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평균 키 미만이 세계 제일 거인국 네덜란드에서 겪는 불편한 점들
네덜란드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들이다. 매년 조사되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라'에서 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의 평균 키는 남자가 184cm, 여자가 170cm이다. 한국 사람들의 평균 키가 남자는 175.5cm, 여자 163.2cm이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약 7~10cm 더 크다.
나는 한국 평균 키보다 작고 왜소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생활이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다만 비행기 이용 시 좌석 위 선반에 짐을 넣고 빼기가 불편할 뿐. 일상생활에서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한국 평균 키보다도 작은 내가 세계 제일 거인국 네덜란드에 왔다. 그리고 키가 작아서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네덜란드에서는 현관 앞에 외투를 걸 수 있는 스탠딩 옷걸이나, 벽걸이 후크가 있다. 외투를 걸 수 있는 벽걸이 후크의 경우, 외출 시 외투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집주인 키에 맞춰 걸려 있다. 외투를 걸 때, 내가 까치발을 들고 걸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외투를 걸기 위해 점프를 해야 한다. 상상이 되는가? 외투 하나 걸겠다고, 폴짝폴짝 뛰고 있는 성인이.
화장실 이용에도 '키'가 영향을 미친다.
카페,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 대중이 함께 이용하는 화장실에서는 변기의 높이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종종 매우 높이 달려있는 변기가 있다. 변기에 앉으면 발이 땅바닥에 닿지 않는다. 이럴 때면 정말 난감하다. 특히 화장실 문이 완전히 폐쇄되는 형태가 아닌, 발이 보이는 문인 경우는 더욱 당황스럽다.
한 번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변기가 너무 높이 달려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화장실 문이 가장 윗부분과 발이 보이는 가장 아랫부분이 뚫려있는 형태였다. 안에 있는데 밖에서 덜컹 누군가 문을 열려고 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 이게 무슨 일인가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반쯤 취한 그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뭐지? 발이 안 보여서 안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어."
한국에서는 조리대 위에 달린 찬장은 어느 정도 이용할 수 있었다. 웬만큼은 손이 닿았고, 가장 윗부분만 살짝 까치발을 들거나 작은 의자를 이용해 물건을 집곤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선반 위 찬장이 한국보다 높게 달려있다. 물론 한국 주방 찬장 높이에 달린 경우도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이 그렇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살았던 집은 찬장이 정말 높이 달려 있었다. 찬장 가장 아래 칸에 있는 물건도 팔을 쭉 뻗어야 꺼낼 수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칸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의자가 필수템이었다.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자전거는 필수품이다. 자전거는 성인 자전거와 어린이 자전거로 분류되어 판매된다. 네덜란드 성인 자전거의 평균 사이즈는 약 68인치(약 172cm) 길이에 바퀴 직경이 28인치(약 71cm). 일반적으로 타는 사이즈 자전거는 내겐 높은 편이라, 성인 자전거 중 작은 사이즈를 탄다. 그리고 의자는 최대한으로 낮춰야 자전거에 오르내리기가 편하다.
처음에는 내게 맞는 자전거를 타겠다고, 미리 자전거 사이즈를 알아봤었다. 한국 평균 키보다 약간 작은 내게 맞는 자전거는 26인치 바퀴 크기의 자전거다. 재미있는 건, 26인치 바퀴 자전거가 네덜란드에서 10-12살 어린이용 자전거라는 것. 네덜란드에 처음 왔을 때는 이 사실을 모르고, 26인치 바퀴 자전거를 구매했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것보다도 무척 작다고 느꼈다. 게다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외출할 때면, 동네 꼬마들이 주로 인사를 해왔다. 내 눈엔 그들이 꼬마였는데, 그들 눈엔 나도 꼬마였나 보다. 자전거 사이즈의 진실을 알고는 자전거를 바꿨다.
내 더치 가족들은 레이싱 카트를 좋아한다. 1년에 1번은 반드시 레이싱 카트를 타러 가는데, 이때도 나의 키가 애를 먹인다.
처음 레이싱 카트를 하러 갔을 때, 직원이 날 보더니 더치 가족들과 다른 곳으로 날 데려갔다. 그곳엔 어린이용 카트가 세워져 있었다. 어린이용 카트는 사이즈도 작지만, 속도도 성인용 카트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다. 아무리 액셀을 밟아도 일정 속도 이상 나가지 않는다. 그날 나는 당연히 꼴등 했다. 두 번째 레이싱 카트 하러 갔을 때는 나 역시 성인용 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지난번 어린이용 카트는 나한테도 작았다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성인용 카트에 탔다. 조금 있으니 직원이 커다란 무언가를 들고 오더니, 내게 일어나란다. 내가 작아서 엑셀에 발이 안 닿을까 보조 의자를 들고 왔다. 세 번째 레이싱 카트는 어린이용 카트보다 더 굴욕적이었다. 아예 카트에 타지도 못 했다. 키 제한에서 걸렸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 와서 제일 불편한 점은 바지 구매다. 한국에서 살 때는 어디서 바지를 사더라도 줄여 입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는 바지를 사면 발가락까지 바지가 덮는다. 그래서 수선은 필수다. 처음에는 키 생각을 못 하고 일반 사이즈 바지를 구매했다가, 바지 값보다 수선 값이 더 나왔었다. 쓴 지출을 하고 나서야, 바지를 구매할 때면 꼭 반드시 제품의 길이를 확인하거나, 'Petite' 제품을 구매한다.
나열한 것들 외에도 생활 속에서 내가 매우 작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내 직장동료 더치인들은 나 말고 직접 만나본 한국 사람이 없어서 종종 내게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작아?'라고 묻곤 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작은 게 아니라, 내가 작은 거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지금은 은퇴한 나의 전 동료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는 한국인을 입양한 네덜란드 사람이었는데, 그의 한국인 딸은 170cm 훨씬 넘는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키가 큰 이유는 유전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자라는 환경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은 일찍 저녁을 먹고 8시면 잠자리에 든다. 대부분 10시간 이상을 잔다. 먹는 것 역시 치즈, 우유 등 유제품을 많이 먹는 편이다. 어린이들은 햇빛이 좋은 날이면 꼭 밖에 나가 뛰어놀고, 스포츠도 꼭 시키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대부분 키가 크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10시 넘어야 잤었고, 스포츠보다는 학원을 많이 다녔다. 피아노, 바이올린, 한문, 영어, 미술, 보습 학원 등등. 엄마가 수영이나 태권도 같은 스포츠를 보내려고도 했는데, 영 스포츠에는 재주가 없고 필요성을 못 느껴 굳이 다니지 않았다. 집 앞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더치 어린이들을 보고 있을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저 나이 때 저렇게 뛰어놀았으면 키가 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