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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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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May 26. 2022

산책일기 2. 사랑의 통념

연재 에세이



오늘 산책은 일 때문에 가볍게 하기로 했다.

집을 나서니 그간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던 야시장이 열리며 낮부터 활기가 제법이다.

빨강, 노란,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야외 포차의 천막들이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역동적이다.


단지를 벗어나 산책로를 향해 걸었다.

저 멀리 내가 걷는 산책로를 따라 난 러닝트랙을 가볍게 뛰는 사람들의 형상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자연은,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말하길,

'이렇게 걸으면서 조금 쉬어도 돼.'


오늘은 걷는 내내 찰스 다윈을 떠올렸다.

생명, 그중에서도 식물의 어여쁨을 예찬한 그가 되어 잠시지만 걸어본다.


뿌리에서부터 힘을 받아 꼿꼿이 선 나무와 풀, 생명들은 볼 때마다 '독야청청'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생명들은 대체 어디서 힘을 받아 저렇게 약해 보이는 한 대의 화살 같은 뿌리와 꽃대로 저리 꼿꼿이 서 있을 수 있을까.





꽃대가 긴 꽃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사진을 다시 찍었으나 이내 "내가 더 길어요" 자랑하듯 더 긴 꽃대가 나와 계속해서 사진을 다시 찍었다.

찰스 다윈은 죽는 날까지 식물에 대한 연구와 사랑을 쉬이 하지 않았다.

식물학이 자연과학보다는 분류학의 개념으로 단순히 조사되던 시절이었으므로, 스스로를 '식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식물학은 종교적 신념이 성성하던 시절, 인간의 삶에는 신의 목적과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고 믿던 시절에, 생물의 진화론을 제기한 《종의 기원》 출간 이후,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에 맞서 그가 차분하고 이성적인 골몰을 계속해서 조용히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에게 식물의 진화와 인간의 진화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연은 그에게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는 식물을 깊이 사랑했으며, 예쁘게 여겼다.

그렇게 식물이 '자가수분한다: 식물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으므로 꽃가루를 종이 서로 교환하지 않고, 한 그루의 식물 안에서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직접 붙는다'는 통념이 지배적이던 시절에 진화의 궁극적인 의미를 본능적으로 탐구해 교차수분의 비밀을 알아냈고, 종의 번식을 위해 식물과 곤충이 전략적으로 협력적인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그 안에는 식물의 구조의 비밀, 곤충의 형태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음을 계시했다.


올리버 색스는 그의 마지막 저서 《의식의 강》에서 찰스 다윈이 "자연을 자신의 고향처럼 느끼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이는 다윈이 먼저 그렇게 느끼게 해준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러한 마음에 오래된 생물학적 기원을 연결해 그가 맑은 해답을 준 것이다.

자연을 친근하게 느끼는 마음, 곁에 있으면서도 늘 그리워하고 궁금해하는 인간의 본연적인 마음에 대한 뿌리적 역학, 진화적 이론을 다윈이 발견해 제시했기에 더 명료한 마음으로 자연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이해와 연대의 눈을 뜬 것에 대한 감사의 명명이 아니었을까.





어제 날씨가 흐렸던 탓인지 오늘 다시 만난 장관이 기가 막혔다.

나 또한 내가 자연을 잘 모르면서도 때론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 의아했으나, 내 마음의 기원을 만난 듯해 기뻤다.

모든 사랑에는 그럴 만한 연원이 있는 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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