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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YA Nov 24. 2021

코빈 번스의 사이영상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


 지난 18일 MLB 양대리그의 사이영상 수상자가 결정됐다.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로비 레이가 수상했다. 로비 레이는 무려 1위 표 29장을 가져갔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선정되었다. 반면, 내셔널리그는 1위 표가 많이 분산되었는데 밀워키 브루어스의 코빈 번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잭 휠러가 12장 씩을 나눠가졌다. (나머지 6장은 3위 슈어저로 향했다.) 치열했던 만큼 코빈 번스의 수상은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코빈 번스와 잭 휠러는 각자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뚜렷했다. 코빈 번스는 수비 무관 평균자책(FIP/1.63), fWAR(7.5승), 9이닝 당 탈삼진(12.6개) 등 비율 스탯과 세이버 지표가 아름다웠다. 그리고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시즌 초반에 58개의 탈삼진을 잡는 동안 단 한 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는 신통방통한 모습을 보여주며 확실한 임팩트를 많은 야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반면, 잭 휠러는 213.1이닝, 247 탈삼진, 방어율 2.78 등 보이는 누적 스탯과 클래식 지표에서 우위를 점했다. 게다가 bWAR는 7.8 승으로 투수 전체 1위에 오르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비율 스탯은 코빈 번스, 누적 스탯은 잭 휠러가 앞선다고 평가를 받았지만, 야구팬들은 물론이고, 많은 야구 전문가들도 잭 휠러의 사이영 수상을 점쳤다. 바로 50이닝이 가까이 차이 나는 이닝 때문이다.

 페넌트레이스의 모든 정규이닝은 9이닝이다. 따로 시간제한이 없는 야구에서 이닝이 시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는 것은 다른 불펜 투수들이 휴식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하고 선발 투수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음을 의미한다. 코빈 번스는 167.1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잭 휠러는 무려 46이닝이 많은 213.1이닝을 소화했다. 팀에서 필승조 불펜이 보통 70이닝 언저리를 소화하는 점을 고려해볼 때, 코빈 번스에 비해 잭 휠러는 불펜 투수의 역할도 같이 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코빈 번스의 167이닝은 정규 이닝인 162이닝을 갓 넘는 선발 투수의 최저 이닝에 불과했다.

     

 야구팬들에게 이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전문가들이 내린 결정은 이미 야구가 선발 투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야구판에 페드로 마르티네스, 랜디 존슨과 같은 투수는 없다. 야구에 과학 기술이 접목되면서 투수, 타자들의 수준이 많이 향상됐다. 타자들은 사설 프로그램을 통해 스윙폼을 교정하며, 투수들은 자신이 던진 공의 모든 것을 분석한다. 변화하는 야구의 흐름 속에서 선발 투수가 9이닝을 모두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설렁설렁 상대하다가는 초반에 난타당하기 일쑤고 힘을 줘 투구를 하다가는 금방 탈이 났다. 게다가 불펜 투수들의 실력도 많이 향상되어 선발투수는 자신의 최소 역할인 5이닝 만을 책임져주면 그 뒤를 불펜 투수에게 넘겨주는 시스템으로 조금씩 변화했다.

 야구는 조금씩 변한다. 2010년 시애틀의 킹 펠릭스는 13승이라는 저조한 승수, 5할을 살짝 넘는 승률로 AL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18년 뉴욕 메츠의 제이콥 디그롬은 불과 10승으로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투수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로 평가되었던 승수는 이들의 사이 영 상 수상으로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코빈 번스의 사이영상 수상은 야구의 분업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벤트라고 볼 수 있다. 잭 휠러는 못하지 않았다. 그가 몇 년만 더 일찍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면 사이영상을 수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평가 기준은 바뀐다. 야구판은 더 이상 경기를 책임지는 투수를 원하지 않는다. 2021년의 야구가 바라는 투수는 자신이 마운드에 서 있는 동안 확실히 막아주는 투수다.     



번외)

 일본에도 사이 영 상과 유사한 사와무라상이 있다. 올 시즌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투수는 오릭스 버팔로스의 야마모토 요시노부다. 도쿄 올림픽에서 이정후에게 멀티 안타를 맞았던 일본의 에이스 기도 하다. 그의 성적은 실로 뛰어난데, 193.2이닝을 소화했고 18승을 거두면서 평균 자책점 1.39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0.182, WHIP는 0.85로 클래식, 세이버 스탯 모두 다른 투수들을 압도했다. 그와 경쟁할만한 투수는 없었지만, 실제로 없었다. 바로 사와무라 상의 기준 때문이다. 사와무라 상은 15승 이상, 150 탈삼진, 10 완투, 200이닝 등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은 너무나도 딱딱 정형화되어 있어 변화하는 야구의 흐름을 잘 잡아내지 못한다. 실제로 다르빗슈는 이런 수치로 투수를 평가하는 게 구시대적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야구로 세상을 봅니다. 베이스볼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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