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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월 여행] 레드루스 전망대

칸브리어(Carn Brea)

by 방랑곰

오늘 소개하는 장소는 한국인은 물론, 영국인들조차 잘 모르는 장소이다. 짝꿍의 아버지가 데러간 곳으로 콘월 지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일종의 전망대이다. 사실 전망대가 아니라 야트막한 언덕위에 오래된 고성 하나가 있는 곳인데, 우리에게는 콘월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였기 때문에, 글 제목도 '레드루스 전망대'라고 결정했다. 이 언덕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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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브리어는 가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콘월의 많은 지역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명소이긴 하지만, 표지판이 별로 없었고 이곳에 대한 관광 안내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짝꿍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전혀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장소이다. 이렇게 홍보가 안되어 있어서 당연히 이곳을 찾는 영국 현지인들도 그렇게 많지는 아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이곳까지 가는 길이었다. 칸브리어 전망대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는데, 그 올라가는 길이 정말 좁고 양 옆으로 나무가 빼곡하게 있어서 운전할 때 시야도 확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길을 약 1~2km 남짓 올라가야 하는데, 별로 긴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워낙 좋고 위험한 길이라서 극도로 조심하면서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을 다 오르고 나면 아주 작은 공터가 나온다.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 공터에 주차를 하면 된다. 이곳부터 전망대까지는 약 5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될 정도로 아주 가깝다. 조금만 걸어가면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과 같은 기념탑에 도착하게 된다. 사진으로는 기념탑의 크기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데, 실제로 보면 크기가 꽤 크다. 인근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서 있는 기념탑이라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 탑을 꽤 많이 보긴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꽤 멀리서도 이 기념탑이 보일 정도로, 칸브리어는 넓은 평지 위에 우뚝 솟아있다.


이 기념비는 당시 콘월에 살던 프란시스 바셋(Francis Basset)을 기념하기 위해 1836년에 세워졌다. 바셋은 콘월 지역에서 광업을 운영하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힘을 보탰다. 이러한 공로로 바셋은 남작 지위를 받았고, 당시 광부들의 복지 향상에 많이 힘썼던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이 기념탑이 이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IMG_7681.JPG 거인들이 던지도 놀던 바위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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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아주 오래 전에 거인이 살고 있었어."


칸브리어의 바셋 기념탑 주변에는 거대한 돌무더기들이 꽤 많다. 언뜻 보면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는 돌무더기들인데, 짝꿍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이 돌은 칸브리어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칸브리어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아주 멀리 언덕 하나가 보인다. 아주 오래 전에 칸브리어와 멀리 떨어진 언덕, 양 쪽에 거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 두 거인은 서로 돌을 던지면서 놀았고 그 당시 반대편 언덕에서 던진 돌이 칸브리어에 언덕 위에 남아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거인에 대한 이야기는 콘월에서 아주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실제 전설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소한 것에다가도 이야기를 덧붙이면 그 사소한 것에 이미지가 생기고, 그 이미지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이 조금 더 복합적으로 만들어지고, 이렇게 복합적인 기억은 조금 더 오래, 그리고 생생하게 남아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칸브리어 언덕은 이렇게 거대한 돌들이 나올 것 같은 장소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이 언덕 위에 이렇게 거대한 돌들이 자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했을 것이고, 그 궁금증에 이야기를 더했을 것이다. 나도 왜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돌이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이와 관련하여 검색을 해봤지만, 이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그저 거인 전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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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686.JPG 우리가 거북이 바위라고 이름 붙여준 바위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주변의 모습을 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콘월에서 가장 높은 장소인 만큼 콘월 곳곳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고, 더 먼 곳에는 바다가 보였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바다까지는 잘 안보인다고는 하는데, 우리는 운이 좋게도 날씨가 정말 맑았고 가시거리도 정말 길었다. 이 언덕 위에서 짝꿍 아버지는 동네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가까운 곳에는 마을은 레드루스(Redruth), 풀(Pool), 캄본(Camborne)이 있었고, 멀리는 콘월의 최대 관광동네인 세인트 아이브스(St. Ives)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짝꿍의 가족이 살고 있는 포트리스(Portreath)도 작게나마 볼 수 있었다.


이날 칸브리어 언덕 위에서 바라본 마을을 한 달 동안 머무는 동안 거의 모두 가보게 되었다. 이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하나씩 풀어낼 예정인데, 마을마다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고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콘월이라는 시골 마을에 한 달이나 머물렀음에도 결코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칸브리어 언덕 위에서 바라본 콘월은 자연과 마을이 잘 어우러진 모습이었다. 마을이 있는 곳에도 녹색 공간이 많이 보였고, 실제로도 콘월의 마을은 자연 속에 안겨있거나, 자연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을이 없는 곳에는 넓은 평원이 이어지는데, 평원에는 곡물이 심어져 있거나 가축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너무도 평화롭고 조용한 콘월의 분위기를 칸브리어 언덕 위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IMG_7688.JPG 멀리 보이는 언덕(갈색)이 다른 거인이 살던 곳이다. 언덕 이름은 세인트 아그네스(St. Agn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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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서 밥을 먹으면 어떤 기분일까?"


기념탑 주변에서 짝꿍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콘월 곳곳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해주셨고, 우리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콘월의 모습을 충분히 담아냈다. 그리고 기념탑과 반대편에는 고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다. 언덕 위에 세워진 그 건물은 무엇일까.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왜 고성이 세워진 것일까. 이런저런 궁금증에 우리는 고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기념탑에서 성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우리가 주차한 곳을 지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금방 성 앞에 도착한다. 멀리서 봤을 때 그렇게 크게 보이지는 않았던 만큼, 이 성은 가까이 다가가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덕 위에 늠름하게 자리하고 있는 성은 그 자체로 위용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성은 칸브리어 성(Carn Brea Castle)으로 14세기 후반 교회로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교회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18세기에 와서야 위에 나오는 바셋(Basset)이 건물을 보수하고 사냥을 위한 건물로 활용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평범한 성에 대한 설명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성의 용도가 흥미롭다. 이 성의 용도를 보고 처음에 나와 짝꿍은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칸브리어 성은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 입구에는 칸브리어 성 식당(Carn Brea Castle Restaurant)이라는 팻말이 꽂혀 있고, 건물 출입문 옆에는 메뉴판이 붙어있다.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식당으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만 운영하기 때문에 우리가 갔을 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식당에서 영국 음식이 아닌, 중동 음식을 판매한다는 사실이다. 아주 전형적인 영국의 고성에서 판매하는 중동 음식이라... 그 맛이 궁금해서 나중에 한 번 와보자고 짝꿍하고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결국 이 식당을 가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칸브리어 성에서 밥을 먹게 되는 날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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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에서와 마찬가지로 칸브리어 성에서도 콘월을 잘 내려다볼 수 있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구도가 달라지면서 우리가 보게되는 콘월의 모습도 조금은 달라졌다. 기념탑에서 미처 보이지 않았던 방향까지 성에서는 바라볼 수도 있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콘월의 모습은 파란 하늘 아래 녹색이 가득하고, 녹색 중간중간 모형처럼 생긴 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에는 바다가 보이는데, 바다와 하늘의 색깔이 비슷해서 수평선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도 환상적인 날씨였다.


우리는 성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고 언덕을 내려왔다. 가는 길도 정말 좁고, 제대로 된 주차장도 없어서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이런 어려움을 헤쳐가면서까지 우리를 이곳에 데려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칸브리어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만큼 환상적이었다. 도심 지역의 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과는 풍경이 사뭇 달랐다. 도심은 주로 건물을 보고 밤에는 야경을 보는 매력이 있지만, 이곳은 자연풍경, 그리고 그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작고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콘월 지역을 너무 잘 조망할 수 있는 장소였고, 콘월 여행을 시작하면서 이곳에 간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앞으로 콘월의 마을을 갈 때마다 '칸브리어에서 봤던 곳이네'라는 생각과, 이곳에서 짝꿍 아버지가 해주셨던 설명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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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콘월 지역의 전망대, 칸브리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쓰긴 했지만, 콘월을 여행하려는 사람에게 이곳을 가보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차가 없으면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고, 차가 있더라도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뚫고 도착해서 얻는 결실은 매우 달콤했다. 그럼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에 다른 콘월지역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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