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튼 팰리스 피어이야기

브라이튼의 놀이터

by 방랑곰

오늘은 영국의 동네이야기 두 번째 동네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지난 번에는 브라이튼이 자랑하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은 그 바다 위에 있는 브라이튼의 놀이터를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브라이튼 해변에서 바다로 길게 뻗어있는 브라이튼 팰리스 피어(Brighton Palace Pier)*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브라이튼 팰리스 피어가 공식명칭이지만, 편의상 이 글에서는 브라이튼 피어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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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종합 놀이동산


브라이튼에 도착하고 얼마 후, 바로 바다를 보러 나갔다. 바다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다를 보면서 해변을 조금 거닐다가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렇게 바다에 도착을 했고, 나는 수평선을 향해 길게 손을 뻗고 있는 건축물을 보게 되었다. 바다 위에 만들어진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그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서 자연스럽게 그 건축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이 나와 브라이튼 피어와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에 브라이튼 피어에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브라이튼 피어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들어갔었는데, 막상 들어가서 바라본 그곳은 브라이튼의 놀이터이자 종합 놀이동산이었다. 그만큼 그 안에는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오락실부터 해서 식당, 카페, 그리고 놀이기구까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고 시간을 많이 보냈던 장소가 오락실이었다.


영국의 오락실을 이 곳에서 처음 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면이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고 즐기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즐겨했던 게임이 1페니 동전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동전을 넣으면 뒤쪽에 차곡차곡 쌓여서 앞에 있는 동전들을 밀어내는 방식이었다. 앞쪽에 1페니 동전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금방 떨어질 것 같아서 하고하고 또 해봤는데, 생각보다 동전은 끈질기게 매달려 있었다. 이 게임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서 브라이튼 피어 곳곳에는 1파운드짜리 동전을 1페니로 바꿀 수 있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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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오락실에 붙잡혀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브라이튼 피어 끝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또 하나의 건물이 있고 그 안에는 역시 오락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브라이튼 피어 끝에는 여러 개의 놀이기구가 있다. 피어 위에 오락실이 있는 건물이 있긴 하지만 너비가 그렇게 넓은 것은 아니어서 한 두개의 놀이기구만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꽤 다양한 놀이기구가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것부터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까지 그 종류도 꽤 다양했다. 평소 놀이기구를 즐겨타지 않아서 직접 타보지는 않았지만 바다 위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과 환호성을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중에서도 360도로 돌아가는 타워형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피어 끝에 있는 탓에 놀이기구 위에 앉아 있으면 바다로 다이빙하는 느낌이 들 것만 같았다. 직접 타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상상하는 느낌일 뿐, 실제로 탔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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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바라보는 브라이튼 해변


놀이기구를 즐기는 사람들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피어를 거슬러 가기 시작했다. 이곳까지 올 때에는 건물 안을 구경하면서 왔다면, 돌아갈 때에는 건물 밖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걸었다. 걷다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순간 작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브라이튼 피어 바닥은 나무로 되어있고, 나무 사이사이로 틈이 조금씩 벌어져 있어서 아래가 훤히 보였던 것이다. 그 아래는 바닷물 뿐이었고, 당연히 안전상에 문제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이 피어가 만들어진지 100년도 넘었다던데*...'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브라이튼 피어는 1899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정신건강에 이롭지 않을 생각을 떨쳐내고자 고개를 얼른 들었다. 저 멀리 사람들이 햇빛을 즐기고 있는 브라이튼의 끝없이 긴 해변과 해변 뒤로 늘어선 건물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높은 건물들이 없어서 전체적인 모습이 안정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배를 타지 않았는데도 바다 쪽에서 해변을 바라보는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옆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광활하고 푸른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슴이 트이고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영국이라는 낯선 나라, 혼자서 모든 것을 적응해야 했던 그 시기에 내 가슴 속에 머물러 있었던 일말의 두려움, 외로움와 같은 감정들이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바다와 영국 브라이튼에서 보는 바다는 똑같았다. 그 바다를 대하는 사람들의 삶이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 그 사람들 곁에 언제나 머물러 있는 바다는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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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튼 피어와의 첫 만남 이후로 나는 이 곳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게임을 즐기고 싶을 때, 바다를 보고 싶을 때, 그냥 걷고 싶을 때 등등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브라이튼 피어와 가까워졌다. 이후 버밍엄에서 석사 과정을 하다가 친구들과 브라이튼에 가게 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가장 먼저 데리고 간 곳이 바로 이곳, 브라이튼 피어였다. 그만큼 브라이튼 피어는 브라이튼에서 나의 추억이 유독 많이 녹아있는 곳, 내가 애정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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