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사진첩이 온통 아이들 뿐이다.
온전한 나의 하루를 기록하고 싶어 일기 쓰기를 시작했는데 프로필로 설정할 사진 하나가 없다. 한참을 뒤지고, 내려서 찾았다.
얼마 전, 눈이 내린 뒤의 아침이다.
추운 줄도 모르고, 파리한 잎에 기꺼이 눈을 소복이 품은 소나무를 찍어뒀구나, 내가.
눈이 내린 아침엔 첫 아이 등원이 힘들다. 서른넷의 나이가 무색하게 아직 그 흔한 운전면허가 없는 나로서는 더 그렇다. 눈이 내린 뒤엔 주로 추웠고, 길은 빙판이었으며 아이는 눈을 밟고 뛰느라 걸음이 더없이 더디다. 나는 작은 방에 낮잠을 재워두고 나온 둘째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홈카메라로 잘 자는지 지켜보며 첫 아이를 재촉한다.
얼른 가야 해. 동생이 깨면 엄마를 찾고, 울어.
결국 아이를 안아 들고 큰 신호등을 건넌다. 아이는 운다. 눈을 더 밟겠다고도 한다. 나는 그런 순간에 주로 멈춰 선 차의 운전자들이 다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단 생각을 한다. 남이 보는 그 순간의 나에 대해 생각한다. 힘들겠다거나, 이런 궂은 날씨에 저렇게까지 애 등원을 시켜야 하나, 애를 왜 울리나, 왜 안고 뛰나 따위의. 대체로 내가 아이에게 갖는 일말의 미안함이거나..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갖는 초라함 같은 것들을.
그리고 그런 것들은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제 갈 길 바쁘게 쌩쌩 지나쳐가면 멋대로 흩어져 사라진다.
그런 상념은 하루 건너 하루는 반복된다.
아이 둘을 육아하며 보내는 하루는 힘도 들지만, 내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다.
모든 시간은 아이를 위해 굴러가고, 아이가 아니고서는 이제 내 삶을 설명할 수도 없다. 이렇게 주어진 매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항상 달가운 것만도 아니다. 어쩔 땐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뇐다. 며칠만.. 단 며칠만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돌연 첫째가 ‘엄마’를 부르고 둘째가 기어와 내 다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에 질세라 첫째가 안아달라 팔을 뻗으며 가세하고 냄비에 올려놓은 국은 끓어 넘친다. 두 아이를 말로 달래며 다급히 불을 끄는 것으로 벗어나고 싶단 생각도 꺼버린다. 벗어나긴커녕 아이들과 한데 더 뒤엉켜버린 느낌으로 끝이 난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빼고서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 잘 알고 있다. 엄마로서의 삶을 빼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지 나는 책을 좋아하고,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며, 글쓰기를 즐겨하던 결혼, 출산, 엄마 이전의 나를 조금은 되찾고 싶을 뿐이다. 그런 모습의 엄마를 내 아이들도 좋아해 줄 것 같다. 좀 더 멋지게 봐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나를 찾겠다는 것 또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고자 하는 걸 수도 있다. 정말, 이젠 ‘엄마’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
그래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해도 밝았겠다,
이전의 나를 찾으면서 이전과는 다른 엄마로 살아보려 한다. 육아로 칠갑된 나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