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공항에서

by 봄날의 윤슬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여행객끼리 조율한 적도 없을 텐데, 공항은 언제나 갈 때는 붐비고 올 때는 한적하다. 출발할 땐 떠들썩하고 돌아올 땐 썰렁하다. 삼일 전엔 그렇게도 들떴던 공간이 삼일 후엔 안면을 바꾸고 침울해한다. 도착한 설렘과 돌아가는 아쉬움이 일으킨 인지왜곡가. 나는 싱거운 결론을 내렸다.


꽉꽉 눌러 실컷 먹은 밥처럼 삼일간의 여행은 만족스러웠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았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좋았다. 더워서 땀이 흐르면 짠 음식 먹을 핑계가 생겨서 좋았고 볼 게 없어 한적하면 여유롭게 산책해서 좋았다.

고백하자면, 나는 태풍 불고 벼락 떨어지는 들판에서도 행복할 구실을 찾아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건 거기에 맞춰 만족의 허들을 조정하는 능력. 영롱한 수저를 못 기고 태어난 어린 시절부터 정밀하게 연마해 온 내 초능력이다.


공항에 가기 전에 호텔 주변을 잠시 걷고 싶었지만 서두르는 친구 덕에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ㅡ 공항은 세 시간 전에 가있는 거야.


혼자선 지하철 하나 똑바로 못 타는 바닷가 사람에게 업무 반 취미 반으로 해외를 드나드는 친구의 지론은 박력을 자랑했다.


아이구 상진아.

나는 친구를 불렀다.


ㅡ그렇게 일찍 가서 뭘 하실라고?


아이구 뭘 하긴.

캐리어를 닫으며 상진은 씨익 웃었다.


ㅡ 줄도 서고. 면세점도 가고. 비행기 구경도 하고.


‘비행기 구경도 하고’를 말할 때 그는 노래하듯 말끝을 흥얼거렸다.


떠나는 마음이 아쉬워 거리 풍경이라도 실컷 눈에 담으려 했지만 택시는 얄미울 만큼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주세요가 일본말로 뭐였더라 생각하며 차에 오르는데 상진이 공항주소를 찍은 구글맵을 택시기사에게 내밀었다. 니찌와도 스미마센도 없었다. 상진은 지론뿐 아니라 실용도 박력을 자랑했다.

반드러운 거리 속으로 미끄러지듯 택시는 주행했다. 정오의 햇볕이 차창에 쏟아졌다. 오래된 건물과 낮은 가로수가 다가오고 멀어졌다. 창을 내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와 풍경이 속에 머물렀다 천천히 나갔다. 숨을 마시면 그곳이 내 일부가 되고 숨을 내쉬면 내 일부를 그곳에 남기는 기분이었다. 밀하고 사적인 작별.


출국절차를 마치고 탑승구로 향하는 내내 은은한 청소세제 향기가 공항을 맴돌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우리를 위로, 위로 데려갔다. 높은 천장에 머물러 있는 한적한 고요가 소음과 진동을 흡수하고 있었다. 상진은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한두 번 정도 던졌다. 이 층이 맞나? 여기는 변했네.

에스컬레이터가 4층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서두르는 듯도, 감상하는 듯도 한 묘한 속도로 상진은 커다란 전면유리로 다가갔다.


ㅡ 야아! 여기는 그대로네!


태우고 갈 비행기는 이쁘지만 데리러 온 비행기는 미운 나와는 달리 그는 어디로 가든, 심지어 저를 태우지 않아도 비행기라면 그저 좋아했다. 기념품 하나, 사진 한 장 챙기지 않던 그에게 여행에서 챙길 즐거움은 딱 두 가지였다. 로컬 음식 배 터지게 먹기와 비행기 구경.

상쾌한 바람이라도 쐬듯 상진은 유리 앞 난간에 기댔다.

먼 곳으로 트인 파란 하늘과 누가 붓질해 놓은 듯 줄지어 흘러가는 구름이 우리를 맞이했다. 곧게 뻗은 활주로 옆 순서를 기다리는 비행기 수십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조종석 위에 내려앉은 햇빛이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그 풍경을 보며 친구는 또 한 번 야아아, 탄성을 냈다.

나는 그 모습이 열 살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상상력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열 살을 기억하는 사이다.


ㅡ 볼 때마다 좋냐.

ㅡ 볼 때마다 좋다.


상진은 꿈꾸는 듯한 얼굴로 비행기에 시선을 둔 채 대답했다.

오랜만이구나 저런 표정. 나는 생각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에 있는 비행기와 이리저리 분주한 항공 유도원과 터그카에 짐을 싣고 내리는 사람들을 차례로 보다 유리에 반사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잘 먹고 잘 잔 덕에 여행을 마친 사람 특유의 고단함은 보이지 않았다. 희미하게 비치는 유리 속에서 나도 친구의 표정을 따라 지어보았다.

오랜만이구나 저런 표정. 어색하기도 하지.

속으로 헛헛해하는데 상진이 지금 막 계류장에 들어오는 비행기를 가리켰다.


ㅡ 저기 들어오는 꼬리 화려한 비행기 보이나? 근본 없어 보여서 민간기 같쟤? 근데 국적기다. 필리핀.


웃을 일도 울 일도 줄어드는 나이에 접어들었으므로 꿈꾸는 듯한 표정도 점점 줄어들겠지. 그 일방적인 방향성이 매정하다 싶다가도, 함께 그렇게 될 이들을 생각하면 동지애가 돋아나기도 한다. 가족이란, 지인이란, 친구란. 결국 하나하나 잃어가는 서로의 표정을 기억해 주며 위로를 나누는 사이가 아닐까.


ㅡ 저거는?

ㅡ 그거는 대만. 그 옆에 건 베트남.


타본 건 물론이고 타본 적 없는 비행기 정보도 술술 말하며 상진은 목소리가 들떴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에 나갈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여행 그 자체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보는 게 더 좋다고 말해왔다.

목적도 효용도 없이 그냥 좋아서 좋아하는 태도가 보기에 좋다. 내게도 그런 게 있었던가? 아주 잠깐, 어르고 달래 마음속 깊이 묻어둔 녀석이 슬쩍 들썩였다.


원하는 게 있어도 참아야 하는 가정에서 나는 살았었다. 참음은 미덕이었다가 습관이 되고 마침내 태도가 되었다. 몇백 원짜리 과자를 선택할 때도, 몇천만 원짜리 자동차를 선택할 때도 참는 태도는 그림자처럼 어깨 뒤에서 나를 지켜보았다.

떨칠 수 없는 그 참음이 싫어 서른이 넘었을 때 관심도 없던 분야에 도전했다. 요한 가치관이었던 시간과 여유는 뒷전으로 미루고 오로지 돈만을 기준 삼았다. 비슷한 시기 상진 역시 직장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큰 사고를 겪고 다른 분야에 도전했다. 우리는 치열했고 도전은 열매를 맺었다. 한눈 안 팔고 성공만 쫓으면 시간과 여유는 저절로 따라붙는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을 때 우리의 삼십 대는 후반을 향하고 있었다.

공항 난간에 기대 비행기를 바라보는 친구의 뒷모습과 어린 시절 다리 난간에 기대 댐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라보던 친구의 열 살 뒷모습이 겹쳐 보였다.

여행 가고 싶으면 여행을 가고 비행 보고 싶으면 비행기를 보러 가는 삶을 살게 될 친구의 열 살이 나는 기뻤다. 참아야 지속할 수 있는 삶을 극복해 내고 누리고 싶은 걸 누리며 게 될 내 열 살이 나는 대견했다.


상진아.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ㅡ 이번에 삼일동안 쓴 돈 있잖아.


서로의 열 살을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말을, 나는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ㅡ 그거 이십 대 때 내 한 달 월급보다 많았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어른의 능력이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내 이십 대의 한 달과 내 마흔의 삼일을 저울에 올려놓는 심정을 친구는 침묵으로 동조했다.


ㅡ 좀 더 어렸을 때 이렇게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래된 친구는 쉬이 의도를 알아준다.


ㅡ 좋았겠지.


참고 또 참다 보니 숨까지 참으며 살아야 하는 집이 무거워 초등학교 5학년에 기숙사에 들어갔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집은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들르는 곳이 되었다. 뭘 했는지도 흐릿할 정도로 온갖 일을 하며 이십 대를 보냈다. 아끼기만 했지 정돈해 써본 적이 없으니 지출은 언제나 엉망이었다. 많이 벌면 해하고 적게 벌면 버티는 삶을 지속했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평행선은 집요하고 견고했다.

만약 그 시절의 내게, 마흔이 되면 네가 한 달 일 버는 돈을 여행비로 쓰면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면 그는 기뻐할까 아니면 슬퍼할까.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그는 그날이 너무 멀다고 말할 것이다. 마침내 참지 않고 살아도 되는, 십 년도 넘게 기다려야 다가올 날이 너무나 까마득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섬광처럼 빨랐던 그 나날들을.


근데.

나는 먼 하늘을 내다보며 말했다. 한여름 불안정한 대기가 구름을 두텁게 다지더니 이내 흩어놓았다. 흐린 날과 맑은 날이 혼재하는 날씨다.


ㅡ 괜찮아. 그때는 그런 거 없어도 괜찮았어.


오래된 친구는 쉬이 의도를 알아준다.


괜찮았지.


이제 와 돌아보면 섬광처럼 빨랐던 그 나날들은.

저녁 늦게 퇴근해도 밤새도록 놀 시간이 있는 나날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도 하루 종일 생기가 넘치던 나날이었다.

어제는 고백 못해 끙끙대는 친구 대신 편지를 써주고, 오늘은 미인대회 예선에서 떨어졌다며 씩씩대는 여자친구를 달래주었다.

늘 잘 시간이 부족했고 늘 놀 시간이 부족했다. 일하는 하루를 보내느라 그랬음에도 돈 역시 늘 부족했다.

잘했다와 고생했다의 구분이 모호한 시절이었다. 피곤했으므로, 괜찮게 산 하루였다.

그렇게 살아도 새로운 하루는 잘 닦아놓은 밥상처럼 내 앞에 왔었다. 해가 뜨면 나가서 일했고 해가 지면 친구들과 놀았다. 새로운 게 있으면 모두 경험했다. 남이 하는 취미도, 남이 가진 특기도 모두 경험대상이었다.

바닷가는 다른 곳보다 사계절이 선명하다. 선명한 만큼 새롭게 경험할 거리는 계속해서 나타났다. 여름엔 액션캠을 들고 바다에 뛰어들고 겨울엔 보드를 들고 스키장을 향했다. 삶이 밀도로 가득했다. 부족함과 허기짐과 갈증이 지속되었음에도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우겨도 되는 시절이었다.

항을 통하지 않아도 모든 곳으로 갈 수 있던 날이었다.


괜찮았어.

나는 말했다.


ㅡ 그때는 외국 안 다녀도 재밌었어.

ㅡ 그쟤?

ㅡ 그지.


상진이 가리켰던 베트남 국적기가 활주로를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다음 여행지가 될 곳이다. 이번 여행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다음에 갈 장소의 여행 블로그와 영상을 찾아보고 있다. 그런 식으로, 삶이 겁지겁 가속을 더해간다.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슨 수를 써서라도 젊어지고 싶어 하는 세대와 억만금을 줘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세대 사이를 나는 지나고 있다.

돌아보면 섬광처럼 빨랐건만 이십 대는 하루하루가 꽉꽉 차서 느리고 더뎠다. 조금씩 덜어내느라 헐거워지고 빨라지는 내 지금은 나중에 돌아봤을 때 얼마나 찰나와 같던 시절로 기억될까.

얼마나 찰나와 같은 시절로.

그 문장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묵직하게 떨어진 문장이 어르고 달래 마음속에 묻어둔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말굽처럼 굵직한 시동소리가 심장을 두드려댔다.


ㅡ 비 오겠다.


상진이 손가락으로 유리를 톡톡 두드렸다.


ㅡ 어쩌냐?


상진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상관없지, 구름 위로 갈 건데.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며 나도 어이없이 웃는다.

탑승을 알리는 안내가 나왔다. 우리는 탑승구로 향했다.


ㅡ 가자.

ㅡ 그래.


널찍한 전면유리에 비행기로 걸어가는 내 모습이 반사됐다. 유리 속 내가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국에 도착하면 이십 대 내내 어르고 달래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커다랗고 요란한 할리데이비슨을 게 선물하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시간을 위로하고, 멋진 추억을 갖게 될 날들에게 미리 축하를 건네며.

마흔,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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