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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ug 24. 2024

유실과 행운

해변을 걷다가 차키가 툭 떨어졌다. 링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자갈 속에서 연결고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몇 번을 그 자리를 왔다 갔다 했지만 행방은 묘연했다. 결국 연결고리를 빼고 가죽만 차키에 씌웠다. 파도는 거세게 치고 있었다. 삶의 많은 순간들을 나는 잃어버린 것을 찾는데 몰두했다. 하지만 시선을 돌리면 파도는 내게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순간에만 몰입되는 건 내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해변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걷다가 신발을 벗고 계속 걸었다. 발자국이 모래에 남다가 걷다 보니 더욱 움푹 파이는 지점이 있었다. 한참을 앞만 보고 걷다가 뒤를 보니 발자국을 파도가 지우고 있었다. 한 번에 지워지진 않았지만 몇 번의 파도 끝에 발자국은 지워졌다. 발자국은 인간이 삶을 살며 끝없이 흔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에 비쳐 보였다. 하지만 그건 시간의 풍화 속에 지워진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고뇌하고 고통에 빠져 있는 것인가?


어젠 자기 전에 연락처를 쭉 훑어봤다. 많은 사람이 연락처에는 있었지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연락하지 않는 연락처를 지우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관뒀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 사람들도 내게 연락하지 않는 거 보면 끝인 거다. 잊혀 간다. 한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시간 속에 지워질 거라 생각하면 조금 슬퍼진다. 그가 나를 죽을 때까지 기억해 주면 좋겠는데.


해변의 카페에서 망고빙수를 먹다가, 누군가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마침 주차장에는 해변이 펼쳐져 있었고 누군가는 차를 세우고 파도를 응시했다. 그도 나와 같이 고독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지만 말을 걸진 않고 그냥 바라볼 뿐이었다. 어쩌면 그도 누군가 말 걸어주길 기다렸을 테지만 필연적으로 스쳐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길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숙소로 돌아오자 엠알 소리가 들렸다. 들어간 카페에선 사장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이를 물었고 35이라고 하자 내가 제일 연장자였다. 사람들은 각자 한곡씩 부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못 이기는 척 hotel california를 불렀다. 낯선 곳에서의 쇠락한 분위기가 났다. 사람 속에 속해있으니 30분 전에 했던 삶과 풍화와 고독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 당장 누군가가 내 기분을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 했고 직원은 맥주를 갖다주었다. 체크인하니 다인실을 혼자 쓴다고 했다. 유실과 행운이 함께한 날이었고 집에 있었더라면 느낄 끝없는 자조와 자괴를 느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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