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또는 편견 뒤에 숨은 인종차별
지난 글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 내가 유럽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을 예시로 들었다. 하지만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의 무의식, 농담, 편견 속에 인종차별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더치인과 국제연애를 하면서 내가 몰랐던 한국의 인종차별적 시선을 많이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더치인이 한국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했다.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받았던 시선들이 처음엔 무척이나 불편했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마치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달까. 나중에서야 이런 시선 정도는 별 거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노인 신사께서 우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걸어왔다. 날선 눈으로 나와 더치인을 번갈아 보더니,
"퉤! 나라 팔아먹은 X!"
이라고 내 앞에 침을 뱉고, 욕하며 지나갔다. 지금 내가 21세기에 사는 것이 맞나 의심했다. 더치인은 다행히 휴대폰으로 지하철 확인하느라 보지 못 했다. 내가 더치인을 만나는 것이 나라 팔아먹은 정도의 문제가 된다니. 이 사람도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인데.
앞서 말했듯,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날도 역시나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한 여성 분이 나를 톡톡 쳤다. 내가 그녀를 쳐다보자 이렇게 말하는 거다.
"저기, 보기 불편한데."
"네?"
"나도 보기 불편한데, 저기 어르신들은 얼마나 보기 불편하겠어요."
뭐가 보기 불편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저 자리가 없어서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각자 서있었을 뿐이었다. 그녀의 말인 즉슨, 내가 더치인과 있는 모습이 보기 불편하다는 거다. 중년인 자기가 보기에도 불편한데, 노약자석에 앉아계신 노인분들이 보시기에는 오죽하겠냐는 거다. 결국 우리는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이런 인종차별은 분명 나쁘다. 확실히 기분이 상하고, 불쾌하며 상처로 남는다. 확실하게 기분 나쁜 인종차별에 대해 우리는 인종차별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칭찬과 편견 뒤에 숨은 인종차별은 분명하게 인종차별이라고 꼬집기가 어렵다.
함께 동남아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 백화점에 갔는데, 우리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내 옆에 있는 더치인에게 집중되었다. 매장 직원은 더치인에게 매우 친절하게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여주고 설명해 줬다. 돈 낼 사람은 난데. 다음 날 다시 그 매장을 찾았는데, 전날 더치인에게 보였던 친절을 나는 받을 수 없었다. 매장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 직원을 불러 물건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아도 전날 더치인이 받은 친절은 없었다.
비단 그 매장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백화점, 식당, 상점, 시장, 호텔, 마사지숍 어디를 가더라도 더치인이 받는 친절은 달랐다. 내가 돈 쓰지 않을 것 같이 보여 그런가. 그곳에 사는 지인에게 물으니, 그 나라에는 백인이면 부자라는 편견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부자인 백인에게 더욱 친절하다는 거다. 하지만 정작 돈 내는 건 나인데.
왜 외국인은 모두 미국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할까? 마치 유럽에서 아시아인을 보면, 중국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와 비슷한 계열로는 '외국인이면 영어 잘 하겠다.'가 있다. '외국인'과 영어과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아시아인이라고 해서 모두 중국어를 잘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외국인이라고 해서 영어를 모두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잘 하는 언어가 다르고, 언어에 재능이 없다면 당연히 영어를 잘 못 할 수도 있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를 약 10년 동안 배우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지 않는다.
혼혈아기이기 때문에 예쁠 거라는 편견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한 국제 커플 유튜버는 이에 대해 영상을 만든 적이 있다. 그들은 분명하게 자신들은 과학 실험 대상이 아니고, 이런 말들을 삼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한 유투버는 혼혈아기에 대해 사람들이 '페티시'를 갖고 있고, 혼혈아기에 대해서만 이상한 현상들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나 혼혈아기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분명 칭찬인데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인종차별적이라고 말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말한 것도 아니고, 비하하거나 폄하한 게 아닌데 어째서 인종차별이 되냐는 거다. 칭찬 뒤에 숨은 인종차별은 대응하기 어렵다.
영화 '겟 아웃(Get out)'은 인종차별을 꼬집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백인들이 흑인을 두고 경매를 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 조던 필은 이 영화를 통해 인종차별이 나쁜 표현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칭찬을 가장해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꼬집고 싶었다고 한다.
인종차별은 정말 민감한 문제다. 외국에 사는 이방인이면 늘 마주하는 문제인데, 그렇다고 내 나라에 산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방관하면 안 된다. 어느 날 당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센서를 항상 예민하게 켜두어야 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인종차별적 언행이 합리화될 수 없다. 칭찬이 목적이었다고 해도, 인종차별은 인종차별이다. 인종차별 방식에 좋고, 나쁨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