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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쥬스 Jul 19. 2020

내 얼굴을 비공개합니다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도구, 마스크

오늘도 출퇴근 지하철은 마스크에 가려진 사람들의 얼굴들로 채워진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대표하는 광경이다. 우연히 같은 시간과 공간을 삼십여 분 정도 함께 머물게 된 이 사람들의 얼굴을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낯선 사람의 얼굴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우리의 얼굴은 익숙한 사람들 앞에서만 열린다. 가족, 친구, 지인, 직장동료.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 익숙한 사람이라 해서 보균자가 없을 거란 보장은 없다. 마스크를 벗기 전 서로의 이마에 체온계를 대고 온도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는 사람 앞에선 마음을 내려놓고 얼굴을 공개한다. 유독가스 속에서 방독면을 벗는다. 서로가 서로의 안전을 보증해주는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바이러스라는 물리적인 위협들이 대기를 떠도는 시대에 우리가 안전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적인 친밀감이다.      


그런데 이 개폐의 감각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얼굴을 열고 닫으며 살아왔다. 미니홈피부터 인스타그램까지, SNS로 대표되는 온라인의 관계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허락하거나 허락하지 않는다. 허락된 사람들에겐 나의 가장 매력적인 표정과 사소한 일상사와 잠 못드는 새벽의 내면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모든 것을 차단한다. 나의 무방비한 모습을 불특정다수에게 노출시켜야하는 현실의 관계를, SNS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원하는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관계로 대체한다.


이제 많은 사람들은 하루 중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는 시간만큼을 SNS의 작은 창을 바라보는 데 할애한다. 온라인은 더 이상 오프라인의 부속품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공개와 비공개로 나눌 수 있다는 건 더 이상 특별한 기술의 혜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런 시대에 마스크는 제어불가능한 현실의 관계를 제어가능한 SNS적 관계로 바꿔주는, 비상식을 상식으로 보완하는 증강현실적 도구처럼 기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마스크가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하철에서 하품을 입 찢어지게 할 수 있다. 퇴근길의 초췌한 낯빛을 감출 수 있다. 화장을 생략해도 된다. 어중간하게 아는 사람을 마주쳐도 모른 척 할 수 있는 알리바이가 생긴다. 코로나 이후를 살기 시작 한 지 오 개월쯤 되는 지금,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마스크 쓴 광경이 어색하다. 지하철의 얼굴 없는 익명들 속에서 삼십 분을 덜컹거리다 보면 섬뜩한 순간들이 있다. SNS적 관계의 공허한 감각까지 현실로 옮아오는 것은 아닐까. 마스크 위를 굴러다니는 수십 개의 검은 눈동자에 둘러싸여있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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