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연학원에 다녔다. 중학생때부터 입시에 대한 압박을 느끼기 시작해서 학교가 파하면 바로 학원에 갔다. 집에 가서 교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간식을 먹고, 학원 버스를 타고 가는 일의 반복이었다. 학원은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당시 입시학원이 성행하기도 했고, 한 곳에서 모든 과목을 커버할 수 있는 학원이 과외보다 수요가 많았다. 과목별 고액과외를 시켜줄 수 없는 학군이기도 했다.
학원은 4층에 위치해 있었다. 1층에는 무한리필 고기집이 있었는데, 시험이 끝나거나 하는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코묻은 돈을 모아 가끔 친구들끼리 고기파티를 하기도 했다. 주변은 맞은편에 낡은 아파트가 있었고, 사거리를 넘어가면 아파트단지들과 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길의 동쪽으로 가면 종로학원이 크게 있었는데 그 지역의 투탑이었다. 나 또한 종로학원을 다닐까 교연을 다닐까 고민했기 때문이다.
학원 호황기였기 때문에 학생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심했다. 하지만 내가 이 학원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이 많이 다녀서 시험을 더 학교맞춤형으로 맞춰준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시험기간이 되면 그동안 해당 학교에서 나온 시험문제를 돌려봤다. 유료로 해당 시험문제를 제공하는 사이트도 있었지만 모든 회차를 출력해서 보기엔 금전적 이슈도 있었을 뿐더러 학원에 다니면 선생님들은 그런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었다. 내 선배들이 보았던 시험 문제들을 그들은 모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원에는 점점 더 많아졌고, 학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유치할수록 홍보 효과도 뛰어났기 때문에 나를 특별대우해주는 것도 있었다. 원장님은 내가 등록할 당시에 아주 기고만장해 있었는데 들어오겠다는 학생은 넘치고, 선생도 넘쳐서 (실제 그렇진 않았겠지만) 앉아서 돈을 버는 꼴이었다. 딱 보기에도 좋은 외제차와 아름다운 부인, 딸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 행복한 아버지였다.
원장은 물었다. "학교 성적이 어떤가요?" "전교 80등 정도요" "훌륭하네요. 우리 학원은 수준별 학습을 해서 일단은 중간반에 들어갔다가, 성적이 좋아지면 최상위반으로 들어가서 킬링문제가 나왔을 때 맞출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그에 따른 선생님들도 고등반 수업을 하는 분으로 꾸려져 있답니다. 잘 하니까 우리 학원 다니면 더 성적이 오를거에요." "네" 중학생이던 나는 1학년땐 어리버리 타다 전교 80등 정도에 머물렀다. 이 등수를 알게 된 아버지는 노발대발 뛰었다. 그동안 많은 학원을 다녔지만 초등학교때까진 피아노, 태권도, 컴퓨터, 구몬 같은 성적과는 관련없는 활동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자식이 400명중에서 80등이라는 등수를 했다는게 창피한 것 같았다. 그에 따라 학원에 강제입학하다시피 들어가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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