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 끝내 다다르는 곳은 어디인가?
요한복음 20:24~29 [200주년 신약성서]
20: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디모스(쌍둥이)라 하는 토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0: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그는 "내가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눈으로)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한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0:26 여드레 후에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도 함께 있었다. 문들이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께서 오시어 한가운데에 서시며 "여러분에게 평화!" 하고 말씀하셨다.
20:27 그러시고는 토마에게 "당신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살펴보시오. 그리고 당신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시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20:28 토마는 대답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여쭈었다.
20:29 예수께서는 그에게 "당신은 나를 보고서야 믿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은 복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의심스러운 것으로 가득합니다. 감춰진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모두에게 의심은 합리적인 정신입니다. 과대광고, 가짜 뉴스, 영양성분 허위표시, 허위 매물, 등등 개인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보다 우선 되어서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저는 요즘 무작정 믿고 맡겨 달라는 말이 너무 무섭습니다.
의심이란 게 묘합니다. 사람은 상대에게 의심 받으면 불쾌한 기분이 듭니다.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고, 무언가를 공유하는 일도 꺼려집니다. 하지만, 의심해주기를 바랄 때가 있기도 합니다. 무심한 태도를 의심 받으며, 은밀히 마음을 쓰고 있는 자기의 진실한 의도를 알아차려 주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의심이 당연해진 세상의 일종의 감각적인 교감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심은 진실과 마주할 수 있는 좋은 태도이지만, 의심이 깊어지면 회의가 찾아옵니다. 도무지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립니다. 세상도, 사람도, 상황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회의에 찬 사람을 바라보며 주변에서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고, 조금만 쉽게 생각하면 안 되겠냐는, 사려 깊지만 얕은 조언을 주기도 합니다.
의심보다 심각한 영혼의 질병이 있는데, 바로, 의심하지 않은 척입니다. 형태를 감추고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의심이 가득한 마음을 감추고서 모든 걸 낙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처럼 내보이기를 즐겨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비겁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의심에도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굳이, 정말로 의심이 들지 않는다면 상관은 없겠습니다만, 의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의심을 어딘가 깊숙이 묻어둔 것은 아닐까요. 의심하지 않는 척하게 되면 진실한 삶과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걸 믿어가는 과정이 신앙입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가 얻었다고 여겼던 믿음은 거대한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기도 합니다. 신앙인이 어떻게 회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진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회의가 최종적인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진실에 다다르기 위해서 감기, 몸살처럼 찾아오는 방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감기·몸살 정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삶의 의지를 단방에 꺾어버릴 정도로 강력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길에 계신 예수님이 의심과 회의와 싸우는 자를 버려두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도마처럼요.
빈 무덤을 확인한 뒤에 이틀 정도가 지난 어느 때였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모였는데, 그 가운데 도마가 있었습니다. 도마는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의심했습니다.
25절,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자 그는 "내가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눈으로)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또한 내 손을 그분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회의에 찬 도마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못 자국과 뚫린 옆구리를 만져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손과 발, 옆구리의 뚫린 구멍에는 주님의 고난과 아픔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도마의 의심과 회의는 주님의 상처를 만지고 느끼게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리에 이르게 했습니다.
28절, 토마는 대답하여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하고 여쭈었다.
의심과 회의를 통과한 도마의 고백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온전한 고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나타내신 예수님의 삶과 그분의 존재가 도마 자신이 믿는 게 아니라 믿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9 예수께서는 그에게 "당신은 나를 보고서야 믿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이들은 복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땅에 자기를 보내시고 이루실 뜻을 의심 없이 믿으셨습니다. 세상의 시험을 완전히 극복하셨고, 인간이라면 처할 수 밖에 없는 곤경 속 의심과 회의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완전'이란 경의로운 표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삶은 지속됩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의심과 회의에는 졸업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처럼 회의가 찾아와도 이전과는 다를 것입니다.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마처럼 의심과 회의를 통과한 신앙은 다시, 항해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온전한 신앙의 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삶이 마쳐지는 날까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