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GAG
한국 개그맨의 창시자 전유성 씨가 며칠 전 작고했다는 소식을 이역만리 땅에서 뒤늦게 듣는다. 기존 코메디 프로에 혁신을 가져온 자다.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씨를 대표로 하는 우리나라의 코메디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이전까지의 단순 희극에 정치를 비꼬는 풍자가 제법 가미된다. 고대 헬라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 시조일 테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전두환이 급작스레 떠오른다. 전두환은 코메디 (이때는 개그라는 말이 없었다)가 ‘드럽게‘ 유치하다고 하여 방송국 코메디 프로와 그 배우들을 아작낸 적 있다. 이게 뭔 얘긴고 하니, 비극은 삶을 정화하고 되돌아보게 하며 발전케 하는 반면 희극은 사회를 비꼬는 면이 있다. 즉, 정치풍자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긴 처사다.
움베르토 에코 < Il nome della rosa >
The name of the rose라는 이 소설 참 삼삼하다. 미국 이민 오던 해 2003년 출간한 소설 <다 빈치 코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니다. <장미의 이름>을 읽노라면 20년 후에 나올 <다 빈치 코드>를 미리 보는 듯하다라고 해야겠다. 하튼 그렇다 치고. 이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데뷔작이면서 대표작, 1980년 이탈리아에서 첫 출간한다. 기호학과 역사학에 미친 에코의 성향을 제법 드러내준 작품이다.
필자가 여섯 살쯤 되던 해, 에코는 희한한 책 한 권을 손에 넣는다. ‘멜크 수도원, 아드소의 수기‘라는 책. 멜크 수도원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백발의 노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쓴 건데, 진실성은 알 수 없고 허구일지 모르는 이 이야기에 에코가 멜크 수도원 연쇄살인을 설정하면서 유명세를 탄다.
이야기 배경의 수도원 위치는 북이탈리아와 프랑스 접경으로 대략 1320년대 얘기다. 중세 마녀사냥 시기의 북이탈리아 어디쯤, 베네딕트 소속 멜크 수도원에서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시종 다 빈치 코드처럼 긴박하게 전개된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윌리엄은 멜크 수도원을 찾는다. 역사적 배경으론 교황과 프란치스코회가 청빈론 문제로 이단논쟁에 살인까지 자행되고, 이에 양측이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만나 갈등해결을 하려던 중, 윌리엄이 준비차 미리 수도원에 온 게다. 이때부터 일주일간 수도원에서 의문의 사건이 벌어진다. 수도원 원장은 그에게 변사 사건의 규명을 부탁하는바, 교황 측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 사건을 마무리짓고 싶어 한다. 윌리엄 수사는 죽은 시체들이 하나같이 손가락과 입술이 까맣게 타죽은 걸 보고 독약을 의심...블라블라블라 나머지 이야기는 각자 알아보시고.
영화에서는 윌리엄 수사 역으로 007 영화배우 숀 코넬리가 나오는데, 어느 역할을 맡겨도 잘 어울린다. 매번 이분법적 논리로 질문하는 순수 영혼의 아드소에게 덥수룩한 매력의 윌리엄 수도사 답변이 인상적이다.
살인은 사실 누가 죽이는 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란 책에 있다. 금서로 지정한 저 책을 읽으면 죽여버릴 심산으로 호르헤라는 늙은 수도사가 한 짓이다. 앞 못 보는 장님으로 나온다. 맹인이지만 탁월한 예지능력을 지닌, 고대 헬라시절의 전설 테이레시아스를 카피한 듯하다.
호르헤 수도사. 작품에서 맹인이라는 사실이 극단적인 신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지식과 진리에 대한 독점적 성향을 이끌어가는, 그로테스크한 뉘앙스를 풍긴다. 맹목적 신념으로 수도원에서의 ‘웃음’이 경박하다며 금지하려 했던 노인 수도사다. 웃음은 경박하고 추한 것이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웃음을 유발하는 지식을 제어한다. 호르헤 수도사는 특정 지식이 대중에게 퍼지면 안 된다 믿고, 자신이 지배하는 지식만이 올바르다 주장하는 지식독점자다. 이러면 세상 참 살기 힘들다. 꼴통 미꾸라지 한 마리가 늘 사회를 어지럽힌다.
ps ‘장미’라는 어휘는 나오지 않다가, 엔딩에서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이름뿐이며, 우리에게 남은 것도 덧없는 이름뿐.”이라는 독백에서 언급될 뿐이다.
Comedy
단테 불후의 명작, 코메디아(La Commedia). 신곡(神曲)이란 타이틀은 단테 사후 보카치오가 라틴어 디비나(Divina, devine)를 추가하여 La Divina Commedia가 된 거고, 한국어 '신곡'은 일본 번역 제목을 그대로 쓰는 거다. 독일에서 번역한 걸 일본이 다시 번역하고 그게 한국으로 들어온 경우도 허다하다. 하튼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인류 최고의 인문학작품에 왜 코메디가 들어가 있는지 학창시절붙터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 인문학작품에 코메디란 용어가 있으면 안 될 이유도 없고 개그계엔 미안한 말이지만서도. 사회적으로 좀 추하다든지 비난받을 만한 뭐 그런 것으로부터 점차 좋은 결말로 나아가는 tool로써 당시 사용하던 문학 용어란 학설도 있다. 작품의 구성을 보면 지옥, 연옥, 천국을 거쳐 단테 여정이 궁극으론 희망찬 천국을 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런 제목을 붙였으리라.
코메디. 그 옛날 고대 헬라 때부터 이미 정치풍자는 파다하게 있던 터다. 비극은 인간을 정화시켜주고 사회시스템을 결국엔 공고히 하는 면이 있으나 희극은 그냥 웃기는 차원 너머에 사회 정치 풍자라는 칼을 숨기고 있다. 이러니 정치 권력을 쥔 자들이 툭하면 희극인들을 잡아족치곤 한다. 전두환이 그 대표고, 공산국가 사회주의국가들이 다 그렇다.
고대 헬라시절, 대표적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 구름’이란 작품이 있다.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의 우두머리로 묘사, 궤변을 통해 도덕과 진리를 타락시킨다고 비판한다. 뜬구름 잡는 말장난으로 젊은이들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지식인들을 풍자, 소크라테스를 당시 공동체의 안정을 해치는 대표 인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이걸 구경하는 소크라테스는 참 가관인 게, 작품에 대항하기는커녕 그저 허허 하며 받아들인다. 이런 연유로, 호르헤 수도사는 ‘시학’에 있던 희극부분을 막으려 했을 테다.
ps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1부 비극 2부 희극이었는데 2부 희극부분은 소실되어 없고, 다만 후대의 기록을 통해 2부가 희극이었음을 확신할 뿐이다.
전유성 씨, 부디 재밌는 세상에서 영원히 평안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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