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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튼 해변 이야기

바다가 예쁜 도시

by 방랑곰

영국의 동네 이야기를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런던에 대한 이야기를 금방 끝내고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런던에 대한 콘텐츠가 생각보다 더 많이 나왔고, 그만큼 영국의 다른 동네에 대한 이야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런던에서 내가 보고 느꼈던 이야기는 다 풀어낸 듯 하다. 그래서 영국의 다른 도시로 이동해 볼까 한다. 바로 내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살았던 곳, 어학연수를 위해 6개월 동안 내 삶의 터전이 되어준 곳, 바로 브라이튼(Brighton)이다.



브라이튼일까, 브라이턴일까


나는 블로그나 다른 곳에 브라이튼이라는 이름을 쓸 때마다 고민한다. 브라이튼이 맞을까, 브라이턴이 맞을까. 네이버 지식백과나 구글 위키피디아에 검색해보면 브라이턴이라고 나오는데, 이 지역에 소속되어 있는 축구팀 이름*을 쓸 때는 또 브라이튼이라고 쓴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걸 따라서 쓰려고 하다보면 내가 하는 발음은 또 브라이튼에 가깝다. 그래서 항상 머리 속에서 뒤섞인다.

*브라이튼 축구팀 이름은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Brighton & Hove Albion)'이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내가 더 친숙하고 마음이 가는 것으로 사용하자'이다. 그래서 이 글 제목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나는 내가 내뱉는 발음과 더 가까운 브라이튼이라고 쓰고 있다. 처음부터 이름으로 내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준 브라이튼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나의 친숙한 삶의 공간이 되었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좋은 기억으로 간직되고 있는 공간이다. 영국에서 나의 첫 공간이었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가고, 영국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내가 항상 꼽는 곳이다.



브라이튼의 겨울과 여름


브라이튼은 어떤 도시일까. 영국 사람들에게 브라이튼에 대해 물어보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이 '여름을 보내러 가는 곳'이다. 즉, 영국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 브라이튼이다. 이는 브라이튼이 영국 남쪽 끝자락에 있고 넓은 해변이 펼쳐져 있어서인데, 영국은 해안선이 절벽이나 바위로 이루어진 곳이 많아서 이렇게 해변이 있는 바닷가를 영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영국 사람들이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해변을 찾아 브라이튼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브라이튼의 겨울과 여름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겨울은 몸과 마음이 모두 차가워지는 반면, 여름에는 몸이 따뜻해지고 마음은 활력이 가득하다. 이 차이는 사진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위에 있는 사진 세 장은 겨울에, 아래 사진들은 여름에 찍은 브라이튼의 모습이다. 다시 말해서, 영국의 겨울은 낮이 짧고*, 비가 오고 흐린 날씨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바다에서는 찬바람이 쉴새없이 불어온다. 해가 빨리 지는 데다가 날씨까지 이렇다 보니까 도시 전체가 전반적으로 차가운 분위기에 휩싸이고, 자연스럽게 바닷가에 가도 사람이 없고 텅 비어있는 삭막한 해변만 보게 된다. 마치 전체 도시가 여름에 온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고 겨울에는 재충전을 위해 동면에 들어간 듯한 모습이다.

*겨울에 영국은 오후 4시만 되면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와는 반대로 여름만 되면 브라이튼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일단 해가 길어지면서 밤 8~9시가 되도 환하고, 파란 하늘과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아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바로 해변으로 가서 일광욕을 즐기기도 하고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기도 한다. 파란 하늘 덕분에 바다까지 더 푸르고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시기에는 외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활력이 넘치는 브라이튼이 된다.


영국은 날씨 변덕이 심하고, 전체적으로 흐린 날씨가 많은 편이다. 1년 중에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따져봤을 때 약 60일 정도 뿐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영국 사람들에게 햇빛은 꽤 소중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브라이튼 해변에는 수영복만 입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게 된다. 온 몸으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점심 시간에도 햇빛을 보려고 음식을 테이크아웃 한 후에 해변에서 햇빛과 바다를 반찬 삼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다.



나도 어학연수 하던 시절, 이 해변에 앉아서 밥을 먹은 적이 꽤 많다. 한국에서 살면서 햇빛이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영국에서 겨울을 보낸 후에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영국에 있을 때 날씨가 좋은 날이면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밖에서 많이 머무르곤 했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거나,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것들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언젠가 흔한 어떤 것들이, 당연했던 어떤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갈 때가 있고 그제서야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던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 때로는 그 순간이 너무 늦을 때도 있다.


"있을 때 잘하자."


내가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는 말 중에 하나다. 있을 때 잘하고, 나중에 후회를 남기거나 미련을 가지지 말자. 혹시 미련이 남더라도 적어도 '그 때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어. 그래도 지금까지 내 곁에 있어서 감사해' 라는 생각이 들 수 있기를.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것에 집착을 하기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것에 소중함과 감사함을 표현하고 살아가자. 내 곁에 있는 어떤 흔한 존재가, 당연한 존재가 떠나간 후에 그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은 브라이튼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였다. 브라이튼은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는 것이다. 그들이 브라이튼의 여름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지만, 나는 브라이튼의 겨울 바다도 나름의 매력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삭막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내가 바라봤던 브라이튼의 바다는 겨울에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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