이 화를 낼 에너지라도 아껴야 지옥 같은 1호선에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오늘 아침은 조금 달랐다.
간밤에 있었던 무궁화호 탈선 사고로 인해 선로가 완벽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늘상 타던 용산행 급행 열차는 사라졌고, 조금 느리더라도 완행을 타거나, 환승을 하더라도 구로까지만 가는 급행이라도 타야 했다. 한 정거장을 이동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게다가 전장연 시위까지 겹쳤다는 안내방송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정상 운행이 불가능했다. 지하철 안은 물론 바깥 플랫폼에까지 그득그득 사람들이 들어찼다.
그래도, 내가 본 중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이를테면 여의도 불꽃 축제라든가 아이돌들이 대거 등장하는 드림 콘서트, 한국시리즈가 끝난 직후만큼은 붐비지 않았다. 게다가 몇 년 전 파업을 했을 때에 비하면 오늘은 적어도 발 디딜 틈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하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타지 마세요!”
“아, 진짜 밀지 좀 마시라구요!!”
“이러다 사람 죽어!!!”
“씨발, 그만 좀 타!!!!”
참사가 있은지 불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사람들이 선 채로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번화가 골목길에서 걷다가 죽는 세상이라면, 지하철에서 죽는 일 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지하철 안에 탄 사람들은 선 채로 죽음을 맞을 수 없어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거리를 두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빽빽하게 플랫폼에 늘어선 사람들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타지 말라고, 다음 열차 타라고, 이러다 죽는다고.
그러나 대기하던 사람들은 이미 수 차례의 열차를 보낸 뒤였다. 근태를 지키기 위해, 가게 문을 열기 위해, 면접을 보기 위해, 병원에 가기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간절한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한 명만 더, 나 한 사람만이라도 더… 그렇게 밀고 들어온 지하철은 점점 공포의 밀실이 되어갔다.
나는 운이 좋았다. 자리에 앉아 있었으므로 선 채로 죽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무리해서 민다면? 한두 사람이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내 위로 몽땅 포개어진다면? 나 또한 깔려 죽을 것이다. 밟혀 죽을 것이다. 나도 죽는다. 죽게 된다.
[여보...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나 너무 무서워 ㅠㅠ]
지하철에 사람이 많은 건 특별한 일도, 무서운 일도 아니건만 내 손가락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마스크 안에 고였다.
구로에 정차해야 하지만 빈 선로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이번엔 응급 환자 발생으로 대기중이라는 방송이 나왔고, 이윽고 숨을 쉬기 어려우신 분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달라는 방송이 연달아 나왔다.
그때부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짓누르고 있지 않는데도 기도가 꽉 막혔다. 무릎 위에 놓았던 가방을 가슴께로 끌어올렸다. 눈물로 축축해진 마스크 사이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서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위태로워 보였다. 서로에게 닿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절망과 공포가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이태원 참사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다. 평생 이태원에 가 본 일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아이 어린이집 행사 말고는 할로윈을 기념한 적도 없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이나 지인도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피부로 와닿을리 없었다.
그러나 어째서 지금 고인들이 떠오르는 것일까. 나는 그저 출근을 하는 중인데, 왜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하나. 그들은 그냥 놀러 나갔을 뿐이었는데, 왜 돌아오지 못했나. 만약 이 지하철 안에서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내게 “그러게 오늘 같은 날은 얌전히 집에나 있지 뭣하러 기를 쓰고 출근을 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얼마나 갑갑했을까, 무서웠을까, 허무했을까, 서러웠을까….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목적지인 합정역에 도착했다. 살아서. 죽지 않고서.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더 가야 사무실이 나오지만, 오늘은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 이미 한참 지난 출근 시간은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좁은 골목을 가로지르는 지름길 대신, 빙 둘러가야 하는, 볕이 드는 큰 길을 택했다. 지하철에서 내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천천히 폈다. 부자연스러울 만큼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한 걸음 한 걸음 야무지게 걸었다. 살았다. 죽지 않고 살아서 내렸다. 그 기쁨을 만끽해야만 할 것 같았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도인 것만 같았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화장실에 들러 얼굴을 정돈했다. 눈물을 닦고 코도 팽 풀었다. 살아 있는 나는 오늘의 할 일들을 해내야 한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안녕하ㅅ….”
그러나 매일 아침 일상적으로 하던 이 인사말의 무게가 새삼 묵직하여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다. 나는 지금 안녕한가. 우리는 모두 안녕한 거 맞나. 오늘은 안녕하지만, 내일도 안녕할 수 있을까. 과연 어떤 아침 인사가 적당할지 고르느라 나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