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완성 중이다
연휴였고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하는 삶은 고독했다.
다만 회사 다닐 때와 달리 새벽에 일어났는데 하고 싶은 일을 아침에 할 수 있을 때 이렇게
다르구나를 실감했다.
갑자기 폭등한 주식과 우울한 날씨까지
완벽했다.
사람은 없어도 되는데.
단순하고 간결한 삶을 살고 싶다.
요가로 시작해서 피아노로 끝나는 삶.
하루 종일 음악을 들었고 미숙하게나마 골드베르크를 완성했을 때 기분 좋은 피곤함이 느껴졌다.
최근 글을 안 쓴 건 약간의 무력감이기도 했다. 상훈을 후배가 본인이 본인 추천해서 받는 걸 봤을 때 '가지가지하네'란 생각과 '와 저렇게 다 먹고살라고 열심히 하는데 나는'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버렸고 웃긴 게 그들이 공적조서를 작성한 걸 상사가 수정하고 있을 때 나는 막상 상위한테 전화가 와서 공표일자를 조율하고 업무를 하고 있었단 것이다.
유공표창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나지만 그들은 맡은 업무에서 누구와 조율을 하지도 않았고 애쓰지도 않았다. 매일이 무사태평하고 아무 일도 없는 반면 부서일은 내가 다 하는 것처럼 나는 악을 쓰고 서기관과 통화하며 수시로 업무를 보고했다. 그런 걸 상사도 아는지 긴 연휴를 맞이하는 하루의 마지막에는 은근히 와서 친한 척을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웃으며 대할 때 그 안에는 경멸이 들어있다고 하던가. 여느 날처럼 업무를 독촉하는 그에게 '(기안)올렸어요' 미소를 지었더니 그는 한참을 인공눈물과 식염수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가벼운 웃음으로 그 말을 넘기고 나서 회사를 빠져나왔다.
긴 연휴였다. 그렇지만 여느 때처럼 일주일간의 휴가가 주어졌을 때 해외로 도피를 한다거나 하고 싶진 않았다. 외국에 나가서도 외국인과 소통하지 않는 나는 그곳에서의 경험이 한국어가 들리지 않고 식사가 한식이 아니라는 것일 뿐 외국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한국을 걷는듯한 기시감에 빠지곤 했다. 단지 외국임을 단단히 느낄 수 있었던 건 빠른 템포의 전자음악을 들을 때뿐이었다.
어느 날 친척동생의 '네가 음악을 한다고?'비웃었던 내가 음악이란 목표가 생기니까 미친 사람처럼 연습만 했다. 임윤찬이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나도 방음공간이 있는 무제한 연습공간이 있다면 밥도 김밥으로 대충 먹고 연습만 하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에는 사람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더디지만 소리가 나아지는 것도 귀로 들을 수 있었다.
새롭게 등록한 피아노학원은 기존에 다니던 연습실과 달리 원장과 강사가 상주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더 잘 조율된 피아노와 간식, 음료, 역시나 더 방음이 잘되는 장점도 있었다. 기존연습실에서 전공자가 연주하는 슈만을 들었을 때 역시 열패감을 느꼈다. 어느 날 손열음의 연주를 듣고 와서 '결국 연주자가 되지 못한 나는 실패한 거야'라는 감정을 느꼈던 것처럼, 그 길을 가보지 않아 막연한 동경과 잘될 수도 있었을 거란 감정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결과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것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것도 존재했다. 그건 종이의 양면과 같아서 사람이 살아오며 좋은 일만 있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일테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길이 있었을 때 미련을 갖게 되는 건 사람의 본성이기도 하고, 그 길을 가서 실패할지라도 기어이 가게 되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남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질 때, 그 삶에 항상 의문을 가졌다. '그게 내가 원하는 거야?' 원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안정감보단 불편함을, 어떤 벗어나고 싶은 굴레처럼 느껴졌던 것은 집을 떠나온 것에 대한 당위성이 되었고 다시는 본가로 들어가지 않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들이 보여줬던 건 재정적 지원으로 표현되는 사랑이었으나, 내가 아이를 낳아 나 또한 할 수 있는 한의 돈을 쏟아붓고, 더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지원에 대한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게 얼마나 숨 막히는 건지 부모의 삶을 보며 깨달았고 오늘 집을 보러 온 젊은 부부의 품에 안겨있는 포대기의 아기를 보았을 때 생명에 대한 고귀함보다는 그 아이가 겪을 고난 같은 것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태어났고, 그래서 고민했으며 '이 삶이 최선인가?'를 떠올리는데 최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서 하릴없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날 친구가 '아무거나 그려봐'했을 때 모니터를 바라보는 나 자신을 그림에 소름이 돋는 날이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야'라는 확신은 가졌지만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었다.
남들과 비교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직장의 후배가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남들이 사는 것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나 또한 그걸 부러워하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서 누구에게나 선택이란 게 존재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길은 변한다.
'안정'을 찾으려고 하면 불안정해지고, 위험에 날 내맡길 때 그 길이 차라리 안정에 이르는 길인걸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내가 선택의 길에서 막 절벽으로 뛰어내리려고 할 때 지금까지 해왔던 관성이 날 붙잡아왔었다. 근데 이제 나이가 들면 더더욱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나는 물에 고개를 처박으려 하고 있다. 가보지 못한 길,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영영 하지 못할 일.
유년 때 '싫어하는 공부를 하면 2시간은 피아노를 칠 수 있어'라고 자신에게 말하던 어린 나는 결국 재미없는 회사원이 되었다. 8시간을 복무하는 동안 '이 시간을 참으면 피아노를 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나는 결국 어릴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는 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때 돈이 전부라고 생각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많은 돈을 벌어 그걸 관리하는 데도 에너지가 쓰이며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 하는 귀찮은 일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돈을 벌어서 하고 싶은 게 좋아하는 일이라면, 회사에서 하는 온갖 잡다한 망상과 생각들을 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순간에 몰입되고 싶다. 결국 날 충만하게 하는 시간은 망부석처럼 의자에 앉아 멜로디를 둥당거리는 시간이었다.
5월에 면접을 보고 비자가 나오면 집을 팔고 부다페스트에서 자리를 잡는다. 석사를 하고 안 맞으면 돌아오면 되고 맞으면 박사를 한다. 앙드레코스톨라니처럼 주식을 하면서 음악을 즐기는 삶을 산다.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을 매일 보는 대신 날 지지해 주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낸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욕망보단 무언가 하나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최근에 가장 많이 했다. 직장인들이 회사를 나오면 어느 날 갑자기 끊기는 연락에 본인의 존재가치를 잃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핸드폰에 아무런 알람이 울리지 않을 때, 나는 어디에서 내 가치를 찾을 것인가. 요새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고 그것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아 그걸 토해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브런치에 쓰는 글도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위해 썼다면 지금까지 글쓰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라이킷을 누르고 답방을 오길 원하는 누군가를 애교로 봐주기로 했다. 나도 누군가가 날 봐주길 원하던 때가 있었으니. 그냥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