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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혼 Oct 24. 2021

모두 다 잠든 후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육아를 하다 보면 내 행동을 자주 점검하게 된다. 다른 일을 할 때보다 더 꼼꼼해지고 실수가 없는지 확인하게 된다. 일을 할 때나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는 실수가 있어도 상대방이 이해하거나 배려해줄 수 있지만 아기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는 생존을 위해서 몇 가지 반응을 할 수 있지만 대처할 능력은 없다. 잘못 둔 수건 한 장이 아기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어서 양육자는 항상 조심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아들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연약하고 섬세한 존재였다. 백 번 잘 넘어가도 한 번 방심하면 큰일이 되어버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적응이 될 때쯤이면 새롭게 생겨나는 위험요소들 때문에 우리는 늘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아들의 몸에는 쉴 새 없이 상처가 생겨나고 울음소리는 그칠 날이 없다.


 아들이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었지만 십 년짜리 빚을 진 마냥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자리 잡았다. 앞머리를 잘 못 자른 일부터 시작해서 새벽에 열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던 사건까지 차곡차곡  쌓여서 미안한 마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아들에게 저지른 일들은 마치 내가 어린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잘하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울고 있는 아들을 보면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버렸는지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고 아무 잘못도 없는 아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당황스럽고 너무 미안해진다.


 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미안한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 겪어야 하는 일들을 겪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게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에는 잘못에 대해서 사과를 하게 된다. 사과를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고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사과를 할 수 없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채 가지고 있던 적은 없었다. 갈등이 생기면 즉시 해결하려는 성향 탓에 미안한 마음을 일방적으로 던져버리는 경우는 있었어도 지금처럼 장기간 동안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아내도 나도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꼭 안아주지만 마음이 썩 나아지지는 않는다.


 어떤 부모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는 것은 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다 잊어버려도 괜찮겠지만 경솔했던 나의 마음과 서툰 행동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미안해하는 것이 불편하면서 나름대로 쓸모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들은 점점 자라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보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기였다면 엉엉 울게 되는 일도 유치원에 갈 나이가 돼서는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점점 씩씩해지는 아들을 보며 우리 부부가 아들을 대하는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다.


 지금은 감사한 모든 것들이 나중에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요구하는 것이 많아지고, 아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면서 일부러 아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일부러 아들을 힘들게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지만 공부를 강요하고 학원 숙제를 검사하는 등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인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자식이 잘 되라고 하는 행동인 것은 잘 알지만 하루라도 탈 없이 자라기를 바라던 영유아기 때의 마음을 잊은 채 자식을 키우게 된다면,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처가 자식의 마음에 차곡차곡 새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자녀들은 나이가 들수록 신체를 다치는 일이 줄어든다. 다치는 일이 드물게 발생하면 부모들은 아기를 보는 것처럼 가슴 아파하고 상처가 영원히 남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부모의 언행 때문에 자녀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피부의 상처보다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를 할 때면 아이들 중에 한 두 명은 기분이 좋지 않다. 심각한 일을 겪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어른의 입장에선 별 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시무룩해서는 쉽게 헤어 나오질 못한다. 물론 1, 2교시 안에 해결이 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게 웃지만 아기의 경우로 바꿔 보면 아침에 시무룩했던 아이들은 어딘가 부딪혀서 한두 시간 정도 사라지지 않는 붉은 상처를 입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상처들은 반나절만 있어도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아기 몸의 생채기를 부모가 일부러 만들지는 않으며 반복해서 같은 자리에 생채기를 내는 부모는 더욱더 없다. 어른의 입장에선 심각하지 않을 수 있는 언행이 아이의 마음속 같은 자리에 상처를 반복하여 생기게 한다면 피부가 약해지고 짓물러 곪아버리듯이 마음도 썩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마음이 썩어 문드러진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멀쩡하고 활기 넘치는 젊은이로 성장해 나간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한편에 상처 하나쯤 지닌 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처들은 삶의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히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아들이 어디서 다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무자비한 세상을 헤쳐나가면서 상처 하나 없이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집 안에서, 그것도 가족에게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그 상처가 아들이 성장하는데 결정타가 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아들에게 미안한 아빠가 되고 싶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고 모두가 잠들면 하루를 반성하고 미안해하며 다음날은 더 세심하고 배려 깊은 양육자가 되리라고 다짐하고, 다음날은 실제로 더 나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항상 좋을 수는 없고 현실은 녹록지 않겠지만, 오늘처럼 고요한 밤에 잠든 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날이 자주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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