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페리보다 더 웃길 수 있을까?

by 우주속의 먼지


프렌즈에서 나의 최애 캐릭터, 챈들러 빙 역의 메튜페리 아저씨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낸 사이일수록 죽음의 상실감이 크게 오기 때문에 더 슬픈 거라고 말한 어느 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 때문에 매일 봤던 애완견의 죽음이 가끔 보던 할머니의 죽음보다 슬픈 것이라고. 듣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내 할머니의 죽음에 운 적이 없다. 그러나 친한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난 적이 있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이 들으시면 까무러칠 일이다.


그 말 대로라면 메튜 페리의 죽음은 여느 친한 사람의 죽음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프렌즈 시즌 1부터 10까지 돌려보기를 몇십 년에 걸쳐 여러 번 했던 나로서는, 그러니까 그를 본 시간이..


20분 x 24회 x 10시즌 x 최소 30번 돌려봄 = 144,000분 = 2,400시간 = 100일.


직장 동료를 하루에 6시간씩 얼굴 마주대고 본다고 쳤을 때 약 2년간 매일 얼굴 본 사이이거나, 혹은 20년 동안 1년에 한 달을 주기적으로 만나던 사람인 것이다.


프렌즈에 등장하는 남자 세 명 중에서는 이상하게도 가장 인기 없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이상하게 셋 중 매력은 가장 넘친다. 코미디 극이라 그렇게 설정했을까? 잘 생긴 사람이 잘난 연기를 하면 지루하지만 잘 생긴 사람이 못난이로 나오면 재밌는 그런 걸 노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의 유머. 이상하게 극 중에서는 별로 안 웃기거나 하찮거나 썰렁한 농담으로 비칠 때가 있는데(아마 그의 캐릭터가 엄청 센스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약간 찌질한 사람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일까) 난 그의 유머가 세상에서 제일 웃기다고 생각한다. 웃길 뿐만 아니라 센스와 지성으로 가득 차 있다.


직업도 잃고 애인과도 이별한 모니카가 사업을 하겠다며 산더미처럼 병을 쌓고 잼을 만들다가 이제 자기는 잼 만들기는 그만하고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하자 ‘아이는 더 큰 병이 필요할 텐데...’라고 한다거나

Rachel: Well, what happened to your jam plan?

레이첼: 잼 사업에 무슨 문제 있어?

Monica: I figured out I need to charge seventeen bucks a jar just to break even. So, I've got a new plan now. Babies.

모니카: 병 하나를 17달러에 팔아야 본전을 찾는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다른 계획을 세우려고. 바로 ‘아기’ 야.

Chandler: Well, your gonna need much bigger jars.

챈들러: 음 그건 더 큰 병이 필요할 텐데.



설인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새로 이사 온 사람과 한바탕 싸우다가 결국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온 레이첼에게 모니카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Rachel: That yeti is one smooth talker

레이첼: 그 설인이 말빨 한번 끝내주더라.

Chandler: Yeti’s are smooth talkers. That’s why you never see any pictures of them. Come here baby, give me the camara!

첸들러: 설인들 진짜 말빨 좋아. 그래서 걔네 사진이 없는 거야. ‘자기야 이리 와, 그 카메라 이리 줘봐.’



새로 결혼을 하게 된 로스가 아내의 요청으로 친구들과 먼 거리에 살림을 차리게 되어 모두가 서운해하거나 걱정할 때 (결혼식장에서 신부 이름을 잘못 말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로스가 아내에게 겨우 용서받고 어떻게든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려고 아내의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는 중)

Ross : Yes! Yes! I mean it's-it's kinda far from work, but uh, y'know, I'll get so much done on the commute. I-I've been given the gift of time!

로스 : 직장과 좀 거리가 있긴 하지만 오가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난 '시간' 을 선물 받은 거지.

그러자 챈들러는 이렇게 말한다.

Chandler : Now that's so funny, because last Christmas I got the gift of space. We should get them together and make a continuum.

챈들러 : ‘재밌네, 왜냐면 지난 크리스마스 때 난 '공간' 을 선물 받았거든. 그 두 개를 합쳐서 '연속체' 를 만들어보자.’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챈들러식 유머가 등장하는데 볼 때마다 작가의 유머감각과 센스에 감탄하곤 했다. 물론 메튜페리가 그만의 방식으로 잘 살려낸 덕도 있다. (같은 유머를 다른 사람이 하는 걸 상상해 보면...) 이 정도면 챈들러 유머모음집이 나와야 할 것 같지만 저작권 때문에 안 되겠지? 혼자 만들어서 혼자라도 봐야겠다!

글로 적을 수 있는 유머 외에도 챈들러만의 말하는 방식(Could I BE more~)이나 그만의 표정과 몸짓, 썩소 등은 같은 대사도 챈들러식 대사로 모두 바뀌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최근에 많이 생각하게 된 점인데 챈들러는 극 중에서 가장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남들은 모두 배우, 요리사, 고고학자, 웨이터(나중에 패션업계 진출), 맛사지사(이면서 괴짜 가수) 등 일반적이지 않은 직업인 데 반해 챈들러는 어떤 큰 기업의 숫자를 다루는 어느 부서에서 파티션을 친 자리에 컴퓨터를 놓고 일한다(나중에 승진해서 사무실을 갖게 되긴 하지만).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친구들이 모르는 설정이 웃프다. 가끔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친구들이나 부모님이 모르기도 하는데 마치 그런 상황 같았다. 공항 카드 직업란에 그냥 '회사원' 이라고 쓸 만한 그런 일. 가장 평범한 직장인 같은데 미드나 할리우드 영화에선 이런 직업이 가장 지루한 직업 취급을 당한다. 그래서 별 볼일 없는 챈들러라는 캐릭터가 완성되었을지도 모른다. 프렌즈를 수십 번 돌려봐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은 저 말도 안 되는 코미디의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중간다리가 챈들러였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성실하게 직장 생활하며 한 푼 두 푼 모으면서 반백수 배우인 룸메이트 조이를 잘 보살펴주고, 여자들에게 인기 없지만 진짜 사랑하게 되면 진지하게 사랑할 줄 알고, 진지할 땐 뜬금 없이 멋있다가 농담하거나 찌질해지는 순간에는 갑자기 세상 제일 못난이가 되는 반전매력, 따뜻한 마음, 가끔은 짠해서 안아주고 싶은...


chandler.png 출처: filmfare.com



메튜 페리, 당신은 프렌즈가 싫다고 했지만(약물 중독으로 고생한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어서 싫다고 한다) 그로 인해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으니 너무 싫어하진 마시길요.

많이 웃겨서 고마웠고 앞으로 또 계속 웃으면서 볼게요. 레스트 인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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