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관람하고 하루가 지났음에도 흥분이 내려앉지 않습니다. 36년 만에 나온 후속 영화 <탑건 : 매버릭>은 '지구적 현상'이던 1986년작 <탑건>을 뛰어넘지 못하리라는 우려와 달리 전편이 가진 장점을 모두 계승했고 영화적 미덕은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이야기, 동료에서 전우로 이어지는 이야기, 치기가 사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힘이 다했다고 여기던 서사였습니다. F14 톰캣 전투기, 카와사키 바이크, 보잉 선글라스는 잊혀진 추억이라고 여겼습니다. 재회한 연인, 우정과 헌신, 그리고 전설을 증명하는 영웅이 더 이상 가슴을 두드리는 일은 없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이 착각이었죠. <탑건 : 매버릭>은 가장 영화다운 방식으로 영화를 둘러싼 한계를 돌파해냈습니다. OTT들이 쓰나미처럼 세상을 잠식했음에도 우리가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를 증명했죠. 40년간 뛰어왔음에도 여전히 도약할 수 있음을 보여준 톰 크루즈가 쟁취한 승리이자 영화가 가진 가능성을 믿은 제작 참여자들이 성취한 승리입니다.
<탑건 : 매버릭>은 극장 영화가 다시 전성기를 맞도록 새로운 문을 연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극장 영화 시대를 마무리하는 기념비로 남을 수도 있겠죠. 엔데믹 시기에 맞춰 일제히 관람료를 인상하는 극장들에게 대중은 싸늘한 시선을 보냅니다. 극장 사업이 부동산 사업으로 전향된다는 씁쓸한 소문도 들리죠. 자본 논리에 밀려 극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되고 결국 큰 화면, 대역 없는 액션, CG를 배제한 촬영들도 차례차례 사라지고 말지도 모릅니다. 무인 전투기를 선호하는 해군 제독 입을 통해 나오는 대사, '파일럿이 전투기를 조종하는 시대는 끝나고 있다'는 말처럼 말이죠. 앞에 앉아 있는 제독과,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들과,스크린에 참여하는 영화인들을향해 매버릭과 톰 크루즈는 대답합니다.
Maybe so, sir.
But not today.
극 중 매버릭은 임무가 성공하려면 '최고의 파일럿'과 '두 개의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탑건 : 매버릭>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최고의 배우와 두 개의 기적이 필요하죠. 관객들은 최고의 배우와 첫 번째 기적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부디, 부디 상영이 끝나기 전에 극장 화면과 소리로 이 두 번째 기적을 목격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