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높은 대상을 마주하는 방법
인생의 하프타임을 맞이하면서 나머지 절반의 인생과 함께 할 취미가 생겼다. 바로 골프와 플룻이다. 골프는 3년 정도 되었고, 플룻은 어렸을 때 5년 정도 배웠었는데 거의 25년 만에 새롭게 시작했다. 플룻은 나이 먹고 시작하니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강요로 인해서 억지로 불던 빽빽 소리 나던 악기가 30대 후반에서는 내 인생을 빛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일 외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니 좋다. 명품 시계, 좋은 차보다는 내 색깔이 되어 줄 수 있는 더 좋은 스윙과 악기 소리를 원하게 되었다.
재밌는 점은 전혀 유사성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골프”, “플룻” 이 꽤나 깊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대상 모두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이 둘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각각의 불확실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 본다.
티샷 박스 위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들. “아 오늘 왜 이러지?”
먼저 골프는 불확실성을 극단적으로 구성해 놓은 운동이다. 골프라는 운동을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다. (1) 약 지름 4cm의 공을, (2) 1m 정도 되는 막대기로 쳐서, (3) 대략 300~500m 멀리 있는, (4) 약 10cm 크기의 구멍에 골인시키는 운동이다. 누가 개발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상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다소 변태 같은 발상 아닌가? 눈알 만한 공을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에 머그컵 같은 곳에, 그것도 던지는 것도 아니라 야구배트 길이의 얇은 쇠막대기로 쳐서 넣는 운동이라니. 평범한 사람의 상상력으로는 생각해 내기 어려워 보인다. 심지어 전부가 아니다. 바람, 온도, 동반자의 골프매너 등 수많은 컨디션들이 스코어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뱉는 말들이 있다. “매번 칠 때마다 새롭다”, “골프가 참 맘대로 안된다.” 골프는 실제로 정복이 어렵다. 정복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가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길 바랄 뿐이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은 목표이다. 생각보다 많은 골퍼들이 해가 지날수록 꼭 스코어가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플룻 역시 비슷한 요소가 있다. 플룻은 내가 엉덩이 쪽 뱃속 깊은 곳부터 끌어낸 바람을 아주 작은 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순서대로 배, 폐, 목, 입천장을 거친 그 바람은 립플레이트 약 1cm 도 안 되는 은으로 된 벽에 부딪혀 일부분은 바깥으로, 일부분이 악기 안으로 들어가 진동을 발생시켜 소리를 만든다. 여기서 저 작은 구멍에 어떤 양의 바람이, 어떤 각도로 들어가냐에 따라 다른 옥타브의 소리가 나고, 또 다른 음색의 음이 나오기도 한다. 또 바람을 불어내는 중심을 내 코로 할지, 입으로 할지, 가슴으로 할지에 따라서도 서로 다른 음색을 나타내기도 한다. 매번 같은 양의 공기를 내가 가진 몸뚱이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매번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운동이나 악기가 정복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두 대상이 유달리 ‘정복’의 영역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골프엔 타이거 우즈가 있고, 플룻엔 임마누엘 파위(Emmanuel Pahud, 아주 주관적인 기준)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각 분야의 거장(master)라고 불리는 사람이지만 매번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타이거 우즈도 어느 경기에서 한 홀에서만 10타를 친 적이 있다. 7번 정도 공이 의도하지 않은 곳을 갔다는 이야기다. 파위도 어떤 영상에 보면 협주곡에서 삑사리를 낸다. 그만큼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거장들도 실수를 하는 마당에, 아마추어들은 오죽하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매번 티샷과, 플룻 연주에서 첫음을 앞두고는 거의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다. “제발 내가 원하는 샷이 나오게 해 주세요.”
불확실성이 큰 종목을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든 것은 퍼포먼스가 노력하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주변 환경이나 운에 의한 변동폭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과물이 비례관계로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잊을 때만 하면 “어라? 내가 좋아졌네?”라고 느껴지는 계단식 성장체감을 하게 된다. 즉, 일정량 노력으로 인한 실력의 변화라는 데이터에 대해서 평균과 노이즈가 있다면, 노이즈가 워낙 커서 짧은 시간 간격에서는 실력 향상을 체감할 수 없지만, 장기적인 평균 변화를 통해서만 내 노력의 결과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중도 포기자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고, 또 끝내 골프를 접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상동작은 앞에서 언급했던 노력과 퍼포먼스의 복잡한 관계와 관련이 있다. 만약 노력과 결과가 선형이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력의 양만 점점 더 많이 투입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확실성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결과를 상쇄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골프 레슨에서는 흔하게 보상동작이라고 부른다.
보상동작은 단순히 우리의 불필요한 노력을 발생시키는데서 그치지 않고 가끔 “보상동작의 보상동작”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골프의 경우 몸을 회전시켜서 공을 쳐야 하지만 초심자는 대부분 직관적으로 팔을 휘둘러 스윙한다. 하지만 팔로만 쳐서는 비거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온몸에 힘을 주거나 머리가 앞뒤로 움직이는 스웨이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잘못된 동작을 고치기 위해 새로운 잘못된 동작이 추가되는 경우이다. 플룻의 경우도 처음에 호흡을 배로 하는 게 아니라 폐로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호흡이 부족해지게 된다. 이때 부족한 호흡을 채우기 위해서 과도한 텅잉등을 하게 됨으로써 부드러운 음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원래는 안 해야 하는 동작이지만, 우연한 결과를 상쇄하기 위한 동작이 바로 보상동작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큰 악기나, 스포츠일수록 의도하지 않은 단기적 결과들 때문에 보상동작의 가능성이 크다. 이런 관점에서 첫 선생님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막 시작했을 때가 가장 노력에 대한 결과물의 변화가 큰 시점이고, 이때 방향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엇이든지 처음이 비교적 재미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력량도 크다. 잘못된 선생님을 만나 잘못된 방향성에 큰 노력이 결합되어 거대한 보상동작의 악순환의 시작이 된다. - 경험담이다.
그렇다면 골프와 플룻을 궁극적으로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나의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어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렇다고 믿는 것)과 보상동작을 하지 않는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확률적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트를 한 번만 던지면 도박이지만, 100번을 던지고 평균 점수를 센다면 그건 통계 싸움이 된다. 어떤 문제가 도박에서 통계로 옮겨가는 순간 그것은 관리 가능한 대상이 된다. 그래서 나는 불확실한 문제를 최대한 쪼개고 횟수를 많게 해서 통계적 문제로 변환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주사위를 한번 던져서 6이 나올 확률은 1/6 지만, 실제로 1이 연속으로 3번 나올 수도 있다. 도박의 영역이다. 하지만, 주사위를 1,000번 던져서 6이 나온 숫자를 세보면 대충 1/6에 가까워진다. 확률의 영역이다.
골프에 대입해 보자. 내가 치는 이 한 번의 샷, 내가 공략하는 한 번의 홀, 이번에 간 한 번의 라운드의 스코어는 기본적으로 도박이다. 스코어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한 라운딩에 휘두르는 100번의 스윙과, 5번 라운딩을 갔을 경우에 총 90개의 홀의 공략, 골프장을 총 열 번 갔을 때 PAR의 개수등은 통계다. 이런 접근 방식의 장점은 샘플과, 확률분포(통계)를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고 개별적인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즉, 좋은 점수(sample)가 나오길 기도하는 마인드가 아니라, 좋은 점수를 낼 수 있는 주사위(probabilty function)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1위 골퍼 John Ram 본인 성적의 비결을 묻자. “금붕어의 기억력은 10초.”라고 답했다. 이는 John 람이 자신의 모든 스윙을 독립시행으로 간주하여 철저하게 통계적으로 접근한다는 의미다.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는 21년도 투어에서 코로나로 인해서 1위를 유지하고 있던 대회를 중도 하차했지만, 바로 다음 경기에서 우승할 수 있는 기염을 토했던 이유가 아닐까.
통계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노력량과 실력의 관계를 조금 먼 시선에서 판단할 수 있다. 단기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오늘 하루의 나쁜 결과가 고작 안 좋은 샘플이나, 아웃라이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과거로부터의 결과물의 추세선을 그어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체크할 수 있고 쉽게 낙담하거나 지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단기 결과에 크게 집착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불필요한 보상동작의 늪에 쉽게 빠지지 않는데 도움을 준다. 즉 개별적인 샷(혹은 소리)에 집착하지 않고, 전반적이고 평균적인 결과물에 집중함으로써 적게 돌아갈 수 있는 이정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취미가 존재하며, 그 모두에게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포커나 다트와 같은 활동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축에 속할 것이고, 반대로 퍼즐 풀기나 스도쿠 같은 게임은 불확실성과 거리가 멀다. 내가 좋아하는 플루트 연주와 골프는 불확실성이 높은 취미들이다. 불확실성은 고통스럽다.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어쩌다 이 두 취미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을까?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하여 유리한 결과를 얻을 때 강한 희열과 동기부여를 느낀다. 그리고 때로는 중독된다. 이 메커니즘은 플루트, 골프, 다트, 도박중독이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차이는 통제의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마련하는 것, 즉 개인의 성장이 유무가 도박과 취미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카지노 주변을 서성이는 도박중독자와 프로 포커 플레이어의 본질적인 차이는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통계적 관점의 솔루션을 갖고 있느냐에 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전문가로 살 것인지, 중독자로 살 것인지는 매 순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나만의 시스템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