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추모
우린 결혼을 준비했었다
작은 도시라 가구점이 없어 옆도시로 건너가 백화점 지하를 거닐며
우리의 손때가 묻을 가구와 침대를 만져댔다
돌아오는 길 너는 나에게 물었지. "딸이라면 어떤 이름을 짓고 싶어?"
"윤슬. 윤슬이라고 부르고 싶어"
"비록 지금은 감성적인 문구에 사람들이 자꾸 가져다 쓰지만
훨씬 전부터 나는 윤슬이라는 단어를 좋아했지"
햇빛에 부서지는 듯 하지만 사실 부서지지 않고 스스로 빛나고 있는 그 모습이 강인해 보이기도
안쓰러워 보이기도,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거든
"그래. 우린 윤슬이라고 부르자"
너는 경쾌하게 웃으며 대답했고, 난 너의 웃음소리에 다시 한번 마음이 차올랐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미래에서 오는 충만함으로부터
나는 누군가와 헤어지면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해.
그리워질 때면 추모하는 마음으로 아파하지
내 기억에서 너는 죽일 수 있어도 윤슬이는 죽일 수 없더라
낳지도 품지도 못한 아이인데 얼굴도 모르는 가상의 인물임에도
그래서 네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고, 널 추모할 수 없고, 우리를 잊을 수 없고
그렇게 이어지는 걸까?
윤슬이가 없었더라면.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더라면. 너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그날 귀찮다며 다른 도시의 백화점으로 향하는 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