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인종차별들에 관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진 지 1년이 넘었다. 팬데믹이 지속되자,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험한 욕설을 듣고, 위협을 당하기도 하며 심지어 살해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외국에 사시는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외국에 사는 아시아인들에게 인종차별 문제는 CNN 인터뷰에서 에릭남이 말했던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다.
나는 처음 당했던 인종차별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날의 장소, 날씨, 시간 심지어 그들의 얼굴도 기억한다. 나는 그때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를 여행 중이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는데, 내 바로 옆에서 현지인 두 명이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봐봐. 아시아인들은 다 작아. 쟤들은 유전자 자체가 신체가 작게 태어나도록 되었나 봐.
다 큰 성인도 완전 어린이야. 성인인지, 어린이인지 어떻게 알겠어?"
그들은 내가 그들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내 바로 옆에 서서 힐끔힐끔 내려다보며 이런 대화를 했다. 그들은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을 보다 한 대화였겠지만, 나는 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었던 그 날의 당혹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 겪은 상황에 당황해서 그들에게 말 한마디 따지지 못한 후회와 좌절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하루는 아침부터 매우 바삐 시내를 걷고 있었다. 주중이었고 이제 막 가게들이 문을 여는 시간이라 그런지, 시내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이 한산한 편이었다. 한산한 거리라 별 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별 일이 생겼다. 내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한 보행자가 나와 부딪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옆을 지나가면서 팔을 쳤다. 얼마나 세게 쳤던지 내 몸이 180도 돌아갔다. 순간 내가 실수한 건가 싶었는데, 그 옆에서 실실 비웃고 있던 얼굴을 보고서야 우연도 실수도 아님을 알았다. 말 그대로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부딪힌 팔에는 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한참 언어 공부에 열을 올리던 때다. 내가 한 때 살았던 도시는 대학이 있어, 유학생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유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언어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중 저녁에 이뤄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시내로 나갔다. 기차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길을 잃어 늦었고, 결국 나 혼자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카페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기차역에서 카페까지 약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로, 그리 멀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도 저녁 8시쯤이어서 별로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가로등도 별로 없는 어두컴컴한 거리를 따라 카페로 걷기 시작했는데, 검정 가죽 재킷을 입은 한 무리가 나를 지나쳐 갔다. 그러더니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온갖 성차별이고 인종차별적 말로 캣콜링하며 치근덕 거리는 건 당연지사고,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위협적으로 굴었다. 5-6명 되는 그 무리가 온갖 위협을 하며 바짝 내 뒤를 따라 걸었고, 결국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야 했다. 밝은 가로등이 나오고,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들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길 건너에서 나를 계속 쳐다봤다.
이런 인종차별들은 대부분 일면식 없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 그렇기 때문에 '그저 재수 없었다, 미친놈이다,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무식자다'라고 치부하고 넘길 수 있다. 물론 불쾌하고, 위협적이며 자칫 잘못될 수도 있었겠다는 공포심은 남는다. 하지만, 이런 인종차별은 아는 사람들에게 당한 인종차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하루는 회사에서 가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브랜드 가구가 좋고, 어느 브랜드 가구가 가격이 싸며, 어느 브랜드 가구가 세일한다는 등등. 그러던 중 내 상사 중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어제 독일 TV에서 봤는데, 유럽에서 파는 이케아 상품하고 아시아에 파는 이케아 상품이 다르대. 아시아인들이 작아서 의자나 테이블 다리를 더 낮춰서 판매한대."
왜 이들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할 때만 나를 쳐다보는지. 마침 그 대화하기 전날 나는 이케아에서 테이블을 찾아보았고, 한국과 가격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며 제품 사이즈도 확인했었다. 그 전날 그리도 열심히 쇼핑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안 그래도 내가 어제 이케아에서 쇼핑을 하느라, 한국 이케아랑 네덜란드 이케아를 둘 다 찾아봤어. 상품 사이즈 똑같고 가격도 별 차이 없어."
"아니야. 어제 독일 TV에 나왔다니까. 아시아인들이 작아서 의자나 테이블 다리를 낮춰서 판매한대."
그는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독일 TV 내용을 맹신하고 있었다. TV 방송에 정말로 나왔던 이야기이고, TV에서 거짓말할 리 없다는 거다.
아무리 TV에 그런 내용이 방영되었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말이 안 된다는 걸 모를까?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기성품이다.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물건들. 그 물건들은 전 세계로 이동한다. 이케아에서 한 번쯤 물건을 구매해봤다면 알겠지만, 안내서는 여러 나라 말로 적혀있다. 네덜란드에서 이케아 제품을 샀다고 해서 안내서가 네덜란드어로만 되어 있지 않다. 한국에서 이케아 제품을 샀어도 한국말로만 안내서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공장에서 이를 위해 따로 물건을 찍어낸다고?
그날 저녁 나는 다시 이케아 웹사이트를 확인했고, 사이즈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도대체 그런 내용을 방영한 독일 TV는 어디고,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내가 일하는 곳은 회사 특성상 외국에서 오는 고객을 상대해야 할 일이 많다. 그날은 캐나다 고객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식사는 인도 요리였는데, 갑자기 그가 나를 쳐다보며 이런 말을 했다.
"그거 알아? 아시아인들이 왜 눈이 다 이렇게 찢어져있는 줄 알아? 왜냐하면 아시아인들이 매일 쌀을 먹어서 눈이 이렇게 쌀처럼 찢어져 있는 거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 포함 7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있었는데,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는 내게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다시 한번 이 농담(?)을 했다. 그는 회사의 고객이었고, 사장님이 함께 있었다. 어떻게 해야 분위기도 망치지 않으면서, 고객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그의 두 번째 농담이 끝나고 한 마디 했다.
"인종차별이야."
"에이, 농담이야. 웃자고 하는 농담!"
그의 말에 나 빼고 모두가 웃었다. 이게 지금 농담이라고 웃을 일인가? 농담은 듣는 사람도 웃어야 농담이다. 말하는 사람만 웃기고,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다면 그건 농담이 아닌 조롱이다. 웃고 있는 회사 식구들에게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아무도 그에게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하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웃지 않자 그제야 그는 사과했다.
"나는 인종차별을 의도한 게 아니야. 그냥 농담인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내가 너무했나?"
"응, 굉장히 무례했어. 비록 너는 내게 무척 무례했지만, 나는 너에게 친절할게."
농담에 냉담했던 나는 자칫 저녁 분위기 망칠 뻔한 사람이 되었고, 그는 그 어떤 질타도 없이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도 나는 그 어떤 위로도 듣지 못했다. 그는 재미있는 농담꾼인데, 가끔 과하다는 말 정도. 그날 내가 배운 것은 단 하나. 인종차별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라는 거였다.
호른바흐는 독일의 건축자재 회사다. 호른바흐에서 1년 전에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TV광고를 만들었다가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호른바흐 측은 인종차별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광고가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청원에 결국 호른바흐 회사는 사과를 했고, 더 이상 TV에 광고를 송출하지 않았다. 사실 그 사과도 영혼 없는 사과였다.
광고에는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백인 남성이 나온다. 그들은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보더니 입고 있던 셔츠, 바지, 속옷을 벗어준다. 그들이 입었던 옷들은 포장되어 일본 한 자판기에 있다. 한 일본 여성이 자판기에서 이를 구매하고,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이런 문구가 뜬다.
"so riecht das fruehjahr.(이것이 봄 냄새다.)"
그 광고는 독일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도 방영되었다. 처음 호른바흐 광고를 봤던 날, 나는 더치인 부모님 집에서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광고가 끝나고 더치인 어머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만 봤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더치인 아버지가 정적을 깨셨다.
"Belachelijk! (말도 안 돼!)"
그 광고 후 든 모멸감, 수치심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모멸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광고가 성차별과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일자, 네덜란드 한 라디오 진행자가 이런 말을 남긴다.
"혹시 누가 압니까? 정말 일본에 그런 자판기가 있는 줄."
인종차별 피해자들을 두 번 상처 입히는 말이었다. 이 말을 직장 동료에게 들었는데, 그는 그 라디오 진행자의 말을 차용하면서 이 광고가 인종차별적이지 않다고 두둔했다. 그리고 독일의 큰 회사인데 의도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광고에 담은 건 아닐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이 된 이후 당한 인종차별은 여전히 마음에 멍처럼 있다. 아무렇지 않다가도 인종차별을 겪게 되면, 마치 멍 자리를 누른 것처럼 지난날 인종차별로부터 받은 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솟아오른다. 내 겉모습이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조롱, 멸시, 차별은 큰 상처다. 특히 가족, 친구, 동료, 지인에게 받은 인종차별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인종차별은 의식하지 않으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인종차별을 할 수 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느낀 것은 인종차별적 시선이나 편견이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있다는 거다. 의식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인종차별도 문제지만, 의도 없이 한 인종차별은 역시 '농담'이나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미화되거나 순화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