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와 내세에 관한 베르베르의 상상력이 경의를 표하며
이 두 책은 신학적인 주제라서 관심이 갔다. ‘신학’을 떠올리면 누구나 신과 인간, 내지는 교회와 구원, 믿음을 떠올릴 게 분명하다. 사실 신학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검열이다. 신학이란 결국 인간이 진리에 닿으려 애쓰는 고독한 작업인데, 문제는 그 진리를 규정하는 힘이 언제나 제도와 권력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은 대개 고결함과 만나기보다, 그 아름다움을 통제하려는 자들의 손에 먼저 잡힌다. 애초에 교단의 검열에 속한 신학자에게 학문의 자유란 게 있을까. 초연한 태도로 세계를 관찰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성서를 대하는 작업이 끈기 있게 이어질 때 비로소 옛 신학자들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어떤 값이 나올 텐데.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서 공산당 교육에 철저히 세뇌된 자녀들에 의해 검열당하는 부모의 비극적 결말처럼, 나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검열당하는 교수들을 수없이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학생들 역시 교단과 교회가 만든 희생자들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잔혹한 고문을 당했는지도 모른 채, 타인을 심문하는 위치로 떠밀린 피해자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진작에 혼탁한 교단과 교회에서 신성 찾기를 고만두었던 적이 있다. 101호로 끌려들어 가기 전에 도망친 거였다.
현대 소설가에게도 검열관들의 손이 뻗치기는 하는 것 같다. 「눈먼 자들의 도시」로 잘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그의 작품 「예수 그리스도 복음서」를 쓰면서 포르투갈 가톨릭교회와 정부에 의해 검열당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수상 취소에 그칠 뿐이지, 그를 화형에 처하거나 감옥살이시키진 못했다(글만 쓸 수 있다면). 아마도 소설가에게 가장 강력한 검열관은 상상력의 한계일 것이다. 제약이 걸린 상상의 장막을 뚫고 그 너머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이보다 영적인 것(작품)이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까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 장소가 내세이고 영계이기 때문에, 그리고 옛적의 아름다움이 숨 쉬는 곳이기에 소설가들에게 소재로서 ‘신학’은 그들의 피를 끓게 하고 가장 탐욕스러워지게 한다.
그러니까, 소설가의 탐욕은 다른 말로 저항이다. 아름다움을 포획한 자들로부터 그것의 본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한 저항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학 안에서 신학은 인간 상상력을 시험하는 가장 오래된 격전지가 된다. 반대로, 그들 또한 언제나 통제하고 획일화하는 또 다른 누군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저항과 탐욕의 경계를 짓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운전하면서 내 귀를 자극하기 좋을 만한 소재의 오디오북을 찾았다. AI가 읽어주는 건 몰입력이 떨어져서, 성우 완독본 중에 그의 작품을 고르게 되었던 것 같았다. 댓글에서 성우 목소리를 두고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은데, 나는 훌륭한 작품을 접하게 해준 그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할 뿐이다. 단지, 녹음할 때 소음이 많이 들어가서 성우의 목소리를 부유하는 먼지처럼 흐릿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이지 못 듣겠다. 이처럼 선명함을 탐하는 것과 도로의 지루한 물리적 수평선을 음파로 흔드는 것으로도, 나의 일상에도 아주 소소하지만 삶은 저항으로 영위된다.
베르베르의 작품 「죽음」에서 핵심은 검열이다. 누가 죽었다고 죽음을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그의 작품 깊숙한 곳에서 흐른다. 주인공 가브리엘 웰스는 자신을 누가 죽였는지 알지 못한 채 망자가 되었다. 살인자를 알고 싶어 하는 충동이 그를 살아 있게 했다. 영체의 존재로 오히려 세상을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떠돌면서 말이다. 심지어 그가 생애를 걸었던 글쓰기마저도 영매사 리시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는 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접하고서, 이전보다 더 풍성한 글쓰기가 가능해졌으리라고,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든다.
나는 가브리엘을 연기한 성우의 톤 때문에서도 그런지 더욱 그의 죽음이 슬픔과 고통에 메여 있지 않다고 느껴졌다. 베르베르가 묘사하는 현세와 내세는 도로 하나 둔 양쪽의 인도에 불과하다고 반복해서 언급한다. 건널 수 없는 강이 함축하는 아련함과 영원함의 강도가 그의 세계관에서 한결 축소된다. 죽어서도 살아볼 만하겠구나, 아니, 만약 정말 그런 세계라면 기대가 된다, 같은 충동과 생각이 소설에 몰입한 내게 밀려 들어온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을 정도로.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죽은 자가 되어서도 인간다움의 정신을 잃지 않는 자들과 살아도 인간 같지 않은 부류의 대비다. 가브리엘의 작품을 악평하고 그를 혐오하는 앙투안 뒤랑은 가브리엘과 다르게 산 자다. 그러나 그는 매춘과 마약에 절어 위선과 자기기만 속에 죽지 못해 사는 인물이다. 겁도 많다. 그리고 영매사 리쉬가 영체(죽은 자)가 되었을 때 그토록 찾아 헤맸던 옛 애인 샤를과 대면한다. 리쉬와 샤를은 둘 다 살아 있는 인물이지만, 리쉬가 영체가 되었을 때만 그의 진실을 볼 수 있었다. 샤를은 리쉬를 인신매매로 팔아넘기기까지 했던 사기꾼이자 배신자였다.
인간은 죽음과 엮이고 싶지 않다. 죽지 않은 순간에도 죽음을 염려하며 삶을 소모한다. 죽음의 필연적 결말에 의해 삶이 검열되고 있는 삶을 산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건 무엇일까? (소설을 흥미를 잃고 싶지 않은 분은 여기서 읽기를 멈추어 주세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영계 중 상층계급의 관리자 격의 신이 등장한다. 비록 그녀의 모습은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어느 평범한 노인 여성인데, 그녀는 정말 신적인 신선함을 취하고 있었다. 죽은 것과 산 것의 경계가 비윤리적일 정도로 그녀에게 너무나 쉽다는 것이다. 언제나 재환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지루할 정도로 그 경계에 대해 관리해 왔기에, 그리고 인간에게 신비로 자리 잡혀 있고, 소중함의 최고봉으로 여겨왔던 생명을 살인자의 본성처럼 가볍게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베르베르 소설의 맥락 안에서 그것은 절정의 자리가 맞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누가 죽음을 규정하는가? 하는 철학적 물음 앞에서 육체적 죽음은 신에게 가벼운 것은 분명히 옳다. 어느 노인 여성의 품성과 그의 세계관을 메시지 중심에 조립하여 섬뜩할 정도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이미지 구조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그를 죽였다. 가브리엘이 작성 중이었던 소설, 「천 살 인간」은 신에게 검열되면서였다. 영계의 비밀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드러내기에 금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태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그 미완의 작품이 바로 베르베르의 실제 다음 작품 「키메라의 땅」이다. 가브리엘이 그 노인 여성을 살살 구슬려가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삭제하고, 그녀가 권했던 첫 문장, “우리는 그로부터 무엇을 배웠나?”로 정말 시작한다. 가상의 이야기에 존재하던 소설 작품이 현세로 튀어나온 것이다(와, 소름). 죽음과 검열, 신에 관한 응축된 물음이 세계관이 되어서, 그 신정론에 관한 담론이 이 키메라의 땅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와,).
내게 2025년 최고의 카타르시즘을 제공해 준 부분이 이 농담 같은 결말이다. 「키메라의 땅」을 먼저 읽었는데, 먼저 나온 「죽음」을 나중에 읽은 덕분에, 소름이 돋았고, 사실 키메라의 땅에서 너무나 많은 비밀을 드러낸 거 아닌가 싶어서, “베르베르에게 조만간 신이 찾아가겠군, 그가 죽을지 모르겠다.”라고 혼잣말로 농담을 지껄였다. 베르베르의 상상력 덕분에 나도 허구의 이야기와 현실 상황을 나도 모르게 이어 붙인 것이다. 그렇게 상상하는 게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고서, 즐겁고 유쾌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 같았다. 정말 긴 여운 같은 조용한 폭소가 머릿속에서 한동안 터져 나왔다.
아무렴, 구원이든 믿음이든, 그걸 신봉하는 자들이 어떤 진실함을 추구했는지, 측정하는 일로 구원문의 길이와 넓이를 재고 그 거리에 도달하도록 계산식을 구하는 일 따위로, 인생을 낭비하면 얼마나 비루한 인생이 되겠는가. 하면 되는 것을. 살아 있는 지금, 농도 짙은 농담을 만들어내는 일로 키득거리며 사는 게 새삼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느껴졌다. 죽든 살든 지금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의 볼때기를 양손으로 감싸고 주물럭거리며 그의 숨결을 느끼는 게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 적어도 지금은 그 이상을 바라지 말자, 같은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딸에게 그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