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렵다는 삼십대 이후의 인간관계
아이를 통해 맺어진 관계는 처음부터 서로의 사이에 벽을 하나 짓고 시작한다.
나라는 사람을 속속들이 보여줄 수도, 보여주고 싶지도 않은 관계. 혹여, 나의 작은 허물이 그대로 아이의 허물이 될까 싶고, 그게 내 아이의 약점이 될 것만 같은 노파심이 세운 벽.
내겐 같은 동네에 사는 첫 아이 친구 엄마가 있다. 이 동네에서 유일한 육아 동지이자 가장 친밀한 사람이다. 내가 많이 의지하는 사람인 데다 도움을 받기도, 주기도(그렇게 믿고 싶다.) 하는 사람. 소중하다고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의 중요함은 가지며 지내는 사이.
우리 사이에도 벽은 존재한다.
대부분의 아침을 아이 등원으로 함께하고 그중의 며칠은 같이 커피도 한 잔 하며 또 어느 하루는 점심도 먹는다. 커피 혹은 음식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대화란 주로 아이 이야기이거나 남편 이야기이거나다. 드라마 한 편을 함께 보면서도, 요즘 유행하는 연애프로그램을 화두로 삼으면서도 결국 끝은 아이가 이러쿵저러쿵이다.
나는 우리의 대화가 정말 재미있어 웃고, 그 사람이 위로가 필요할 것 같으면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속으론 말을 여러 번 고르고 고른다. 그러다 몇 마디는 삼키고, 짧은 숨이나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대화 상대가 조금 더 친밀한 사람이라면, 나를 좀 더 잘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내뱉을 말도 곧잘 삼킨다.
내가 건네는 손쉬운 위로나, 맞지 않는 대답이 그 사람에게 무례로 닿을까 겁이 나기도 하고 상처를 낼까 걱정하기도 하면서.
덕분에 나는 우리의 관계에서 조심스러우며 사려 깊고, 진중한 성격의 사람이 된다.
이는 아마도 그 사람이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벽이란 건, 한쪽에서만 지었다 해도 둘 사이를 가로막는, 그런 거니까.
우리의 하루는 아이가 깸과 동시에 시작해서, 아이가 잠든 늦은 밤까지 고생했다며 몇 번이고 서로를 다독이며 끝이 난다. 이토록 누군가와 공감을 주고받고 서로를 위로하는 하루를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온기라고 해도 좋을 그것을 벽을 사이에 두고 진득히도 나누는 하루.
나는 첫 아이 친구 엄마와 나 사이의 벽이 그래서 실은, 우리 둘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허물고 싶지도, 허물어서도 안될 그 무엇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