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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밍꼬 Jan 02. 2023

인(人;사람)의 세월호

홀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서평. 기억해 주세요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한다. 출산을 앞두고 직장을 정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남아있던 출근 습관으로 일찍 일어나 남편을 배웅하고 누리는 여유가 낯설어 멍하게 TV만 보고 있었다. 9시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한다는 속보가 방송 중 큰 글씨로 떴다. 멀쩡한 배가 왜? 날이 험한가 싶어 내다 보았던 창 밖은 구름이 끼고 약간 흐렸다. 곧 전원 구조라는 속보가 나왔고 나는 작은 신혼집 커다란 쿠션에 기대어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괜찮겠거니 했다. 그날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그날의 날씨, 뉴스 자막, 그때의 느낌이 사진처럼 생생하다. 인간은 9.11 테러나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재난, 크고 놀라운 소식을 들은 순간을 사진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이것을 섬광기억(Flashbulb Memory)이라고 한다. 그날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기억의 도장(인, 印)을 새겼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진실의 무거움 때문이었을까? 세월호 관련 책들을 빌려놓고 읽지 못했다. 나에게 세월호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너무 무거웠다.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한민국 한 사람이지만 여태껏 세월호란 글씨 곁만 맴돌 뿐 그 자리에서 서서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 안의 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공모전을 위해 빌려온 책들은 펼쳐지지 못했고 거실 한편에 며칠이 넘도록 쌓아두었다. 그런데  책들에 관심을 보인 것은 첫째 아이 솔방울이었다. 2014년 4월 뱃속에 있던 아이가 벌써 9살이다. 그동안 만 8년의 시간이 지났 다는 말이다. 아이는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를 읽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에게 '세월호'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당당한 얼굴로 세월호를 안다고 하였다. 학교 담벼락에 새겨진 글을 보았고 노란 리본을 안다고 하였다. 나는 나의 아이에게 세월호에 대해 말해 줄 책임을 느꼈다. 세월호를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 이 세상을 채워갈 것이다.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을 생겼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나는 내 아이에게 ‘잘’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이 책을 읽어도 되는지 내가 먼저 보아야 했다.    

  



어느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는 세월호에서 ‘파란 바지 의인’이라 불리며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구한 김동수씨와 그의 가족 이야기이다. 김동수씨는 제주에서 육지를 오가며 일하는 화물트럭 기사이며 아내와 두 딸의 가장이다. 수십 번을 탄 배인데 조심할 게 뭐 있겠냐며 평소처럼 배를 타지만 세월호는 쿵 소리와 함께 기울며 바다에 잠기고 그는 여전히 세월호라는 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소설 『홀』은 작가가 김동수씨와 가족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작가가 전하는 김동수씨 모습은 세월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직도 목소리가 떨리고 흥분하며 여전히 세월호 안에서 소방호스로 사람들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세월호를 빠져나온 뒤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구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던 배에서 아이들을 구조하고 살아남았어도, 밀려오는 죄책감과 진실을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 속에 살아간다. 그는 세월호 안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다정했던 아빠이자 가장이던 그를 바꾸어 버린 것은 무엇일까? 김동수 씨를 변하게 한 것은 2014년 4월 16일 당일만이 아닐 거다. 세상은 그가 세월호 안에서 본 것을 아무리 말해도 진실을 구덩이로 묻어 버렸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해쳤다. 그의 가족들은 그런 그가 세월호라는 깊은 구멍에 함몰되지 않도록 힘을 다해 붙잡고 있었다.


   그가 세월호 안에서 본 것은 이 책의 제목처럼 큰 구멍 같은 홀이었을 것 다. 배가 기울어 버리자 나가야 하는 문은 깊은 구덩이가 되었다. 홀이 되어 버린 문 안은 전쟁터 같았다고 한다. 물 위에 아이들이 둥둥 떠 있고 주방 기구가 다 나왔으며 자판기는 하늘에 매달려 있었다. 힘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나오려고 계단 난간을 잡고 있었지만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내가 『홀』과 함께 읽은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의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에서도 같은 장면에 대해 쓰여있다. 세월호에 대한 기록은 입을 모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퇴선 명령이 내려지지 않았고’, ‘구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배가 기울어 문은 천장이 되었다.’


   사람을 구한 김동수 씨는 동시에 사람을 구하지 못한 자가 되어 자책감과 죄책감에 빠졌고, 생존자는 살아남과 동시에 친구들을 구하지 못한 자가 되어야 했다. 진실은 있는데 진실은 왜 사실이 되지 못하는 걸까? 나는 네 아이의 엄마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누군가 거짓말을 하거나 엄마인 내가 상황을 오해하면, 닭똥같이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린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마음이 이렇게 억울한데 삶의 문턱을 빠져나와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부정당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나는 『홀』을 읽으며 잠시나마 세월호의 안을 다녀왔고 그들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 세월호와 마주하기

  내가 읽은 후 거실에 있던 『홀』을 보며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의 나처럼 세월호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며 책을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울수록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고는 나와 마주 앉아 지나온 정부들이 보인 태도에 대해 긴 이야기 연설을 펼쳤다. 세월호 관련 책은 읽지 못하겠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그 모습이 답답했다. 이전에 나도 그랬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런 말들은 의미 없다 생각되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안다면, 겨우 살아 나온 사람들을 모아놓은 진도 팽목항에서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안다면 이렇게 앉아서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만 하기 미안했다.

  세월호는 마음이 아프다며 나라 탓만 하지 말고 당신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고 싶었다. 같이 책을 읽어 보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툼이 될까 두려워서 그 마음에 반대되는 소리를 하기 싫었다. 우리는 대부분 싸움을 싫어한다. 그러나 할큄을 위한 싸움이 아닌 어느 작가의 책 제목처럼 서로의 속을 알 수 있도록 서로의 속이 투명해질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도 이제 그 싸움에 용기를 보태고 싶다.


  남편과 나는 친밀하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산다. 그래도 오늘처럼 이렇게 서로에게 등을 내보이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우리도 이런데 세월호와 먼 곳에 있는, 같은 마음일 수 없던 사람들과 싸워야 했던 그들을 그려본다. 세월호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지 못했기에 사람들 사이에 다른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더 큰 분열과 가져왔을 것이다. 남편이 책을 읽지 않는 것도, 그가 불만의 일장 연설을 한 것도 이전의 나처럼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은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앉은자리에서 화난다는 말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인데 한탄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공백의 시간이지만 나는 상담심리사였다. 세월호 이후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많은 상담사들이 현장 투입된 것으로 안다. 당시 지원 상담자를 모집하기 위해 함께 공부한 선후배를 중심으로 세월호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채팅방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2014년 4월, 나도 상담지원을 가고 싶었지만 임신 9개월이라는 핑계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상담사들은 지속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능력과 마음을 모았고 집회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생존자들과 유가족 형제자매 의 인터뷰로 만들어진 책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읽으면서 문득문득 이들에게 우리가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직업적 의문과 자책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적 소명을 갖은 우리의 역할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국가 차원의 트라우마 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큰 재난에 있어서 개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과 동시에 국민에 대한 정부 차원의 통합적이고 일괄적인 대처 매뉴얼이 필요한 것이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책에는 김동수 씨 딸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다.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이라 낙인을 찍은 사람들에 대해 진실을 알아주기는커녕 침몰해 버린 세월호 선내에서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대한민국 전체를 짓누르는 듯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뭐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며 세월호 1주기에 맞추어 친구들과 추모 플래시몹을 기획한다. 나와 함께 『홀』을 읽은 첫째가 그 영상을 보고 싶어 했다. 유튜브에서 ‘세월호 제주 플래시몹’을 검색하니 책의 그림을 그대로 옮긴 듯한 영상이 나왔다. 화려하고 현란한 요새 영상에 비하며 학생들의 솜씨가 보이는 투박한 영상이지만 노래와 율동을 하며 함께 잡아 올린 손에 진심이 가득했다. 몇 번을 반복하여 보고 난 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가사가 계속 맴돌았다. 진실이 침몰되지 않기 위해 기억해 달라는 메시지.     


   이제 알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세월호는 침몰하였지만 우리의 기억에서는 침몰되지 않아야 한다. 내가 기억하고 나의 아이에게 세월호를 알려주어야 한다. 책도 영상도 인터뷰도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잊지 말아 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나는 세월호를 ‘사건’이라 부르며 기억했다. 진실을 알게 되길 두려워했고 거대한 슬픔이 나에게 번질까 봐 겁을 냈다. 때로는 이제는 그만하자고 낱낱이 흩어진 마음들을 흉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를 읽은 후 드는 생각은 ‘세월호’는 그저 기록된 재난 사건이 아니었다. 내가 잊고 있던 것은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빠가 있었고 누군가의 아이들이 있었고 함께 이불을 덮고 잠들며 자라온 언니 오빠 형 누나 동생들이 있었다.


  글을 쓰며 나에게는 자꾸 ‘인’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세월호 안에 있던 사람(人)들, 돌아오지 못한 자의 삶,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겪은 세월호 이후의 삶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세월호 생존자 혹은 유가족에게 낙인(도장 인,印)을 찍어 가둬 버렸다. 그들은 들어주지 않은 세상에 되돌이표처럼 말해야 하는 공허함을 참아야(참을 인; 忍) 했다. 이제 우리가 세월호에 대해 알아야(알 인; 認)할 차례이다.     


  나의 아이들이 살아야 할 세상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침몰하는 배에서 신속히 탈출해야 한다는 상식, 진실이 알려져야 하는 상식의 사회. 당연함이 통하지 않아 억울함이 생기지 않는 사회를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이 책은 세월호 이야기를 꼭 써야겠다는 작가의 노력과 사람들의 북펀딩을 통해 만들어졌다.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작은 손짓이 모인 것이다. 나도 이 작은 손짓에 아이와 함께 동참하려 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외치던 여고생의 유튜브를 종종 찾아볼 것이고, 노란 리본을 나의 다이어리에 붙여 놓을 것이다.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가려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글은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나의 의지이자 우리의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다. 가족과 삶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 나눈다고 줄어들지 않겠지만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 깊도록 슬픈 마음이 모두와 희석되어 옅어지기를 바란다.



2023년 새로운 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전부터 올리려고 글인데 새해의 첫 글이 되었어요.


 글은 지난해 416 재단 세월호 독서감상문 공모전에 출품하여 수상한 작품입니다. 수상을 하게 되어 기쁨 마음도 들었지만 동시에 세월호에 대한 여러 마음과 기억하고 아이들에 잘 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함께 들었습니다.

  지난 연말 첫째와 둘째 아이를 데리고 시상식에 다녀왔는데

그 장소에서  우리 아이들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지 몰라도 함께 있었음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최 측의 동의를 얻어 글을 올립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 주세요.

http://aladin.kr/p/zyi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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