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2. 잘못된 만남

1부_발랄한 흙수저

by 유쾌한T맘


나들이를 가면 아이의 손을 잡고 다정히 걷는 남편. 쉬는 날이면 당연하게 한 끼를 뚝딱 만들어내는 남편. 다들 그 정도는 이제 기본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었다. 아빠한테 사랑받아 본 적도 없고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여자들이 보통 사랑이 뭔 지 너무 궁금하다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한다. 나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랑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평탄한 연애 끝에 좋은 남편을 만난 것은 부단한 인지 학습을 반복한 결과라는 것이다.

불행한 유년기를 경험한 여성일수록 당연히 남자를 더욱, 고르고 골라야 하는데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 경험한 관계를 바꾸는 건 꽤 어렵다. 그 관계는 원치 않아도 어느새 기준이 되고 때로는 선택이 된다.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걸까? 이 책은 인문학 책이 아니니까 아주 짧게만 이야기하겠다.

심리학, 트라우마 연구(ACEs연구)를 보면 아버지로 인한 불행한 유년기를 겪은 여성들이 애인이나 남편을 아버지 V.2로 고르는 우를 범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에 비하여 1.5배에서 3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익숙함의 왜곡’이다. 어린 시절 경험한 관계가 기본값이 되어 폭력, 불안, 눈치 보는 상황을 오히려 익숙하게 느낀다. 안정적인 남자의 안정적인 행동이 심심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을 불안과 긴장 속에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으로 인지하게 됨으로써 예측 불가능한 사람에게 끌린다. 세 번째는 무의식 속에 자신을 폭력이나 폭언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불편하고 의심하고 거리를 두면서 놓친다. 세 가지 모두 안타깝다 못해 한심한 마당에 네 번째는 더 심각한 빌어먹을 ‘구원환상’이다. 어린 시절 해결 못한 관계를 굳이 재현해서 이번엔 성공하고 싶다는 심리이다.

이런 네 가지 메커니즘을 통해 불행한 유년기를 겪은 여성들은 아버지 V.2를 선택하는 반복형, 아예 사랑 같은 거 안 해요 회피형, 극복하고 건강한 관계를 선택하는 회복형으로 나뉜다. 나는 내면은 회피형이지만 외관은 회복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회복형은 자기 인식이나 특정 경험을 통한 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외관이라도 회복형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근원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다. 나는 그런 취급을 또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다, 나는 앞으로 내가 선택하는 관계에서만 책임이 있으니 과거를 재현할 필요가 없다. 그 생각들을 반복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왜 아빠를 만났을까?

“엄마, 아빠 어떻게 만났어?”

“왜 갑자기 아빠 이야기야?”

“그냥, 어쩌다 그런 놈을 만난 건가 기가 막혀서 그러지.”

“너라도 그런 놈 안 만나고 잘 사니 얼마나 좋니.”

“아무튼, 얘기나 해 봐. 어떻게 어디서 만났는지.”

“흠, 영희 이모가 고속버스 일 관두고 미용 배워서 서울에 가게를 차렸어. 거기 놀러 갔다가 손님으로 온 아빠를 만났지.”

“그럼 뭐 워낙 미모가 출중하셨을 때이니, 아빠가 엄마 보고 들이댄 건가?”

“아니, 내가 먼저 들이댔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친구였다면 미친년, 하며 등짝을 후려쳤을 거다. 들이댈 놈이 따로 있지 그런 놈에게 들이대다니.

결혼한다고 함께 인사하러 갔을 때 가족 모두가 반대했다고 한다. 삼촌은 저 자식 뭐 냐고 뒷조사를 했을 정도였다고. 성질 더러운 것도 당연히 보였겠지만 뭔 일을 한다고 하는 말들이 죄다 신뢰가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엄마가 결혼할 거라고 악다구니를 부려서 마지못해 허락했단다. 아마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는 기운 데다가 기대했던 아들 두 녀석마저 시원치 않게 되자 딸들을 빨리 해치우고 싶었던 것 같다. 첫째 이모 때까지는 잘 살았으니 여유 있게 청와대 경호 실장이던 이모부와 결혼시켰지만 그 뒤로 둘째 이모는 엉엉 울면서 둘째 이모부와 결혼했다. 똑 부러졌던 셋째 이모는 일찌감치 괜찮은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모 바라기인 셋째 이모부의 의전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계신다. 넷째 이모는 자기 오빠 아이 넷을 키워주다 아주 늦은 나이에 선을 봐서 겨우 결혼했다. 다행히 넷째 이모부는 생활력도 강하고 가정적인 좋은 남자다. 아가씨가 별별 고생을 다했으니 마땅한 결론이다.

막내딸인 우리 엄마는… 딱히 야무지지도 못하면서 도도하기만 했다. 공부를 좋아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이 놈의 촌 구석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엄마에게 아빠는 급행 티켓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제 노쇠하여 지쳤고 엄마는 적당히 고집을 부리다 보니 어느 새 아빠와 결혼해 있었다. 하필 고른 티켓이 암표보다도 못한, 애초에 목적지 자체가 잘못 기재된 티켓이었음을 모른 채.

여자는 능력보다 미모이던 시절이라 가세도 기울고 공부도 짧았지만 미모의 엄마에게 동네 유수의 청년들 몇몇이 대시를 했다. 용문산 근처에 가든형 식당집을 물려받을 청년, 농협에 근무하던 청년, 학교 교사였던 청년 등. 그러나 엄마는 단번에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다들 나에 비해 너무 잘난 신랑감들이군. 보나 마나 결혼하면 날 무시하거나 시부모 등쌀이 장난 아니겠군.’

그저 사랑받고 살았을지 누가 아는가.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관계에 선 긋는 걸 참 좋아한다. 막말로 등쌀이고 무시고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해도 돈도 못 벌고 허구한 날 죽어라 하고 패는 아빠 보다야 백 번 나았을 거다. 아니, 그리고 왜 급행 티켓이 꼭 남자여야 하지? 영희 이모처럼 기술이든 공부든 뭔가 배워서 자기 삶을 살았으면 얼마나 좋아. 하긴 그 시절은 온 세상이 힘을 합쳐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가스라이팅 하던 때인데 정신 차리기 쉽지 않았겠지. 아무튼 기가 막혔다.

“뭐가 좋았는데?”

“길쭉길쭉 하니 다른 남자들보다 머리 한통은 넘게 훌쩍 큰 게 나름 멋있었지.”

“고작 그거야?”

“그것만은 아니고…아, 내가 먼저 말 건 거는 맞지만 네 아빠도 나 보고 좋았으니 좋다 하고 만난 거지!”

“휴…. 그래서 엄마는 양평 화전리, 아빠는 서울, 어디서 주로 만났어?”

“영희 이모 미용실 옆에 방이 딸려 있어서 잠깐 같이 이모랑 살았어. 나도 서울에서 다른 일자리나 알아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아빠 만나면서 갑자기 결혼했지.”

영희 이모도 그 당시 곧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가 있어서 넷이 커플 데이트도 종종 했다고 한다. 나도 얼핏 기억나는 영희 이모부의 이미지는 구불구불한 펌 장발이 잘 어울리던 남자였다. 엄마는 갓 태어난 내가 생각보다 너무 못생겨서 잘 들여다보지도 않고 속상해했다고 한다. 나도 나의 아기 때 모습을 보면 사뭇 당황스럽긴 하지만 외면할 정도까지는 아닌데 너무 하다 싶다. 엄마도 신생아는 처음이라 신생아 특유의 모습에 당황했던 거겠지. 오죽하면 그 쓰레기 아빠 놈이 엄마가 아기에게 등 돌린 모습에 당황해서는 야, 그래도 계속 보면 귀여워, 라며 엄마를 달랬단다. 하여간 엄마의 미모에 훤칠한 아빠 사이에서 나온 아기의 외모에 대한 기대들이 높았던 것인지 아기를 보러 온 사람들 대부분 조용히 왔다 갔단다. 그러다 영희이모와 영희 이모부만이 유일하게 희망적인 말을 남겼다고 한다.

“무슨 소리야 영숙아, 얘 이제 봐라, 클수록 엄청 예뻐지지. 너보다 나을지도 몰라 얘. 엄청 매력 있는 얼굴 된다? 두고 봐.”

이모와 이모부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점점 클수록 얼굴이 조막만하고 생긴 건 오목조목, 꽤 매력 있게 자라났다. 성격이 보통 아니어서 다수의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나 좋다는 남자들은 늘 있었다. ‘많았다’가 아니라 ‘있었다’가 엄마와 중요한 차이점이다. 쓸데없이 많은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찾아내는 것은 피곤하고 소모적이다. 이미 유의미한 소수의 데이터들 중에서 가장 괜찮은 데이터를 찾아내는 것은 보다 수월하다. 반면,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너무나 도드라지는 조건인 경우보다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고 딱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진정성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인지 나의 연애사는 어느 방면으로 보나 대체로 준수했다. 결혼 전 청첩장을 돌릴 때 한 지인은, 어째 결혼한다는 사람도 전 남자 친구들 이랑 다 비슷하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다 모아놓고 세워놓는다면 키 마저도 다 고만고만했다. 경험 상 안정적으로 느꼈던 범주안에서만 남자를 골라온 것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회복형이 있을까? 혹시 나쁜 남자가 좋다는 그런 말 하다가 인생 조질 수 있으니 진짜 그러지 말기를. 모든 삶은 다 작품이라고 하지만 굳이 누아르나 호러를 찍을 필요는 없다.

언제나 가난했지만 엄마와 둘이 살면서는 반 지하 셋방부터 시작했다. 내세울 만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자격지심을 깔고 살지는 않았다. 지인들이 주로 하는 말 중에 나의 매력 중 하나가 매사 자신감 있는 태도라고 한다. 이모들도 답답한 엄마보다는 내가 시원시원하니 낫다고 하니까. 그런 것까지 영희 이모 부부가 아기였던 나를 보며 꿰뚫어 봤을 리는 없지만 엄마에게 ‘너보다 나을지 모른다’는 그 말은 성격 부분에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친구인 영희 이모가 결혼하자 엄마도 자연스럽게 결혼을 서둘렀다. 영희 이모도 말린 결혼이었지만 살다 보면 자기가 고쳐가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아까 말한 빌어먹을 그 ‘구원망상’이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사람은 그 자체로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둘 중 하나지 절대 고쳐 쓸 수는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나야말로 남편을 만난 지 두 달 만에 결혼했으니 서두른 거로 치면 엄마보다 더 했을 텐데, 내가 데려온 남편은 엄마는 물론 이모, 이모부들까지 모두 마음에 들어 했다. 나의 결혼이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모두가 납득한 결혼이었다면 엄마의 결혼은 모두가 납득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다만, 일찌감치 딸을 남편처럼 의지하고 살았던 엄마는 느닷없이 결혼해 그다지 가깝지 않은 곳으로 내가 훅 떠나버리는 것이 꽤 공허하고 슬펐던 것 같다. 사윗감이 마음에 들기야 했지만 그래도 자꾸만 좀 더 만나보고 결혼하라고 했었다.

“엄마, 내 처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고 살 수 있는 사람, 찾기 힘들어. 여기서 더 나이 먹으면 진짜 더 찾기 힘들걸. 제 때 좋은 사람 만나면 안 놓치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때의 나는 확신에 가까웠고, 동시에 거의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엄마는 내 말에 더 붙잡지 않고 나를 보내주었다.

남편도 아버지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다. 내 자식은 반쪽으로 키웠어도 남의 자식은 완전하기를 바라는 경우도 많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내 자식의 배우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테니까. 아빠 없고 가난하고 직업도 돈 안 되는 사회복지사에 혼수는 개뿔인 나를 반가워할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어머니는 지방에 살고 계셔서 두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가는 동안 허락을 못 받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냥, 원래 그랬던 것처럼 비혼으로 살면 되는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외모, 말, 행동 그 모든 게 엄마와 달랐다. 워낙 뚝배기 스타일이라 나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지 싫어하시는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바로 돌아오는 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속옷과 잠옷도 챙겨갔다. 엄마는 주책이라고, 인사만 하고 곧장 오라고 했지만 내 가방 속까지 누가 뒤져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만약을 대비했을 뿐이다. 그 준비 덕분에 어머님, 형님, 아주버님, 9살, 6살 두 조카들과 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정겨웠던 그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밤 잠을 자면서도, 다음날 아침에 다 같이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그저 ‘내가 싫은 건 아니니까 자고 가라고 하신 거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 어머니가 천천히 나를 안으시며 말씀하셨다.

“둘 다 고생 많았으니께, 서로 안아주믄서 살어, 잉?”

우리는 그렇게 양가의 허락 하에 동거부터 하다가 혼인신고를 했고 1년 반 정도 살다가 결혼식을 나중에 치렀다. 어머님의 주문과 달리 우리는 신혼 때 서로 안아주지 못했다. 만난 지 두 달 만에 함께 사는 건 아무래도 섣불렀고 신혼 3개월 만에 들이닥친 남편의 개인회생은 불화를 더욱 활활 지폈다. 말도 못 하게 싸우며 박살 난 문을 떼어내고 깨진 그릇 등을 다시 마련하며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결혼 12년 차, 나와 남편을 반반씩 닮은 10살짜리 딸과 순항 중이다. 모든 선택이 완벽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목적지만큼은 제대로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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