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se.1 유럽은 내게 무엇을 남겼나.
2015년 12월 21일. 나는 런던 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2015년 겨울의 유럽은 11월 파리 테러로 인해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 쇼핑거리에는 완전무장을 한 군인들이 거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면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풀어헤쳐 검사원들에게 보여야만 했다. 내가 떠났던 2015년 겨울의 유럽은 그랬다.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와는 달리 나는 굉장히 여유로웠다. 계획들도 축구관람, 패러글라이딩 등 굵직한 것들 몇 개만 정해놓았을 뿐이었다. 그저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가고 싶은 곳을 배회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게으름의 다른 표현이랄까. 그래도 좋았다. 공룡처럼 큰 서양인들 사이로 걷는 거리들도 좋았고 상점에서 들려오는 캐럴도 유럽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기대하던 유럽여행인지라 멍하니 강가를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지금은 유럽을 다녀온 지 시간이 조금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건 시간의 경과이기도 했지만, 내게 있었던 의미 있는 변화들 덕분이다. 유럽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참 많이 다르다. 유럽에서의 여정은 어떤 분야에 호기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변화를 한 번 되짚어볼까 한다.
유럽 여행을 기대했던 것과는 별개로 나는 유럽에서 특히 '새로운' 것을 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 피부는 동양의 그것을 상징하지만, 내가 소비하는 문화, 나의 생각, 그리고 나의 많은 부분들은 이미 서구화되어 있었다. 내 주위를 둘렀나 환경들도 서양 공법을 도입한 건축물이 가득했지, 한옥, 초가집은 박물관,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었다. 나는 독일 맥주를 마시면서 영국 축구를 보고 스페인 선수를 응원했다. 이것이 나의 상태였고 그것이 현실이었다.
크나큰 오판이었다. 내가 지레짐작한 것들은 분명히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의 깊이는 서구화된 동양과 서양을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시각화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도 도시의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길과 도로는 가장 효율적으로, 혹은 자연발생적으로 나있기 때문에 구불구불하거나 직교했다. 우리나라의 서울, 그리고 여러 도시들은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방사형 도시구조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같은 곳(개선문)을 향하는 수많은 방향의 차들을 보면서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내게 당연한 것들이 여기서는 그렇지 않았다.
서울에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나는 당연하게도 그곳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갈 이유도 없었고 관심을 가질 명분도 없었다. 그보다는 갈 길이 바빴고 앞에 놓인 일들이 쌓여 있었다. 박물관, 미술관은 여자 친구와 색다른 데이트를 하기 좋은 공간이었지, 내가 시간을 내는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라도는 다르다. 나는 프라도와 서울의 박물관의 내용물 차이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이 달랐다. 나는 마드리드에 온 이상, 프라도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미술을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 프라도 박물관에서 유명한 작품들을 감상했다. 거기서 변화가 시작됐다.
내게 미술은 고리타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해바라기'를 볼 때에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폴레옹 즉위식'을 볼 때에도 사진 찍기 급급했지,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미술 작품에 감동하기 위해서는 사전 작업들이 필요한데, 나는 그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리고 준비할 생각도 없었다. 그런 내 생각에 경종을 울린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스페인의 궁중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당시에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들을 한 곳에 주욱 나열해 전시하고 있었다. 나는 순서에 맞춰 당연히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압도당했다. 나는 그림을 해석할 수 없는 문맹이었기에, 그 순간의 감정을 바로 표현할 수는 없었으나 내가 이 그림에 매료되었다는 사실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은 찰나였지만 내게 '그림을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효율성이 최고의 기치라고 여겼다. 공간의 비효율을 야기시키는 곡선과 같은 효율성을 헤치는 것들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랬던 내게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정말 기묘한 도시였다. 건물들도 중간을 뻥 뚫어놓고 공간을 버려놓지를 않나, 불필요한 곡선으로 효율성을 해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분명히 비효율적이지만, 비효율적이었기에 내가 싫어해야 했지만, 그것을 보러 온 나 자신을 부인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다. 그가 생전에 작업한 작품들이 도시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고 그의 위대한 작업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아직 그 역사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작조차 하지 않은 성당을 보면서 탐복을 금치 못했다. 유려하면서도 조화로운 곡선들은 내 이성을 흩뜨려놓았다. 그리고 건물들은 내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너무 각박하게 사는데? 여유를 가져!
그때의 내게 여행은 보여주기였다. ‘왔노라, 보았노라, 찍었노라’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자학하던 것이 그때의 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예술품, 건축물들의 역사, 이야기를 내 머릿속에 담으려 노력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식은 전무하다. 그렇게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자니, 내게는 큰 공허함만이 남아 있었다.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남는 것이 사진뿐이라니. 그때부터 나는 여행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골몰했다.
내 나름의 답은 바로 '시간'이다. 오랫동안 그것을 염원했다면, 그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내 기억 속에 오래 남길 수 있는 것들은 오래 바랐던 어릴 적 꿈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학창 시절 꿈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디를 가고 싶었나, 왜 가고 싶었나...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바로 유럽.
나는 왜 유럽에 갔을까? 영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를 만나기 위해? 축구를 보기 위해? 몽생미셸의 풍경을 담기 위해? 모두 정답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하고 싶어 유럽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들을 언제 꿈꿨을까? 바로 자그마한 정독실 책상에서 그 순간들을 꿈꿨다.
이거다.
멋진 스토리텔링이 그려졌다. 나는 멋진 대학생활을 꿈꿨고 그것들을 쪽지에 적어 박스에 넣었다. 쪽지를 컴컴한 박스에 넣으면서 나중에는 꼭 하리라 다짐했다. 그 박스는 시간이 지나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아직 그 쪽지의 조각들은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목적지를 하나씩 종이에 적어 내렸다. 캄보디아 씨엠립, 일본 히로시마, 태국 치앙마이, 그리고 터키 카파도키아.
4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을 되돌이켜 보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은 여정이 있는 반면, 친구와의 반목으로 여행의 끝 맛이 씁쓸했던 기억도 있다. 이들은 모두 내 추억의 일부며,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그 성장의 시작, 그곳이 바로 유럽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소망은 지금의 기억이 되었다.
유럽은 내게 '여행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야를 주었다. 나는 유럽을 다녀왔지만, 여행했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웠다. 유럽을 담기에는 내가 정말 부족했다. 역사의 무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은 내가 유럽을 온전히 느끼는데 크나큰 방해가 됐다. 분명히 그 순간들은 좋았던 기억이지만 모자이크처럼 그 순간순간이 이어지지 않고 선을 그은 것처럼 이질적이었다. 박물관에서의 경험과 거리를 거니는 내 시간들은 전혀 이어지지 않았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유럽은 나를 죽이지 못하고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콧대가 꺾이는 순간, 내가 처해진 상황, 위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먼저 유럽 땅에 발을 내디뎠다는 쓸데없는 자만만 가득했지, 나를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배우고 싶어 졌다. 무엇이든.
내 여정을 온전히 남기고 싶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다. 친구와 사진 구도를 가지고 말다툼을 하던 나는 카메라를 사고 수업을 들었다. 영상을 남기고자 오랫동안 유튜브를 통해 편집 프로그램을 배웠다. 그뿐인가. 그 순간을 글로 남기고 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그 기억의 주소를 이렇게 남겨두기 시작했다.
여행이 나의 다양한 취미 중에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런 일련의 과정 때문이다. 여행이 보기에도 번지르르하고 괜찮은 자기 계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미디어가 남긴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두 <알쓸신잡>의 박사들이 아니다. 생업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투자해야 하는 우리와 그들의 사고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크게 얽매여있지 않기에 더 넓게, 더 멀리 세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지 않나.
그럴 때 여행은 한 가지 계기가 된다. 내가 생업, 나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당한 권리. 내게 독서는 호기심을 해갈하기 위한 수단이다. 처음에는 다방면에 내 지식이 부족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그 시간이 축적되면서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은 이제 매니아적인 분야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절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지식 함양의 목표는 전문가가 아니라 교양인이다.) 그런 내게 여행은 새로운 관심사에 시간을 할애할 하나의 이유가 된다.
내가 언제 터키의 그 복잡한 역사에 관심을 가져보겠나.
모든 사람의 여행은 다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멋진 풍경 혹은 매력적인 가격으로 진열대에 놓여있는 명품들을 헌팅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목적은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을 모두 '여행'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을 전부 같은 여행이라고 볼 수 있을까? 큰 무리가 따른다.
브런치로 내 여행을 소개해볼까 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20살 유럽 여행자가 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인생은 여행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