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꽃일 순 없지만

by 향작



오늘은 두 장의 벚꽃 사진을 찍었다.

한 장은 시집간 딸내미에게 생긴 중요한 약속을 위해 아침 일찍 기꺼이 운전대를 잡아준 아빠의 자동차 안에서 찍은 것이고, 다른 한 장은 집 앞 벚꽃길에서 찍은 것이다.


봄이 우리 동네에만 빼고 찾아온 줄 알았는데, 동네를 다니며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던 탓인지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꽃이 피었고, 미세먼지로 한 치 앞이 아득해도 꽃은 꽃이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그냥 자기 아까워 오래전 읽다가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의 제목도 [고독사 워크숍]이고 내용도 고독사 워크숍을 신청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중 오늘 읽은 내용이 눈길을 끌어 문득 일기를 써야지 싶었다.



봉투에 쌍쌍바를 꺼내며 대문을 들어서는데
마당에서 폐지를 정리하는 노인이 보였다.
“혼났지?”
“뭐가요?”
“고추”
그래서 그 고추와 방울토마토가 노인이 키우는 거란 걸 알았다.

(중략)

그깟 고추 하나 따 먹고 별 시답지 않은
지청구를 다 듣는다 싶었다.
계단을 오르려는데 노인이 뒤에서 말했다.

“난 사람이 자꾸 바뀌는 게 싫어. 사정
같은 건 모르겠고 기왕 이렇게 온 거
살 거면 오래 살아”

기왕이라는 말. 그 말이 차고 달게 느껴졌다.
우성은 손에 들고 있던 쌍쌍바를 반으로
쪼갰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투덜대며 기왕이면 하는 마음으로 더 큰 쪽을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노인이 큰 쪽을 받아
들고 히쭉 웃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
- [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민음사,
pp.189-190 -





우성은 고독사 워크숍을 통해 고독사 장소로 노인의 집에 세를 든 인물이다. 죽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건넨 다 늙은 노인의 “기왕” 오래 살라는 말과, 제멋대로 갈라져버린 “쌍쌍바” 중 큰 것을 나눠주고받은 노인의 히쭉거리는 웃음이 우성으로 하여금 고독사를 멈추게 할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삶이란 게 이따금씩 사사로운 것들이 쌓이고 쌓여 연명할 용기를 주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미세먼지가 가득해도 꽃은 꽃이듯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인생에도 꽃은 지고 또 피는 것이다. 모든 순간이 꽃일 순 없겠지만, 새삼 발견하는 때도 오지 않을까. 금세 터지고 말 어린 꽃망울을, 이미 시작된 꽃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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