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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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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May 28. 2022

산책일기 3. 세상의 소음

연재 에세이



산책을 대체하기 위해 저녁 약속 장소까지 부러 걸었다.

도시의 일부를 곁들여 느리게 걸었다.


단지를 벗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터널이 있다.

그곳은 늘 공사가 진행 중이라 아주 좁고 거친 인도였다.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양방향으로 오가려면 누구 하나는 도로 변두리로 붙거나 잠시 멈춰야 했다.


그 인도가 드디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럴듯하게 정비되어 꽤 널찍해졌고, 도로와 인도를 구분 짓는 튼튼한 펜스도 생겼다.

거친 흙바닥은 깔끔한 아스팔트로 정비돼 양방향을 오가는 자전거와 양방향을 오가는 사람,

총 4개의 경우가 혼재되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정돈되어 있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는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 여섯 정거장이 떨어진 곳에 위치한 미술관도 가고, 근처 도서관도 갔었다.

틈만 나면 자전거 탈 궁리를 했다.

그때마다 이 길을 지났다.


나는 사람이 많은 인도와 내리막길에서는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서 자전거를 타고 외출하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다.

새롭게 바뀐 길을 보니, 폐기되어 없는 자전거가 떠올랐다.

마음 편히 타고 지나도록 길이 정비되었으니, 곧 새 자전거를 구해 다시 길을 지나고 싶다.


자전거는 모험이지만,

걷는다는 것은 세상을 소화하는 일의 일부다.

자박자박 걸으며 세상의 소리와 분위기를 나만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음악을 듣지 않으면 못 걷는다고 생각했다.

도시에는 물소리나 새소리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없기에 더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소리에 집착했다.

그러나 얼마 전 귀가 불편해 치료를 받은 이후로, 이 불가분의 관계를 정리했다.


느리게 걷는 일은 든든하다.

세상의 소음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

나의 속도와 관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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